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당신이, 아니 당신 문명이 생전 처음 담배 피우는 사람을 발견했다. 담배가 처음 알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1만6000년 전까지 거슬러 갈 필요까진 없다.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찾은 유럽인이 되면 된다. 망망대해를 거쳐, 미지의 숲을 지나 한 부족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보는 동물 틈에서 당신은 불붙은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는 사람을 보았다. 아마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도일 것이다. 과연 그가 사람으로 보였을까. 신화에 나오는 악마이거나, 아니면 신의 대리인 정도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용을 보았다 생각했을 수 있고, 아니면 몸속이 불타는 사람을 보았다고 경악했을지도 모른다. 이 문화 충격을 사람들이 극복한 후, 아메리카인들이 "신이 주신 선물"이라 부르던 담배는 곧 전 지구적 유행이 되었다.
<신들의 연기, 담배>(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책세상 펴냄)는 간단히 말해 '담배에 관한 모든 역사적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폭스 뉴스 워치>를 10년간 진행한 언론인이자 저명한 저술가인 에릭 번스가 새로 쓴 책으로, 학계 밖에서 쓴 책 중에서는 최초로 전미도서관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현대 인류에겐 최악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이 식물이 어떻게 세계로 뻗어 나갔는지, 어떻게 우리 문명에 영향력을 미쳤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 우리로선 상상도 못 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담배는 런던 하역장에 상륙한 지 단 50년 만에 유럽을 정복했다. 대항해시대 유럽의 새로운 유행이었던 담배는 아메리카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의 물질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매우 좋은 습관이자 예방약으로 여겨졌다. <피터 팬>을 쓴 제임스 M. 배리 경의 말대로 당시 잉글랜드는 "온 나라가 담배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려는 의욕으로 꿈틀거렸다." 그는 심지어 담배를 전파한 핵심인 월터 롤리 경의 이름을 본떠 국명을 '롤리랜드'로 바꾸자고까지 제안했다(이 아이디어가 실현됐다면 지금 우리는 롤리시 프리미어 리그 출신의 선수로 이뤄진 롤리랜드 축구팀과 월드컵 경기를 치렀을 것이다).
우리는 담배를 아메리카인의 언어에서 딴 토바코(tobacco)로 부르지만, 담배를 상징하는 물질은 니코틴(nicotine)이다. 이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국에 롤리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장 니코가 있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리스본에서 담배를 찬양하는 발레(!) 공연을 보고 '만병통치약'인 이 신비의 약초(?)를 프랑스 왕가에 전파했다. 삽시간에 프랑스 역시 담배에 열광하게 되었다. 곧이어 담배는 프랑스에서 '니코의 약초(nicotiana)'로 불리게 되었다.
이 책은 늘어난 담배 수요를 어떻게 세계가 메우게 되었는지(잉글랜드의 첫 식민지 개척지였던 아메리카에서 본격적으로 담배 재배를 시작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설명하면서 우리가 디즈니 만화영화로 익히 아는 <포카혼타스> 이야기의 주인공을 역사의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이 실은 담배로 세워진 나라라는 인식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담배는 식민지 미국(북아메리카) 최초의 사업이었다. 담배가 없었다면 세계 지도와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지궐련(cigarette, 작은 엽궐련)은 엽궐련(cigar)의 부산물로 생겨난 싸구려 담배였다. 책은 대량생산 체제에 걸맞은 덕분에 지궐련이 노동자의 상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그 반대급부로 미국 내에서 일어난 열렬한 금연운동이 낳은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을 전한다. 덕분에 우리는 담배에 대한 전 인류적 증오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 1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책은 본격적으로 현대사를 탐색한다. 신생 브랜드 '캐멀(Camels)' 덕분에 미국의 광고 산업이 껑충 성장한 이야기, 전쟁 이후 여성 흡연 층의 성장 가능성을 탐색한 미국 담배 회사 이야기를 "단 것 대신 럭키를 집으세요(Reach for a Lucky Instead of a Sweet)"라는 광고 자료를 곁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책 후반부로 접어들며 드디어 담배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초기에는 흡연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당장 전 세계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전쟁에서 담배는 책의 표현대로 병사와 문명을 이어준다 여겨지는 위로 물품이었다. 윈스턴 처칠이 엽궐련을 문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적 장면의 하나다. 1950년대, 즉 세계대전이 끝나고서야 담배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제, 담배 회사들은 필터를 선전하며 '담배의 유해성은 없어지리라'고 강조했다. 담배가 인류의 골칫거리임을 드디어 모두가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담배를 통해 바라본 세계는 생각보다 더 흥미롭고 좁다. 독자는 이 좁은 세계를 정리한 책에서 담배가 인류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에 얼마나 자주 등장했는지, 심지어 인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중심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옛이야기를 들춰보는 기분에 책을 손에서 떼기 힘들다.
아! 이 소중한 책에는 담뱃세를 함부로 올려선 안 된다는,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교훈이 등장한다.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주인공이다. 그는 흡연자를 마녀와 함께 증오한 까닭에 파운드당 2펜스였던 세금을 6실링 10펜스로, 한 번에 무려 4000%나 올렸다. 그러자 오히려 담배 밀수가 증가하고, 흡연 수요도 증가했다. 결국 그는 담뱃세를 다시 낮춰야 했다. 담뱃세 인상이 무조건 흡연율 억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중한 교훈을 17세기 역사가 이미 우리에게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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