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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실험, 그 결과는…

[화제의 책] <한국 해외 입양>

여성학 연구자로서 한국 입양과 그 가족에 관한 연구로 학위논문 주제를 잡고 연구를 시작하던 4년 전. 예전 1960년대나 70년대의 국내 관련 자료들을 찾아 오래된 도서관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사직단 근처 '사회과학자료원'에서 입양관련 자료를 찾던 중 한국 국제입양 정책과 실천의 역사에 관한 영어 원서(원제 : International Korean Adoption -A Fifty-Year History of Policy and Practice)를 발견했다.


국제입양 역사에서 20세기 후반 한국이 끼친 영향과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입양에 대한 국내연구가 미시적인 입양 아동과 관련된 가족학, 아동발달 심리, 사회복지, 아동복지 연구들뿐이어서 정작 한국 사회 내외에서 입양의 의미를 설명해줄 사회학, 역사학, 인류학적 연구에 늘 목이 말라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 국제입양 정책 전반에 관해 역사적 시점으로 기술한 귀한 자료를 만난 기쁨에 주요 관심 단락을 복사해서 늘 곁에 두고 읽곤 했다.


바로 그 책이 <한국 해외 입양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실험과 분투하는 입양 서사 50년>이란 제목으로 이번에 '뿌리의집'에서 번역·출판 되었다. 번역 소식에 '아,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글로 한국 입양 역사와 입양인의 삶의 다양한 결을 직접 만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구나' 싶은 반가움이 앞섰다. 책을 번역·출판한 '뿌리의 집'은 지금껏 해외입양인의 권익옹호와 국내 입양담론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 책이 '뿌리의집'에서 낸 여섯 번째 책이다.


원래 2007년에 출판되었던 영어판이 올해 9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책은 한국 해외입양이 시작된 이후 2004년까지의 50여 년간의 해외입양 제도, 실천, 경험, 역사, 담론 전반을 열아홉 편의 논문으로 균형 있게 담아내고 있다.

방법론 및 접근 관점의 다양성 :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 해외 경험과 한국 역사의 혼합

▲<한국 해외 입양> (캐서린 자숙 바퀴스트 등 엮음, 뿌리의 집 펴냄) ⓒ프레시안
책의 구성은 사회역사적 배경, 새로운 가족의 형성, 한국인 입양에 대한 성찰, 출생국 관점, 전 지구적 관점, 실천을 위한 의미, 자원까지 총 일곱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내용 면에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재분류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제1부 사회·역사적 배경과 제3부 한국인 입양에 대한 성찰, 제4부 출생국 관점에서는 출생국이자 입양 송출국인 한국의 역사·문화·국가 등 사회·정치적 측면에서의 해외입양을 살피고 있다. 반면 제2부 새로운 가족의 형성, 제5부 전 지구적 관점, 제6부 실천을 위한 의미에서는 지구적 관점에서 새로운 가족 찾기로서 해외입양이 갖는 실천적 과제를 적응과 소속감, 정체성 등 개인적, 가족적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해외입양 50년 역사는 사회·역사·정치 등 구조적(또는 비개인적) 측면과 가족·가정·소속감·정체성 등 개인적 측면이 복합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쪽의 연구나 설명으로 전체적 조망이 불가능한 특성을 지닌다. 자연스럽게 책은 그러한 양 측면을 전체 구성 속에 교차시켜 반영하고 있다.


