우리는 빅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 조지 오웰의 고전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독재자)가 실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정보는 데이터화되어 수집되고, 기록되고, 이용됩니다. 생판 모르는 누군가가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라며 독려 전화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내 신용카드 이용 정보, 휴대전화 통화 정보를 수집해 내 일과가 어떤지, 내 취미가 무엇인지, 내 사상이 어떤지를 다 추측 가능합니다.
정부는 이를 가속하고 있죠.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일어나고 있고, 국가정보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대량 구매한 일이 실재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풍자한 힘 있는 소설이 나왔습니다. 세계적 블로그 <보잉보잉>의 편집자이자 카피레프트 운동을 이끄는 활동가 코리 닥터로우의 <리틀 브라더>(최세진 옮김, 아작 펴냄)입니다. 이 책은 근 미래 미국에서 테러를 핑계로 폭주하는 정부를 상대로 청소년이 '리틀 브러더'가 되어 정부와 맞선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애국법 논란이 한창이었던 2008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곧바로 <뉴욕 타임스> 등의 찬사를 받으며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선버스트 상, 존 W 캠벨 상, 프로메테우스 상, 화이트파인 상, 골든덕 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휴고 상과 네뷸러 상, 로커스 상 장편 소설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영화로도 제작 중입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독서통'은 처음 다루는 소설로 이 책을 꼽았습니다. 번역자 최세진 씨를 모시고 빅 브러더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1일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열린 인터뷰 전문을 소개합니다.
카피레프트 운동가가 쓴 소설
독서통 : 매주 화요일 오후 찾아뵙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저희가 지난주에는 두 권짜리 책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 주에 소개할 책도 500쪽에 달하는 만만찮은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읽기는 아주 쉽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독서통이 여러분께 처음으로 소설을 선보이게 되었네요.
일단 표지부터 눈에 확 들어와요. 핫 핑크, 표지만 보면 하이틴 로맨스 소설 같습니다. 저희가 지난주 지하철, 버스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더군요. (웃음) 하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의 제목은 <리틀 브라더>입니다. 저자는 코리 닥터로우라는 분인데, 이 분의 단독 저서가 우리나라에 번역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굉장히 유명인사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블로그 <보잉보잉>의 공동 편집자이신데요, 이 블로그의 월간 순 방문자 수가 평균 30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블로그의 대부분은 대형 포털 사이트의 우산 아래에 있습니다만, 여긴 그렇지 않잖아요. 그걸 고려하면 굉장한 거죠. 주로 정보통신이나 글로벌 사회 이슈에 대한 여러 정보를 전하는 공간입니다.
코리 닥터로우는 카피레프트 운동을 이끄는 사람이면서, SF 소설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간 통찰력 있는 SF 소설을 꾸준히 발표해서 국내에도 골수팬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분의 소설이 영화로는 한 편도 안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오늘 소개할 <리틀 브라더>가 영화화될 예정입니다.
책 제목에서 바로 조지 오웰의 고전 <1984>의 빅 브러더를 연상하는 분이 꽤 되실 것 같습니다. 저희가 직접 코리 닥터로우를 모시려 시도했습니다만, 대신 번역자인 최세진 씨를 오늘 자리에 모셨습니다. (웃음)
최세진 씨가 어떤 분인지도 소개해 드려야죠. 번역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PC 통신 1세대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운동 1세대 활동가이기도 하죠. 1996년부터 10년간은 민주노총 정보통신정책부장을 지냈고, 진보네트워크의 태동을 같이했죠. 최세진 씨 저희 앞에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최세진 : 예, 반갑습니다.
독서통 : 책 줄거리부터 간략히 소개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17살 고딩, 그러니까 소년 소녀들이 국토안보부(DHS)의 만행에 맞서서 반격하는, 다시 말하면 '엿 먹이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를 따라가는 맛이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책의 줄거리 자체는 깊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죠. 이 소설은 언제 작업하셨나요?
최세진 : 작가(코리 닥터로우)가 자기 소설을 낸 직후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합니다.
독서통 : 작가가 카피레프트 운동을 하는 분이라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 소설도 무료로 배포한 겁니까?
최세진 : 네. 누구든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받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PDF 파일 형태로만 올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파일로 올립니다. PDF, TXT 포맷은 물론이고, 음성으로 녹음한 MP3 파일로도 제공합니다.
독서통 : 야! 음원 파일까지 제공한다고요?
최세진 : 예.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독서통 : 인터넷으로 오픈된 책을 처음 접했군요?
최세진 : 예. 저도 무료로 배포된 파일로 처음 봤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기회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됐습니다.
독서통 : 직접 이 책 번역을 출판사에 제안하신 건가요?
최세진 : 제가 어떤 책을 번역하면 좋을지 리스트를 짰는데, 아작 출판사에서 이 책을 첫 책으로 하면 좋겠다고 해서 번역이 이뤄졌습니다.
