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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주인인 농민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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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주인인 농민을 닮는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수입쌀이 온다·③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는 11월 14일 박근혜 정부의 농업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상경한 농민 2만여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농민이 행복한 새누리당 진심'이라며 '우리쌀을 반드시 지키겠다' '쌀값인상 17만 원을 21만 원대로'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1월 1일 쌀 시장은 전면 개방됐고, 쌀값(80Kg)은 15만 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올해는 대풍(大豊)입니다. 더욱이 쌀 관세화로 수입쌀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

우리가 쌀을 수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대한민국은 콩과 옥수수 같은 GMO 곡식을 식용으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농지가 줄어들고 있어 수입한다고요? 농지를 공업용지/주택지로 바꿔 난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아몰랑'하고 있습니다. 이슈 '수입쌀이 온다'를 통해 하나하나 짚어보죠.

▲ 골고루 먹기 위해서는 결국 골고루 지어야 한다. 돈벌이를 위한 대량생산은 그래서 이런 '골고루'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골고루' 농사는 소농만이 가능하다. 토종농사는 기후변화문제를 해결해 줄 많은 열쇠 가운데 하나이다. ⓒ김기돈

기후변화와 농업 그리고 토종씨앗


1980년대부터 서서히 불붙기 시작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은 1992년 리우선언에 이르면서 세계 공통 관심사가 되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은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을 찾는다.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꼭 지적하는 것이 농업이다.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것도 농업 이야기이다. 농업은 그 두 가지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왜 그럴까?

가장 큰 문제는 농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전체 육지 면적 가운데 3분의 1은 이미 사막화됐다. 한 해에 사막으로 변하는 땅만 해도 6만제곱킬로미터(㎢)고, 최근 20년 동안 진행된 사막화 면적은 무려 100만 ㎢가 넘는다. 이는 기후변화와 농업이 악순환하는 구조를 가져온다. 농지가 줄면 곧 녹지가 주는 것이고, 이로 인해 산소 발생이 줄고 탄소가 늘어난다. 이것이 결국 지구 온난화를 불러일으키고 온난화는 다시 물을 증발시켜 생물이 살 수 없는 땅, 사막이 되고 이로 인해 다시 탄소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농지가 줄어드는 첫 번째 이유는 농지를 다른 용도로 바꾸기 때문이다. 대부분 도시개발, 특히 공업용지나 주택지로 바뀌는데 이것은 인구증가 탓도 있지만, 산업화를 위한 난개발은 딱히 인구증가만이 원인은 아니다. 육류소비량이 늘면서 목축지가 늘어나는 것 역시 농지가 줄어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목축지는 몇 년 사이에 사막으로 변한다. 가축들이 먹어 없애는 풀 양은 그 풀들이 다시 자라는 속도를 앞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목축지가 세계 전체 땅 가운데 약 25%를 차지한다. 앞으로 사막으로 변할 땅이 최소한 25%가 넘는다는 말이다.

ⓒ작은것이아름답다

농지감소 문제보다 더 직접 농업 관행이 일으키는 기후변화 문제는 따로 있다. 예컨대 상업농이나 기업농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문제에서 항상 지적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져온 문제점이 어떻게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쳤을까? 사실 농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 약 11%가 농업 때문이다. 농업으로 인한 온실가스배출 원인을 농업 관행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기업농이나 상업농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단작(홑짓기)'이다. 한 가지 작물만을 대량으로 심는다는 말이다. 이는 반드시 대량의 농약과 비료 사용이 뒤따른다. 예전 어르신들 말씀에 따르면, 들깨 옆에 수수를 심으면 들깨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단작은 들깨만 심게 만들고, 결국 수수를 심을 수 없으니 수수가 했던 역할을 농약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또한 단작은 토양에서 특정 영양분을 고갈시키고 이를 다시 돌릴 시간을 벌 수 없기 때문에 비료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인다.