책에 실린 논문들의 저자의 면면을 통해서도 한국 해외입양 연구 관점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해외 교포 포함한) 한국인 저자가 참여한 논문은 전체 열아홉 편의 논문 가운데 열 편이다. 그 나머지 아홉 편의 반은 외국인 연구자의 연구물이고, 또 다른 반은 한국 출신 해외입양인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열 편 논문의 한국인 저자들은 학문 분야와 연구 방법에 있어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도 다양하나, 공교롭게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연구자인 허남순, 이봉주, 배태순은 모두 사회복지 전공자이자 교수로 국내에서 해외입양 연구가 주로 사회복지 및 아동복지와 관련해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해외 입양인의 네 편의 논문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 또한 이번 책이 갖는 특별함이다. 네 편의 논문은 제10장 침묵의 수의 걷어 올리기: 진리, 적법성, 정의를 찾는 한국인 입양인들(레베커 허티스), 제13장 한국인 입양 문제와 한국 대중문화에 재현된 입양인(토비아스 휘비네트), 제17장 아동 관련 문헌이 아시아 입양인의 입양을 어떻게 맥락화하는가(캐슬린 자숙 버퀴스트), 제19장 한국인 국제 입양 관련 참고 문헌(재닛 현주 클라크)이다. 이 논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한국출신 입양인들이 자신들의 경험·기억·정체성을 찾아온 긴 여정의 결과물이라는 점과 해외 입양인 연구자 그룹이 자신들의 연구 성과물을 통해 직접 국내 독자와 만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저자별 학문 분야와 특성별로 다시 책을 읽어가다 한국계 해외입양인 저자의 논문 네 편은 접근 방식과 관점에 있어서 (다른 비입양인 연구자들에 비해) 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고 탐구한 논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편집자들의 관점과 의도가 반영된 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방법론적으로 단선적이고, 제한적인 접근이 아마 그/녀들이 겪은 해외입양인으로서 던져왔을 삶의 질문에 답하고, 또 재현·설명하는데 충분치 않았을 수 있을 듯했다.

해외입양의 역사와 20세기 후반 현대사의 교차

'데이비드 엥'이 지적했듯이 해외 입양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제국주의, 이민, 인종, 성차별과 착취, 젠더화된 상품화 과정(책 184쪽)"의 일환 또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여러 입양역사 연구자들 사이의 정설이다. 특히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과 냉전 기간 동안 성장·산업화·젠더화된 상품화 과정을 거치는 동시에 해외입양 실행과 지속·확대·제도화의 측면에서 기록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20세기 후반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 수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식 기록으로 1948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으로의 국제 입양의 55.8퍼센트가 아시아 출신 아이들이었으며, 그 아시아 출신 아이들의 60퍼센트 이상이 한국출생 아동이었다. 즉, 20세기 후반 미국으로 국경을 넘어 입양된 전체 아동의 3분의 1이 넘는 34.8퍼센트, 아시아 출신 미국입양 아동의 2분의 1 이상이 바로 한국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냉전 시기 한국의 경험은 냉전체제가 해체되어간 1990년대 초반 이후 구 사회주의권의 중국, 러시아, 동유럽 국가의 해외입양으로 이어졌고, 해외입양은 세계적으로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냉전 해체 후 10년이 지난 2002년, 2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아시아, 동유럽, 남미 지역 국가에서 미국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이 수치는 10년 전인 1992년 해외입양 건수의 310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4명으로 첫 시작을 알린 해외입양은 냉전기 한국에서의 지속, 확대, 제도화를 거쳐 50년 후인 2002년에는 연간 2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국경을 넘어 제3세계에서 북미·유럽·오세아니아 국가로 이동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뿌리의집'이 선택한 부제 :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실험과 분투하는 입양 서사

'뿌리의집'은 이 책을 펴내면서 원래의 부제 'A Fifty-Years History of Policy and Practice'를 대신해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실험과 분투하는 입양 서사 50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는 해외입양이 당초 국가의 정교한 기획이나 계획이 아니라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의 구호라는 일시적 명분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입양 수령국과 송출국이 아동을 매개로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필요와 이유로 국제입양을 지속·확대시킨 양상을 고려한 비판적 명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한국 아이들이 인종·언어·문화적으로 낯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상당한우려와 두려움을 가졌다고 한다. 입양이란 아주 오랜 제도의 역사 속에도 그처럼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분리되어 홀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 옮겨 뿌리 내리기를 기대하고, 모색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시작된 국제입양은 인류사 최초의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실험'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2, 5, 6부의 내용은 그러한 이질적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입양인 개인·가족·연구자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지속적 실천과 모색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와 해외입양사