독서통 : 앞서 우리나라 정보통신 운동 1세대로 소개해드렸습니다. 코리 닥터로우도 마찬가지인데, 지금도 관련 일을 하는 분이죠.
최세진 : 예. 저는 코리 닥터로우를 활동가로 먼저 알았습니다. 정보통신 운동에서 중요한 주제가 여러 가지 있는데요, 그중 저작권 문제에서 대표적 활동가를 꼽는다면 코리 닥터로우를 뺄 수 없습니다. 그런 활동가로 알고 있다가, 이 사람이 SF도 쓴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독서통 : 코리 닥터로우가 정보통신 활동가로서 한 대표적 활동을 소개해 주면요?
최세진 : 여러분도 아실지 모르겠는데, 가끔 인터넷 블로그 하단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라고 표시된 곳이 많습니다.
독서통 : "이 블로그의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따릅니다"라는 표시가 되어 있죠.
최세진 : 예. 그럴 경우 누구든지 그 자료를 비상업적 목적으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만, 기본적 입장은 비상업적으로 누구든지 자료에 접근하거나, 개작하거나, 활용하거나, 배포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코리 닥터로우가 바로 이런 운동을 제안하고 이끈 사람입니다.
독서통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처음 주창해서 보급한 당사자로군요?
최세진 : 예, 그렇습니다. 워낙 정보화가 이 사회의 주요한 산업이 되면서 저작권 문제가 상당히 큰 이해관계로 충돌하는 상황이 됐죠. 기업이나 정부가 내세우는 카피라이트에 맞서서 카피레프트를 들고나온 거죠.
독서통 : <리틀 브라더>는 SF로 분류되는데, 이 책을 보신 분들은 "논픽션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차가 있어서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된 때가 2008년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를 염두에 두면 이 책에 나온 감시 기술이 약간 가까운 미래로 설정되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읽으면 황당한 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다 통용되는 기술이에요. 예를 들어 RFID, 저 오늘 아침에 버스 타고 올 때도 신용카드로 태그하고 왔거든요. 그 정보가 다 남잖아요? 누군가가 저를 추적하려고 할 때, 제 신용카드 기록을 조회하면 제 이동 경로를 고스란히 알 수 있죠.
이 책에서는 그 기술이 미국 사회에서 앞으로 실현될 감시 기술의 하나로 묘사되고 있죠. 이 책에는 하이패스와 같은 기술도 감시 기술로 나오는데, 지금 우리가 다들 쓰잖아요. 하이패스 기록을 조회하면 내가 자동차를 타고 언제 어디로 갔는지 누구나 다 알 수 있죠.
최세진 : RFID 같은 경우 칩 자체가 생산됐을 때부터 그런 위험성이 계속 제기됐죠. 한국에서 여권에 RFID 칩이 박힐 때도 똑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요. 하이패스 도입할 때도 의무화를 하려다가 시민단체가 막아서 신청자만 하게 됐죠. 지금은 신청제이지만,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하이패스 통로는 굉장히 넓고, 직접 돈을 내는 곳은 좁고 한두 곳이어서 굉장히 불편하죠.
독서통 : 책 주인공이 국토안보부를 '엿 먹이는' 가장 주된 방법이 엑스박스라는 게임기를 이용해서 '엑스넷'을 구축하는 거거든요.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지 않은 분을 위해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최세진 : 엑스박스뿐만 아니라 대부분 전자기기가 컴퓨터잖아요. 주인공은 엑스박스를 이용해서 다른 엑스박스와 연결하는 독립된 네트워크를 구축하죠.
독서통 : 엑스박스끼리 연결되어야 온라인 게임이 가능하죠?
최세진 : 예. (주인공은) 그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국토안보부에 저항합니다.
독서통 : 일반 인터넷을 이용하면 빅 브러더가 다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그걸 피하고자 엑스넷을 소통 수단으로 삼는 거죠. 구글이나 네이버를 통해서 이메일이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그게 다 감시될 수 있으니, 엑스박스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만 이용하는 네트워크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설정이죠?
최세진 : 예.
독서통 : 이 대목을 보면서 떠오른 게 프랑스 파리 테러입니다. 해당 뉴스를 보면 테러리스트들이 추적을 피하고자 플레이스테이션4를 이용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게임기죠?
최세진 : 그 기사를 봤는데, 테러리스트들은 이 책에 나오는 엑스넷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게임 속에서 채팅했더라고요.
독서통 : 롤플레잉 게임을 하면 (게임 속) 아바타끼리 만나서 대화하는데, 이를 통해 테러를 모의한 거군요.
최세진 : 제가 추측하건대,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테러리스트가 진행하는 일이 흡사하니까, 게임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얘기하면 제삼자가 보더라도 '그냥 게임 얘기하나 보다' 생각했을 것 같아요.
빅 브러더와의 동거는 이미 현실
독서통 : 오늘 진행에 약간의 한계가 있는 게, 이 책이 소설이다 보니 되도록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책 내용을 될 수 있는 대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빅 브러더로서의 국토안보부가 미국 시민을 감시하는 방식이 어디까지 우리 현실에 근거하고 있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설명해주시죠.