뿐만 아니다. 생명공학이 지나친 농약사용을 줄인다는 미명 아래 개발한 유전자조작 종자들은 이런 단작을 더욱 부추긴다. 유전자조작 종자 90%를 지배하고 있는 몬산토와 함께 듀폰, 신젠타가 종자시장 매출 1~3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최상위 5개 농업생명공학기업이 세계 농약시장 3분의 2, 종자시장 25%, 유전자조작 종자시장 100%를 점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세계 약 1300여 개 종자은행에 약 600만 품종 종자가 있음에도, 농업작물 생물다양성은 생산성 높이기에 초점 맞춘 작물에 의해 가파르게 줄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농업용으로 약 1만 종 식물품종을 키워왔지만, 오늘날에는 작물 약 90%가 120종 남짓 품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단작은 농산물 유통거리를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한 지역에 집중해서 재배하는 농작물을 세계로 수출하는 일이 많아지며 농산물 이동거리는 나날이 늘고 있다. 농산물 이동거리가 관심을 끄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동을 위해 쓰는 화석연료 탓에 발생하는 온실가스 때문이다. 2003년에 미국 한 대학에서 콩, 옥수수를 비롯해 미국인들이 주로 먹는 16가지 먹을거리 이동거리 푸드마일(WASD:Weighted Average Source Distance)을 계산해보니 약 2만5301이었다. 만약 이것을 지역 먹을거리로 바꾸면 푸드마일이 716으로 처음 수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계산법은 서로 다른 원산지 거리, 소비지에서 소비된 양, 원산지에서 소비지까지 거리로 계산하는데, 원료가 여러 가지인 식품에 주로 쓰인다.

* 푸드마일 수치 계산법
WASD=∑(m(k)×d(k))/∑m(k) : k는 서로 다른 원산지의 위치, m은 소비지에서 소비된 양, d는 원산지에서 소비지까지 거리

ⓒ작은것이아름답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멕시코 국경에서 캘리포니아로 수입된 먹을거리 이동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25만 톤(t)에 달하고, 이는 차량 4만 대가 뿜어내는 양과 맞먹는다.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는 약 150만 대 자동차가 배출하는 양이다. 작물 수출국인 미국이 수입하는 먹을거리로 인한 푸드마일이 이 정도라면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 푸드마일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2012년 5월 국립환경과학원은 우리나라 푸드마일을 공개했는데, 우리나라는 1인당 약 7085(WASD)로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심각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골고루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골고루 먹으려면 골고루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 우리네 농사는 이렇게 골고루 먹는 데 참으로 적절한 농사법이었다. 왜냐하면 집 앞 텃밭에 골고루 몇 뿌리씩 심어놓은 것들이 늦봄부터 여름 내내 밥상을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다. 내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전혀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보니 모든 것을 시장에 의존해야 한다. 물론 지금 시장에는 계절을 가릴 것도 없이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은 뭐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뭐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그 '골고루'와는 전혀 다른 다양함이라는 점이 문제다. 골고루 먹는다는 것은 내 몸이 필요로 할 때 그것을 먹는 것을 말한다. 여름 더위에 지칠 때 필요한 채소와 겨울 추위를 나는 채소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할지라도 여름 채소인 오이를 겨울에 먹은들 몸만 차게 해 생체리듬만 망가트릴 뿐이다. 마찬가지로 겨울에 먹어야 할 배추를 여름에 굳이 찾아 먹을 필요는 없다. 소농만이 가능한 제철농사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어쨌든 골고루 먹기 위해서는 결국 골고루 지어야 한다. 돈벌이를 위한 대량생산은 그래서 이런 '골고루'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골고루' 농사는 소농만이 가능하다. 소농은 규모가 적은 만큼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고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 제 먹을 것을 제가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소농은 '골고루' 지어 먹기에 딱 좋다. 텃밭을 중심으로 하는 소농은 조금씩 골고루 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심은 것들을 이듬해 또 심기 위해서 씨앗을 갈무리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토종이라고 부르는 것의 묘미인데, 농민들 모두 저마다 좋아하는 씨앗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씨앗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 씨앗들은 주인인 농민을 닮아간다. 농민들이 원하는 종자로 대를 잇는 것이다.

우리가 토종농사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밥상에 올릴 사시사철 다양한 농산물을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어 생산하고, 자연환경조건에 적응해 나가면서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것에 토종농사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종농사만이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비법, 굳이 서양식 자연과학으로 말하자면 생물학적 방제를 이어받을 수 있다. 1960년대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이어가고 있는 농민들, 그것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는 농민들, 그분들이 바로 토종농사의 주역이고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 줄 많은 열쇠 가운데 하나를 쥐고 있는 분들이다.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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