20세기 후반 한국과 서구 국가와 교류 (특히 한미관계) 역사에서 가장 민감하게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을 복합적으로 반영하며 그 영향과 결과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역사의 단층이 바로 해외입양사일 것이다. 아래 인용문은 책의 본문 가운데 기지촌과 혼혈 아동에 관한 내용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 안보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수행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의 혼혈 아동 입양정책에 의해 자신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냈던 생모의 제1세대이다. (중략) 혼혈 아동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험난할 것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해외 입양 일순위로 지정되었다(책 192쪽).

과연 우리는 해외입양사와 그 속에 반영된 현대 한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해 온전한 역사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을까? 그 몫은 (외국인 연구자 혹은 해외 입양인 연구자들이 아닌) 국내 입양 연구자들의 역할과 책임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냉정히 평가할 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해외입양사가 기존의 담론을 넘어서 새로이 한국 현대사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한국 해외입양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벽과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크고,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또한 적절한 또는 실속 있는 사회복지구조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미혼모들의 비합법성을 조장했다. 1981년에는 예산의 2.9퍼센트만 사회복지에 배정하고 그중 고작 32.5퍼센트를 아동복지에 할당했다. (중략) 정부의 지원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여성들은 민간 기관과 압도적으로 많은 기독교기관에서 도움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이 여성들 중 많은 이들이 국제 입양 말고는 다른 대안을 만나기가 극히 어려웠다(책 236쪽).

위 인용구는 1980년대 초 한국의 사회복지와 아동복지, 재정·예산, 미혼모, 기독교기관, 국제 입양의 연결을 보여주는 책의 한 부분이다. 해외입양은 아동 단독 이주로 시작되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와 사회사 전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입양인들의 역사는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뒤처진 이들, 그리고 한국의 근대성에 관한 공식적 이야기 바깥으로 버려진 이들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귀향하는 입양인들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 이면의 더 어두운 이야기들-가난, 이혼, 강간, 유기, 10대 임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시야 안으로 가져온다(책 170쪽).

한국 현대사 속 해외입양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술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 외원, 한미관계, 기독교 초기 선교, 원조, 개발, 도시화, 산업화. 독재와 같은 굵직한 이슈는 물론 가족계획 및 가족법, 젠더와 모성, 가부장성, 기지촌, 여공, 빈곤, 미혼모, 복지시설사, 아동복지 재원사 등의 주제와 해외입양의 연관성을 함께 분석해내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현대사 연구가 정치사와 일부 경제사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시기 면에서 해방이후 1950년과 60, 70년대 이후로 제대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미해결 난제로 당분간 남아 있을 듯하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분야가 직접·간접적으로 해외입양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입양 연구는 그 진척이 더디고,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귀환 입양인과 국내외 해외입양인 운동, '뿌리의집'의 만남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기억상실에 가까운 해외입양인과 그 관련 역사에 대한 망각에 그간의 공백을 매워줄 이 책을 번역·출판한 곳이 비영리사단법인 '뿌리의집'이라는 점이 책의 출판의 의미를 더한다. '뿌리의집'이 한국 해외입양인(운동)사에서 갖는 비중은 상당하며, 2002년 설립 이후 줄곧 해외입양인 권리 및 아동인권 옹호와 우리나라의 해외입양 문제의 해결을 도모해왔다. 특히 '뿌리의집'은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과정에서 여러 단체와 함께 힘을 모으는 구심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입양인의 이산의 이유였던 미혼모 가족과 그 자녀들의 이산을 막고, 그들 앞의 차별적 현실을 시정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번 책은 출판사로서 '뿌리의집'의 그간의 번역서에 담긴 내용들을 함께 모은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책의 표지는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덜란드 입양인 디자이너 '티에멘 힐버스(Tiemen Hilvers)'가 디자인 한 것이다. 표지 이미지를 통해 보통 가정 혹은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국경을 넘어 백인의 가정으로 해외 입양되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해 내었다. 옮긴이 유진월 또한 학술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 해외입양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성찰을 해온 연구자이며, 동시에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극작가이다.