최세진 : 이 책에서는 주로 DHS라고 부르는데요,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테러 조직이 국토안보부입니다. 이름이 생소할 텐데, 이 책에 나오는 감시 기술 대부분을 지금은 국토안보부뿐만 아니라 얼마 전 에드워드 스노든이 그 실상을 폭로한 국가안보국(NSA)에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독서통 : 이 책이 참 예언적인 소설인 것 같습니다. 2008년에 나온 소설인데, 스노든 폭로를 보면 그런 일들이 다 진행되고 있었잖아요?
최세진 : 이 저자가 쓴 이 소설의 후속작이 <홈랜드>입니다. 재미있는 게, 2권 내용이 스노든이 폭로한 내용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흥미로운 건 스노든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시티즌포(Citizenfour)>를 보면, 스노든이 <홈랜드>를 들고 다니면서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홈랜드>에서는 주인공인 마커스가 스노든과 같은 역할을 맡고요. (웃음)
독서통 : 지금 우리가 휴대전화로로 하는 통화는 당연히 도·감청되고, 인터넷도 말할 것 없고, 신용카드도 얼마든 추적할 수 있고. 그렇다면 거의 모든 일상이 다 노출된 거죠?
최세진 : 그렇죠. 요즘 집회에서 영장 없이 휴대전화기를 압수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요, 만일 그게 복제되고 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단순 통화 내용뿐만 아니라 문자 주고받은 것, 드나드는 사이트 비밀번호, 사진, 음성 기록, 그 외 나의 위치 정보가 다 공개됩니다. 그것만 대조해도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다 알 수 있죠.
휴대전화기를 빼앗으면, 그 사람 머리를 열어서 텔레파시로 훑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걸 통해서 클라우드(저장소)까지 접속할 수 있으므로, 자기의 정보를 전부 (정부가) 열어볼 수 있죠. 굉장히 위험한 상태로 가고 있는 거죠.
독서통 :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 국토안보부에 잡히는데, 국토안보부에서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게 휴대전화기 비밀번호죠. 그걸 얘기 안 해서 고초를 겪기도 하고.
이제 이 얘기를 해보죠. 몇 년 전 CCTV가 너무 많이 설치됐다, 한 직장인이 집에서 나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CCTV에 몇 번 찍히는가. 이걸 쭉 추적한 기사가 있는데, 80번이 넘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최세진 : 아마 지금은 훨씬 더 늘어났을 겁니다.
독서통 : 그게 벌써 10년 전 이야기예요. 지금은 더 문제 되는 게, CCTV의 인식률이나 해상도가 엄청나게 높아져서, 안면 인식 기술과도 연계시킬 수 있어요.
최세진 : 안면 인식 결과 자체가 데이터베이스화되고요.
독서통 : CCTV도 그렇고, 얼마 전 메신저 도·감청 얘기도 나왔죠. 총괄적으로 여쭙고 싶은 게, 우리나라의 빅 브러더가 작심하고 최세진 선생님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고 가정해 보죠. 그렇다면 그때 동원할 방법을 쭉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최세진 : 가장 먼저 휴대전화기를 해킹하거나, 아니면 휴대전화기를 압수해서 그 내용을 열어보는 거겠죠.
독서통 : 휴대전화기 해킹은 예전에 얘기된 국정원 해킹 팀의 방식대로 하겠군요. 야동이 첨부된 메일 같은 걸 보낸 후, 그 파일을 클릭하면 바로 해킹되는 방식이요.
최세진 : 예. 휴대전화기가 위험한 게 24시간 내 몸에 부착되어 있거든요. 대부분 타인과 소통이 휴대전화기로 이뤄집니다. 실제로 해킹을 해버리고 나면, 감시자가 녹음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어요. 해킹 툴을 이용해서 타인을 만났을 때 대화를 녹음하고 나서 그 파일만 몰래 꺼내오면 바로 옆에서 도청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생기는 거죠. 휴대전화기를 장악하면 그 사람의 모든 걸 장악할 수 있죠.
그 외의 것들은 당연히 컴퓨터로 감시할 수 있죠. 마우스 움직임이나 키보드 치는 것까지 다 감시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의 사회 활동 대부분을 읽어 들일 수 있죠.
독서통 : 내 휴대전화기와 컴퓨터만 장악하면 빅 브러더가 거의 90% 이상 내 일상을 들여다본다?
최세진 : 예. 거기다 한국에서는 영장만 제시하면 신용카드 기록도 볼 수 있죠. 1990년대 이후 이미 정보통신 운동에서 나온 얘기가 뭐냐면, 신용카드만 분석해도 한 사람의 60여 가지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독서통 : 60여 가지요? 어떤 건가요?
최세진 : 일단 소득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요. 취향, 이동 기록 등을 알 수 있죠. 이것들을 종합하면 그 사람의 종교,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이 사람이 내년 언제쯤 뭘 하리라는 것까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독서통 : 허….
최세진 : 휴대전화기의 경우, 작년 <보잉보잉>에 실린 기록을 보면 한 사람의 핸드폰을 2주 정도만 분석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 80여 가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성 활동까지도요.
독서통 : 이 말씀을 들으니 한참 전에 들은 무서운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우리나라의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같은 '타깃'이라고 하는 대형 마트가 있어요. 거기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확인해서 카탈로그와 할인 쿠폰 등을 미리 보냅니다. 어느 날 어떤 아저씨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내 딸이 처녀인데, 내 딸에게 아기용품 카탈로그를 왜 보내느냐"고 매장에 항의했어요. 그런데 몇 개월 후, 그분이 사과했어요. 딸이 실제로 아빠를 비롯한 가족 몰래 임신했던 거죠. 마트가 여성이 통상 임신을 하면 보이는 구매 기록에 그 소비자(딸)가 겹치는 걸 보고 해당 카탈로그를 보낸 거죠. 부모도 모르는 사실을 마트는 안 겁니다.
최세진 : 나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면, 실제로 데이터 분석자가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10월만 되면 책을 사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서점이나 출판사는 나에 맞춰서 9월에 미리 홍보 전단지를 내게 보내는 거죠. 이 사람은 영화를 몇 편 본다, 어떤 영화를 본다는 내용도 관련 구매 정보만 보면 되죠. 그러면 이 사람의 세계관, 관심사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서들이 주도해서, 정확한 영장이 없으면 대여자의 도서 대여 기록을 내주지 말자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어요.
독서통 : 그것 중요한 문제이겠군요. 자칫하면 사상 검증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숨을 곳이 없는 겁니까?
최세진 : 최대한 데이터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게 일단 중요하고요.
프라이버시, 헌법에 보장된 내 권리이자 의무
독서통 : 스마트폰을 쓰지 말아야 합니까?
최세진 : 이 시대에 타인과 관계를 계속 이어가려면 스마트폰을 쓸 수밖에 없죠. 이 책에도 언급됩니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일단 모조리 암호화해야 합니다. 각 기기를 암호화하는 거죠.
독서통 :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설정하라는 건가요?
최세진 : 그것과 다릅니다. 일단 말씀이 나왔으니 스마트폰 바탕 화면의 비밀번호부터 얘기해보죠. 흔히 패턴 비밀번호를 많이 이용하죠? 그런데 그게 참 허술한 방식입니다. 햇빛에만 핸드폰을 비춰봐도 패턴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보면 바로 패턴이 나오고요.
독서통 : 요즘은 지문 인식 기능도 나왔잖아요?
최세진 : 그건 더 위험하죠. 생체 인식 정보가 스마트폰에만 남아 있으면 괜찮은데, 타인에게 해킹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유출될 경우 내 지문 정보가 유출되죠.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주민등록정보는 법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데, 지문은 변경할 방법이 없습니다.
독서통 : 요즘 스마트폰에 지문 등록이 안전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군요.
최세진 : 더구나 이 책에도 주인공이 잡힌 후 정부가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밀번호는 어쨌든 요구해야 하지만, 지문은 강제로 그냥 찍으면 되죠. 강제로 내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거죠.
독서통 : 그렇군요.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암호화라는 건 뭔가요?
최세진 : 스마트폰 안에 내 정보를 다 보관하고 있잖아요? 이 정보 자체를 통째로 암호화하는 겁니다. 암호가 없으면 이 자료가 전부 쓸데없는 잡음처럼만 남는 거죠. 보통 경찰이 스마트폰을 압수해가면, 사실 비밀번호를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칩을 빼서 복사해버리면 되거든요. 그러면 그 내용을 열어볼 수 있죠. 그런데 저장된 정보 자체를 암호화해버리면 복제하더라도 읽을 수 없죠.
아이폰 같은 경우 iOS 8.0부터 자동 암호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별도의 암호화가 필요 없습니다. 8.0 이하는 암호화해야 하고요. 지난주에 국가정보원에서 "아이폰이 보안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시끄러웠잖아요? 아이폰 같은 경우 보안 분야를 강화하는 특성이 있는데 국정원이 거기에 접근을 못 하니까 열불이 난 거죠. (웃음)
독서통 :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용자 90%가 안드로이드폰을 쓰잖아요?
최세진 : 예. 안드로이드 같은 경우 4.0부터 암호화가 됩니다. 그런데 본인이 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설정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기본 설정 메뉴에 들어가서 일반 메뉴의 보안 메뉴를 누르면 '휴대폰 암호화' 내지 '디바이스(기기) 암호화'와 같은 버튼이 있습니다. 이를 실행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가진 정보를 암호화해야 하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독서통 : 이건 빅 브러더도 못 뚫는 겁니까?
최세진 : 아직은 안 뚫린 거로 알려졌습니다.
독서통 : 평소 사용할 때는 조금 불편하겠네요?