책의 몇 가지 한계와 과제, 그리고 변함없는 가치

번역서인 이 책의 원저가 갖는 의의와 장점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는 몇 가지 한계와 약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저자도 밝힌 바와 같이 출생국/생부모의 목소리가 부재하거나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입양에 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본인도 마찬가지로 마주하는 벽이자 과제인데, 책의 영어판 출판 이후 아직도 그 상황에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 전 지구적 현상이자 현실이 된 국제입양이 그 출발과 확대 과정은 물론 이후 입양인의 귀환과 가족 찾기까지 여러 이전의 경험과 사례를 참고하는 대상국이기도 한 한국이지만, 실상 그 내부적 연구와 자료축적을 아직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입양의 개척자이자 첫 실험 참가자로서 한국과 한국 해외입양인이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출생국의 경험과 사회상황, 해외입양의 기원과 확대, 제도화 과정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영향을 주고받았을 여러 국내외 요인들과의 비교 연구는 물론 객관적 자료와 수치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입양 담론과 해석을 맴돌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안타깝다. 이를 객관적 자료와 국내적 시점에서 재구성해내어 기존의 입양 논의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국내 입양연구자는 물론 해외에서 입양 역사를 탐구하는 연구자, 해외의 수많은 해외입양인 또한 기다리고 있는 바일 것이다.


두 번째 한계점은 연구 결과가 가족·개인·소속감 같은 미시적(혹은 인격적) 요소와 국가·역사·문화·인종과 같은 거시적(혹은 구조적) 요소들을 교차시켜 보여주지만 그 사이에 존재해왔고, 결핍되고, 상상되고, 침묵 속에 머문 요소들인 중간(meso)단위 요소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의 아동 출산과 기아, 여성과 모성의 변화, 지역단위 사회·경제적 요인과 인구학적 이주·도시화 등 중간 단위 논의가 없는 국가와 민족, 인종이라는 거시(macro)영역과 개인과 가족이라는 미시(micro)영역 논의는 본질론·환원론적 논의로 이어지는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거시적 요소가 본질적이고, 추상적으로 규정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경우 이어지는 논의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그런 양상은 한국의 입양역사 설명에서도 반복된다. 중간 단위의 복합적·과정적 설명이 부재한 가운데 한국 해외입양의 기원과 확대, 1970년과 80년대 폭발적 증가, 민주화 이후 감소, 2005년 전후의 재감소 등 한국전쟁 후 60여 년간 입양된 한국아동 수치의 증감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저 한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이를 품어 기를 수 없고, 국내 입양 수요는 늘 모자라고, 아동복지 시설은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못한 공간이며, 전쟁으로든 반세기가 지난 2010년대든 여전히 해외입양은 어쩔 수 없는 대안이자 해결책이자 눈물어린 탈출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과정이 생략된 운명론적 본질주의로의 환원에 익숙한 해외입양 담론이 바뀌지 않은 고착 상황은 해외입양인의 교착되고 파편화된 한국(입양)에 대한 기억의 단층들 속에서 목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한계라기보다 출판 이후 다양한 변화를 다 담지 못한 공백에 관한 것이다. 영어판 출판을 전후해 진행된 한국 해외입양인 국내외 조직화 운동과 그 운동 단체들이 국내 정책 내 입양 담론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민운동 주체로 등장한 점은 개정판이나 새로운 60년사, 70년사가 쓰여 질 경우 덧붙여질 내용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성인 입양인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단체들인 TRACK(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의 모임), 국외입양인연대(ASK), 뿌리의집(KoRoot), 한국미혼모가족협회(KUMFA), 입양인원가족모임민들레 등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연대하여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을 이끌어 내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에는 해외입양을 나가게 될 아동은 물론 해외로 나가있는 한국입양인에 대한 국가·정부의 관리·감독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네 번째 한계점은 연구 논문의 저자나 내용 측면에서 유럽 지역 연구 결과들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한국 해외 입양인의 분포에서 미국 등 북미로의 입양아동 수의 절반에 가까운 많은 아동이 유럽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해외입양 수용국 상황과 입양 아동수의 증감의 연관성이나 시대적 설명, 한국 입양인의 적응과 정체성 등에 관한 유럽 지역 연구 성과들이 이번 책에 포함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책의 논문 가운데 두 편만이 유럽 출신 연구자의 것인데, 그 중 한편은 스웨덴 한국 입양인 토비아스 휘비네트가 쓴 한국 대중문화에 재현된 입양인에 관한 연구이고, 다른 한편은 네덜란드 한국 입양인에 대한 추적 연구를 한 연구이다. "1953년부터 2003년 사이 한국인 해외 입양 건수는 미국(10만2626명), 프랑스(1만1042명), 스웨덴(8830명), 덴마크(8518명), 노르웨이(5993명), 네덜란드(4099명), 벨기에(3697명), 오스트레일리아(3039명), 독일(2352명), 캐나다(1739명), 스위스(1111명), 뉴질랜드(559명), 룩셈부르크(468명), 이탈리아(382명), 영국(72명)을 포함하는 15개국에서 15만4573건에 달했다(책 406쪽)."