최세진 : 이용할 때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니까 불편하겠지만, 실제로는 우리 집 나갈 때 문 잠그고 나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습관화하는 게 좋죠. 암호화를 해 놓으면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리더라도 또 혹시 경찰과 같은 국가 기관이 내 휴대전화기를 입수해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내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독서통 : 사생활을 지키고 싶은 청취자들께서는 오늘 방송을 들은 후 꼭 휴대전화 암호화를 하시길 바랍니다.
최세진 : 단순히 초기 화면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건 도둑들이 내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내 정보를 빼내는 데는 무력합니다.
독서통 : 컴퓨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세진 : 컴퓨터의 경우 별도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건 이 자리에서 얘기하기는 힘들고요. 진보네트워크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디지털 보안 가이드라는 홈페이지가 따로 연결됩니다. 거기 들어가서 윈도 기기 암호화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것 역시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암호화하는 겁니다. (☞ 바로 가기)
독서통 : 그런데 우리 사회의 많은 분이 "자기가 떳떳하면 경찰한테 스마트폰 빼앗기든, 컴퓨터가 털리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거예요.
최세진 : 그게 큰 착각입니다. 프라이버시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잖아요.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게 범죄지,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건 범죄가 아닙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정보가 털리면 나와 통화한 다른 사람 정보까지도 전부 다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게 나와 친한 사람의 프라이버시까지 지키는 겁니다. 흔히 회사에서 노동자를 감시할 때 앞서 언급한 논리를 얘기하죠. 사무실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전화를 도청하거나, 컴퓨터 이메일을 회사에서 마음대로 열어보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떳떳하면 뭔 상관이냐?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노동자 감시 관련 불법화 입법이 진행될 때 국회의원이 한 얘기가 "프라이버시 침해는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겁니다. 프라이버시를 설명할 때 이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 "여러분이 부인과 섹스하거나 대변을 보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운동장 한가운데서 하진 않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걸 지켜보는 게 불법이고, 여러분 자신도 내가 지켜야 할 영역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국가는 당연히 그걸 보호해야 한다는 거죠. 회사 내에서도 노동자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동의 없이 감시 카메라로 찍거나 도청하는 등의 행위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죠.
한국에서 (실상과 달리) 의외로 통신비밀보호법이 굉장히 엄격합니다. 부인이나 애인이라도 본인의 동의 없이 혹은 영장 없이 도청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을 받습니다.
독서통 : 오늘도 뉴스가 하나 나왔죠. 전 남친이 전 여친의 페이스북에 몰래 들어갔다가 처벌받았죠.
최세진 : 실제로 한국의 프라이버시권이 많이 취약하긴 하지만, 통신 부문에 굉장히 규제가 강한 이유는 예전 초원복집 사건 때문입니다.
독서통 : 알죠. 김기춘 씨가 등장하는…. 그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죠.
최세진 : 그 사건이 도청 사건이잖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도청에 관한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만들어진 게 통신비밀보호법입니다. 제정 당시는 3년 이하였다가 지금은 징역 기간이 7년 이하로 늘어났습니다.
프라이버시 의식 없는 한국 기업, 한국 정부
독서통 : 빅 브러더로서 우리나라의 감시 상태가 외국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최세진 : 얼마 전 카카오톡 사건을 보셔도 아시겠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일단 기업이 매우 협조적이고요. 영장 없이도 협조 요청서 한 장만 보내면 협조하기도 합니다. 도청이 아니라 통신사실 확인 자료라고 하는데, 통화 내역도 국정원이 매일 수만 명의 기록 수집을 요구합니다. 기업은 그냥 제공해주고 있죠.
독서통 : 기업이라는 게 이동통신사일 수도 있고, 신용카드사일 수도 있고, 포털사이트 회사일 수도 있고요?
최세진 : 예. 도청도 영장이 필요하지만, 영장 승인율이 다른 영장에 비해 상당히 큽니다. 거의 100% 국정원이 도청하고 싶은 경우 영장만 형식적으로 신청하면 언제든지 도청이 가능한 거죠.
독서통 : 카카오톡 감청 사태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도·감청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올라갔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 이야기하는 부분, 사후에 내 기록을 들여다보는 부분은 정말 심각한 거네요.
최세진 : 또 하나 심각한 부분이 주민등록번호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이런 식의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므로, 각개의 개별 정보를 별도로 수집하고 찾아야 합니다. 한국은 주민등록번호만 쫙 돌리면 모든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정보를 일시에 다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독서통 : 어딜 가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이미 다 퍼뜨려졌는데 무슨…. (웃음)
최세진 : 우리는 휴대전화기를 구입할 때도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하고, 인터넷을 신청할 때도 제시해야 하잖아요?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거든요. 각각이 다 개별 정보일 뿐입니다.
독서통 : 다른 나라의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므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는 A라는 사람과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B라는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매칭하기 어렵다는 거군요.
최세진 : 그렇죠. 굳이 내가 실명을 제시해야 할 이유도 없고요.
독서통 : 그러고 보니 언젠가 미용실에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해서 싸운 기억이 나네요. (웃음)
최세진 ; 그게(주민등록번호가) 프로그래머에게는 굉장히 편리한 식별도구거든요. 전 국민이 중첩되지 않는 유일한 코드번호니까요.
독서통 : 어느 순간부터 '빅 데이터'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빅 데이터를 활용하고 분석해서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들 한단 말이에요. 이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최세진 :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개인의 익명성이 보장되면 상관없지만, 이미 한국에서 데이터가 추적되는 과정이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껏 얘기했듯이 대부분 데이터가 주민등록번호와 연동돼서 이용되기 때문이죠. 더구나 사후에 제대로 폐기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관공서도 일주일 내지 한 달에 한 번씩 어디 정보가 열렸다느니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까요.
빅 데이터가 우리의 요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업의 요구나, 아니면 무언가를 통제하거나 관리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여러 가지 위험성을 갖고 있죠.
정부가 빅 브러더가 되려 한다면?
독서통 : 우리가 계속 관련 이야기를 넓혀갔습니다만, 이제 다시 책으로 돌아와야겠습니다.
스토리 골격을 다시 얘기하자면, 샌프란시스코에서 테러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피신했던 시민을 마구잡이로 테러 용의자로 간주해 끌고 갑니다. 그 사람 중 우리의 주인공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풀려나지만, 친구 하나는 억울하게 계속해서 억류되죠. 부모는 테러로 죽은 줄 알고요. 주인공은 이제 빅 브러더인 국토안보부와 '맞짱' 뜨는 '리틀 브라더'가 되죠.
이 책이 출간되고 미국 사회에서 반응은 어땠어요?
최세진 : 공개될 당시 6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올라갈 정도로 일단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남아있으니까요.
독서통 : 미국 시민도 감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누적되어 있다고 봐도 됩니까?
최세진 : 당시 '애국법'이 시끄러웠습니다. 9.11 이후 영장 없이도 마음대로 체포하고 도청할 수 있는 법률이죠. 범죄를 저질렀을 때 구금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의심만으로 강제 행위를 국가가 할 수 있게 됐죠. 거기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는 와중에 이 책이 나온 겁니다.
독서통 : 이 책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였어요.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환데, 거기는 NSA가 등장했던가요? 이 책도 영화화된다면서요?
최세진 : 예. 이 책 출간 직전에 들은 소식인데요. 파라마운트사에서 이 책을 영화화하기로 하고 계약했다, 그리고 지금 각본 작업에 들어가 있다, 정도까지 들었습니다.
독서통 : 이 책을 선정한 이유 중 하나가, 테러를 빌미로 해서 정부가 무차별로 시민의 인권을 짓밟는 것을 넘어 소셜 미디어를 조작해 선거 결과에까지 개입하려고 하는 설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잖아요.
최세진 : 번역을 논의하고 있을 때 그 사건(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이 터져서요. 더구나 막 번역하고 있는데 국정원 해킹 사건이 터졌죠. "이 책 빨리 내야 한다"는 얘기가 오가곤 했네요. (웃음)
이 책은 국가가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수준의 경고가 아니라, 어떻게 저항할 것이냐에 방점이 찍혀 있으므로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 이미 인권 단체 등에서 집회 때 휴대전화기를 압수하지 말라고 경찰에 요구하는 기자 회견도 열리고 해서, 이 책 내용을 빨리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죠.
독서통 : 며칠 전 새누리당이 복면 금지 법안을 발의했죠. 사실 (스마트폰 무단 압수와) 같은 맥락이에요.
최세진 : 익명성을 포기하라는 거죠.
독서통 : 국정원에서 가장 관심을 둔 법은 또 테러방지법이잖아요?
최세진 : 미국 애국법을 모태로 한 법이죠.
독서통 :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던 게, 공항에서 나체 수준으로 다 찍게 만드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이었어요. 대통령은 얼굴 가리는 게 테러리스트나 하는 짓이라고 하고요. "네가 잘못한 게 없으면 우리가 들여다보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죠.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테러 이후의 이야기인데, 테러의 공포에 짓눌린 시민도 정부가 우리를 감시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게 되죠. 당장 주인공 아버지도 그렇고요. 박근혜 대통령도 똑같은 논리를 펴죠.
최세진 :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버지가 386 세대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의 68 세대죠. 그런데 젊었을 때는 정부에 저항한 분이 테러 이후에 "정부에 협조해야 한다"고 자식에게 강요하죠.
독서통 : 테러분자에 이를 갈고 협조하죠.
최세진 : 익명성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거든요. 국가라는 기구가 워낙 힘이 크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은 익명성 안에서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익명성을 포기하는 순간, 개개인은 국가와 바로 얼굴을 마주 보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기본권으로 사생활 보호 조항이 있는 거죠.