이런 기록을 고려할 때 앞으로 미국과 유럽의 비교를 통해 정확한 시기별 증감과 입양 당사국 내외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연결해 분석한다면 한국 해외입양 연구는 물론 이주사적 비교 연구로서도 충실한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다섯 번째 한계점은 미국 20세기 후반의 주요한 변화들, 가령 인종과 여성, 인권운동과 같은 주요한 변화와 해외입양 증감의 연관성을 깊이 있게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 실린 미국 내 해외입양 연구물들이 입양을 주로 개인·가족·개별 인종적 정체성 등 개인적(혹은 미시적) 영역에 한정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국제 입양에 대한 학술 연구들은 20세기 후반 국제 입양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맥락을 인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60년 피임약 도입 이후 미국 태생 백인 아이들의 감소, 1973년 낙태 합법화, 한부모에 대해 점증하는 사회적 인정, 백인 가정에서 흑인·인디언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한 인종적 긴장 등을 포함한다(책 47쪽)."

이 글을 통해 볼 때, 한국의 해외입양은 한국 내부적 요인만이 아니라 미국 내부 조건 변화가 함께 연결되어 진행될 수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미국 내 인종·여성·소수자 인권의 향상에 따른 (미국 내 백인 아동)입양 감소로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아이들이 (한국의 필요보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한국전쟁 이후인 1950년대와 60년대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미국으로 입양된 요인의 하나일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살핀 논의는 책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이처럼 미국 내 연구들이 미시적 영역에 주로 제한되면서 한미 양국의 사회·정치·외교적 관계 양상의 변화와 해외입양사를 함께 검토하는 연구가 적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으로 여섯 번째 한계는 입양담론 어디에도 진지하게 질문된 적이 없는 해외입양의 윤리적 문제가 여전히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아동이 한국 내에서 태어나 합법적 시민권·국적권을 갖지 못하고 해외로 입양된 사실은 실질적 국가의 강제 이주로서 그 폭력성과 국가 책임을 충분히 물을 수 있는 지점이다. 올해 국내에도 보도된 '아담 크랩서(Adam Crapser, 한국이름 신성혁 혹은 신송혁)'의 추방과 관련된 소송이나 작년 많은 사람을 슬프게 했던 입양 3개월 만에 양아버지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현수군 사건은 한국의 해외입양이 오랫동안 간과한 윤리적·시민권적 문제를 다시금 인식하게 했다.