헌법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국가를 통제하기 위한 거지, 국민을 통제하는 법이 아니잖아요. 헌법 정신을 쟁취해가는 과정이 전 세계 민중의 역사라고 얘기할 정도인데, 복면 금지 법 등으로 이를 포기하라고 하면 안 되죠. 실제 경찰들도 카메라 찍히는 게 부담돼서 집회 때 마스크를 많이 쓰고 나오거든요. (웃음)
독서통 : 집회 현장 나가보면 정보과 형사들도 마스크 쓰고 나오죠. (웃음)
최세진 : 국가는 국민에게 자신의 정체를 계속 밝히고, 모든 일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권력을 쥐고 있으므로. 정부는 국민의 동의와 국민이 낸 돈으로 유지되는 기구이기 때문에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그럴 의무가 없죠.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는 당연히 체포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이상 익명성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는 거죠.
독서통 : 코리 닥터로우가 한국어판 서문도 썼어요. 서문에 보면 국정원 해킹 사건을 언급합니다. 혹시 서문과 관련해 작가와 대화를 나눈 적 있나요?
최세진 : 책을 내기 전에 얘기했고요. 이미 코리 닥터로우가 <보잉보잉>에 그 내용을 계속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특별히 별도로 '이렇게 써 달라'고 요청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독서통 : 한국어판 서문과 무관하게, 한국에서 벌어지는 해킹 팀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둘러싼 공방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군요?
최세진 : 예. <보잉보잉>에 크게 실렸습니다. 이 책 출간 직후에도 논란이 난 적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마다 검열 툴이 있거든요. 여기에 <보잉보잉>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코리 닥터로우가 트위터로 "<보잉보잉>이 한국에서 차단됐다는 얘기가 있는데,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확인해 보고 일부 기업이나 PC방에서 차단됐다는 사실을 알렸죠. '보잉보잉'이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성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해서 그런 건지.
독서통 : A라는 회사 직원이 회사 내에서 컴퓨터를 쓸 때 <보잉보잉> 접속을 차단한다는 건 알겠는데, PC방에서 왜 차단해요?
최세진 : PC방 연합회에서 만든 검열 툴에 걸립니다. 그 이유는 그쪽에 여쭤보셔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요새는 학생들이 대학교마다 온라인에 ‘대나무숲’이라는 걸 만들어서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데, 거기서도 검열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지난주에 관련 논쟁이 펼쳐졌더라고요.
검열하고 통제하는 게 관리자의 당연한 기본권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같아요. 이용자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이고, 검열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상식이 없어지고, 내가 권력을 잡으면 '이것들은 통제하고 삭제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굉장히 일반화된 것 아닌가 싶어요.
독서통 : 중요한 얘기를 해 주신 것 같아요. PC방 주인도 검열할 수 있는 기술적 권력을 갖고 있고, 거기에 덧붙여서 데이터까지 갖고 있으면 뭔가 통제하고 주무르려는 욕망이 발산된다는 거잖아요?
최세진 : 사회적으로 프라이버시권뿐만 아니라 검열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1980년대부터 계속해서 싸워왔지만, 아직도 일반인 의식 수준에는 국가의 통제나 감시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싶어요.
독서통 : 사실 "내가 부모인데 내 자식 일기장 볼 수도 있지"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나는 부모고, 내 자식은 내가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니 그 아이의 생각이 어떤지 알아보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죠. 부모를 국가로 대체하면 문제가 발생하죠.
오늘 기기 암호화도 배우고, 여러모로 유익한 자리군요. (웃음)
최세진 :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각각 기기를 암호화하고 나면 기기 간 소통도 암호화해야 하거든요. 그게 통신이잖아요. 이 두 가지가 암호화되고 나면 내 기기를 둘러싼 모든 게 암호화되는 겁니다.
보통 메신저나 카카오톡 감청 문제가 터지고 나서 사람들이 텔레그램으로 많이 옮겨간 이유 중 하나가, 텔레그램에서 비밀 대화를 사용하면 그 자체가 암호화되거든요. 도청해도 그 내용을 열어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서버가 외국에 있어 영장만으로 쉽게 열어볼 수도 없죠.
통화 내용도 그런 식으로 암호화할 수 있는 앱이 있습니다. 지금도 통신사에서 도청하면 언제든 우리 통화 내용을 열어볼 수 있는데, 앱을 사용하면 여기서 암호화해서 넘긴 후, 저쪽에서 암호를 풀어서 귀로 들려주는 방식이라서 도청하더라도 소음밖에 안 들립니다.
독서통 :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게, 디지털 기기의 최고 장점이 간편화와 속도 아닙니까. 상호 연결도 있고요. 그런데 그게 최대 맹점이 되어버리고 있으니, 그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간편화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네요. 일종의 디지털 역설이군요.
최세진 : 사이버테러방지법 이야기도 지금 나오고 있거든요. 역시 감청을 쉽게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독서통 : 국정원의 논리는 "외국 테러리스트들이 우리나라 경유를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함부로 도·감청을 못하니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잡을 수 없고, 따라서 테러 방지를 못 한다는 거죠.