지금껏 한국 해외입양 연구와 담론이 해외입양 과정에서 늘 선과 악의 경계와 위험이 공존함을 인정하고, 이 악의 요소를 줄여낼 방안을 제대로 갖추는 노력을 얼마나 해왔을까? 절대 선 혹은 차선책으로서 해외입양은 늘 그 근본적 시민권적·윤리적 질문을 면제받아 왔거나 외면해 왔고, 이번 책에서도 그러한 반성과 성찰은 제대로 담기지 못하였다. 아래 인용문은 입양인과 그 생모가 여전히 도덕적·윤리적 질문 그 자체임과 동시에 여전히 국가적 트라우마이자 억압된 기억에 갇혀진 존재임을 확인하고 묘사해줄 뿐이다.

돌아온 입양인들의 존재는 한국 정부와 그 국민에게 잊힌 기억을 일깨우게 했다. 입양인들은 '왜 나의 부모는 나를 키울 수 없었는가', '왜 나는 머나먼 외국으로 보내졌는가.'라는 도덕적·윤리적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한국 역사에서 유령과도 같은 존재였던 입양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역사에서 누락된 입양인 개개인의 트라우마를 공적 공간으로 불러들였다. 한국에서 외국으로 입양되었던 무수한 아이들과 그들의 생모들은 억압된 국가적 트라우마 그 자체이다(책 182쪽).

이 책의 각 장은 다루는 시간적 범위나 주제의 포괄적 특성 등을 고려할 때 개별 장이 각각 책으로 다뤄질 수 있는 무게를 갖는다. 그러다보니 책이 담은 내용과 더불어 담지 못하고 짚고 지나가는 내용 또한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앞서 살펴본 한계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영어판 출간 이후 10년간의 변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전 50년의 이해가 없이는 그 맥락을 제대로 짚기 어려워 보인다. 그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출간 이후 변화에도 불구하고 감소하기보다 오히려 증대된 듯하다.

입양사와 한국사가 곧 자신들의 역사인 입양인들, 그/녀들의 희망

입양사 연구는 살아있는 입양인의 삶과 정체성만큼이나 복합적이고, 양가적이고,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해외입양 50년사의 의미 또한 마침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입양역사의 중간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입양인들은 어려서 한국을 떠난 까닭에 한국 역사에서 자신들의 자리가 희미하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입양인의 역사는 입양 이전의 개인사에서 입양 이후 한국사·입양사로 대체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 어느덧 예순을 넘긴 나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초기 해외입양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한국 역사와 단절되었거나 분리되었다기보다 누구보다 가까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붕괴에서 태어난다. 입양의 유산이다. 국가 간, 인종 간 입양아들의 경험은 비합법성에 시달린다. 이중적인 정체성이 갈등과 타협의 상태에 계속해서 놓이게 될 때 비합법성은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 삶은 숨겨진 역사 위에 세워져 있다. 고통은 언제나 그 역사를 상기시켜준다. 우리 자신을 역사로부터 떼어놓은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우리의 이야기 전체를, 우리의 과거를 알아달라고 간청한다. 우리는 언제나 파편화된 채로 남아 있기에 단절감은 상존할 것이다. 트라우마를 벗어나 우리의 침묵·목소리·역사·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정의의 공간으로 옮아가고자 애쓴다(책 336쪽).

그들의 삶은 한국 역사의 가장 힘든 시기, 힘든 장소에서 시작되었고, 그러한 시작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힘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좌절과 침묵을 다시 마주하고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그 좌절된 침묵이 화해의 목소리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의 기억과 역사는 온전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역사는 해외입양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수정과 성찰의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외입양인들은 비로소 한국 역사 속에서 침묵의 수의를 벗고, 서로 닮은 그러나 또한 동시에 다양한 차이들을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속에 평화와 화해, 회복과 안식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우리가 위치해 있던 과거, 즉 시간 속에서 역사가 손짓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삶에서의 공통된 체험과 인식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 각자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차이도 발견해낸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평화, 잠재력, 우리를 수렁 밖으로 이끌며 전진하는 계보의 희망을 본다(책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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