국정원의 '뒷문 열어주기'
이런 식으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해커로서는 (한국이) 운동장이죠. 해킹 사건 터질 때마다 논란이 되는 건 뭐냐면, 국가 기관이 쉽게 열어볼 수 있으면 해커도 쉽게 열어본다는 겁니다.
통신사는 국가조차도 쉽게 열어볼 수 없도록 고객 정보를 암호화해야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고요. 국정원 요구는 "우리가 언제든 열어볼 수 있도록 해라"는 건데, 그러면 뒷문을 크게 열어놓자는 겁니다.
독서통 : 굉장히 중요한 지적인 것 같아요. 우리가 편하게 열 수 있도록 보안 장치를 설정하면, 테러리스트도 쉽게 열어볼 수 있다는 거군요. 책을 보면 "가장 좋은 보안은 그 내용이 모두에게 오픈된 것"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라도 한국을 거치다가 액티브엑스 때문에 열 받아서 안 쓰지 않을까요? (웃음)
최세진 : 해커들의 경험인 거죠. 특정 보안 시스템의 기법이 공개되고, 해커들끼리 경쟁적으로 실험해봤을 때 그 방식을 열 명의 해커가 못 뚫으면 열한 번째 해커도 못 뚫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보안 방식을 숨겨놓으면, 누군가가 뚫고 나서 안의 내용을 다 열어볼 수 있게 됩니다.
보안의 방식은 과학자들끼리 검증하듯이 해커나 컴퓨터에 관심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역설이죠.
독서통 : <리틀 브라더>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국토안보부는 물샐 틈 없는 방비 망을 짠다고 하지만, 그게 참 어리석은 짓이다"는 겁니다. 사실 본인을 '리틀 브라더'라고 묘사하는 주인공이 번번이 빅 브러더를 엿 먹이잖아요.
최세진 : 코리 닥터로우가 서문에도 그 얘기를 했거든요. "서울에서(국정원에서) 휴대전화기를 해킹해서 열어볼 수 있다면, 평양에서도 열어볼 수 있는 뒷문이 남는 것"이라고요. 결국, 한국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뒷문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거죠.
독서통 : 국정원에서 할 일은 자신들의 쉬운 도·감청 체계 마련이 아니라, 이런 위험성을 시민에게 알리고 암호화해 보안 가이드라인을 높이는 거라는 말씀이죠. 그래야 테러리스트나 북한의 접근도 어려워진다는 거죠.
최세진 : 그렇죠. 학교에서도 "교사가 요구하면 가방을 열어라"가 아니라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시대니 너희의 프라이버시를 이렇게 지키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번역자도 창작자입니다"
독서통 : 알겠습니다. 이 책이 올해 10월에 우리나라에 나왔는데요, 반응 좋습니까?
최세진 : (새 출판사의) 처음 시작으로는 아주 괜찮은 편입니다.
독서통 : 번역이 굉장히 잘된 것 같습니다. 문장 흐름도 너무나 매끄러웠습니다. 이참에 여쭤봅니다만, 번역할 때 어려운 게 뭐죠?
최세진 : 일단 대가겠죠. 번역의 대가. (웃음)
독서통 : 번역만 해서는 밥 벌어 먹고살기 쉽지 않다?
최세진 : 예. 거의 단순 반복 작업에 가까워서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고.
독서통 : 원문 문장이나 단어에 부합하는 가장 적절한 한국어를 고르는 문제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최세진 : 예. 한번 번역하려면 최소 일고여덟 번 책을 봐야 하거든요. 책을 열기만 하면 거의 신물이 날 정도죠. 보통 (제가 번역한) 책 나오면 안 보고 집어넣는데, 이 책은 그 뒤에도 몇 번 확인할 게 있어서 봤더니 또 어색한 문장이 나오곤 하더라고요.
독서통 : 그래서 어떤 분이 번역도 창작이라고 얘기하셨죠. 맞는 얘기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번역의 전문성을 잘 안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요.
또 하나 어려운 점은 번역이라는 업 자체를 우습게 보기도 하고요. 많이들 뛰어들었다가 책 한 권을 다 끝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독서통 : 알겠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공과 주인공 아버지의 관계에서 우리나라 386 세대와 그 아들딸인 중고생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두 세대가 이 책을 같이 읽고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모르는 게임 용어라든가 인터넷 용어가 책에 꽤 나옵니다. 분명히 아이들은 너무나 잘 알 거고요. 이런 면에서도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보화 사회의 그늘, 그 뒷면은 아마 감시 사회가 될 텐데, 그 실태가 어떻게 극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그리고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도 보여주는 책이 오늘 소개한 <리틀 브라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 선생님 혹시 못한 말씀 있으신가요?
최세진 : 일단 이 책이 그렇게 어둡지 않고요. (웃음) 굉장히 신납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고요. 혹시 오역을 발견하신 분은 조용히 알려주시면 조용히 수정하겠습니다. (웃음)
독서통 : 알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신 최세진 씨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최세진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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