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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소년의 로큰롤 여행기, 고마워!

[프레시안 books] <시골에서 로큰롤>

이게 다 오쿠다 히데오 때문이다.

결국, 오디오를 질렀다. 수년간 벼려왔다.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명반 [8:30]을 재생했다. 소리에 입체감이 살아난다. 관중의 함성이 저 뒤에서 울리다 양 측면을 오가고, 연주는 내 무릎에서 노닌다. 지미 맥그리프(Jimmy McGriff)는 어떤가. 아주 신나 미쳐버릴 것 같다. 밤에는 올라퍼 아르날즈(Olafur Arnalds)를 듣고,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을 듣고, 자크 브렐(Jacques Brel)을 듣고,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를 들었다. 아아, 좋다 좋아. 정말 좋다.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다. 그간 음반 사둔 보람이 있구나. 헤드폰 따위랑은 차원이 다르구나. 음반장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시 즐거워졌다. 어느새 아마존에서 음반 쇼핑 목록을 채워가고 있다. 아아, 이 좋은 걸 왜 여태 몰랐지.

몇 년 전, 김작가가 운을 띄웠다. 서정민갑이 "이제 하나 마련할 때 됐어"라고 부채질했다. 벨로주 박정용 대표가 다 맞춰줬다. 이 자리를 빌려 이분들에게 감사 말씀을 드린다. 덕분에 다시 음악 듣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아아, 정말 행복해요. 지르는 게 이런 맛이로군요.

결정적으로, 오쿠다 히데오가 불을 지폈다. 그의 청소년기를 담은 <시골에서 로큰롤>(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은행나무 펴냄) 서문을 보자마자 오디오를 사기로 맘 먹었다.

"어쨌든 나는 오디오에 푹 빠졌다. 밤은 순전히 음악 감상 시간이 되어, 나이 쉰 넘어서 처음 듣는 '소리 좋은 록'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중략) 젊었을 때부터 수백 번은 들었을 좋아하는 앨범이 실은 엄청나게 음질이 좋은 레코드였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아아, 가공할 일이로다. 지금까지 나는 대체 뭘 한 것인가. 이번에 오디오를 새로 사지 않았다면 우리 집에 이런 보물이 있는 것도 모르고 인생을 마칠 뻔하지 않았나."

내가 할 말을 저 양반이 이미 서문에 다 해버렸다. '언젠가 에세이를 쓴다면 반드시 내 음악 청취 인생을 써 보리라'던 꿈도 깨져버렸다. 이미 여기에 할 말이 다 들어가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더구나 내 오디오보다 훨씬 좋은 세트를 가진 그가 한 말인데).

<시골에서 로큰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자신의 십대 시절, 곧 1972년부터 1977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기후 출신인 그가 록에 미쳐 지내던 시절을 다뤘다. 각 챕터는 유명한 음반 명으로 기록되었고,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그가 열심히 들었던 앨범이 소개되어 있다. 오쿠다가 좋아했던 음반, 뮤지션이 당대 일본인의 시각으로 소화되어 소개된다. 덕분에 조금 생경한 기분과 시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옛 록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그야 말로 딱이다.

팝 음악에 빠져버린 후 이 열정을 받아줄 하드웨어는 턱없이 부족한 시골 소년이 라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하고, 처음 만져본 LP에 감동하고, 공연장에서 전율하고,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고, 무엇보다 소리 하나하나, 가사 하나하나에 전율하는 광팬의 길을 걷는다. 앨범을 드디어 한 장 살 돈이 생겨서 뭘 살지 한참을 고민하고, 음악 잡지의 평점을 보고 뭘 살지 고민하며, 용돈을 몰래 모아 음반에 투자한다.

▲<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은행나무 펴냄. ⓒ프레시안
우리네 80~90년대에 팝/록에 충성했던 청춘을 보낸 이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부러운 건 시대상이다. 70년대는 록이 절정을 맞이한 시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동시대를 경험하기란 쉽잖았다. 오쿠다 소년은 달랐다. 아, 우리나라가 엄혹한 시기를 보내던 시절, 이 사람은 이토록 풍요로운 청춘을 보냈구나.

그는 NHK에서 방영하는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전성기 퀸(Queen)의 내일(來日) 공연을 관람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딥 퍼플(Deep Purple)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고, 보즈 스캑스(Boz Scaggs)에 열광했다. 우리가 유명 가수의 외국 공연을 부러워할 때, 오쿠다 소년은 딥 퍼플의 부도칸 공연(그 유명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앨범 실황이 담긴 공연) 소식을 듣고 도쿄를 부러워한다. 벌써 지역 라디오에서 팝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음악 전문잡지에는 스스로 기준을 가진 평론가들이 냉엄한 비평의 붓을 들었다. 오쿠다 소년의 청춘기에 말이다. 아아, 정말 부럽도다.

당시 외래 문명에 아직 순박했던 일본의 자잘한 모습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밥 딜런(Bob Dylan)을 '밥 다일런'으로 표기했다든지, 학급 음악부에서 "시끄러운 음악은 안 돼"라며 선생님이 난리 치는 모습 말이다.

오쿠다의 소설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팝 음악 지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유추할 수 있다. 안 그래도 통통 튀는 그의 문체는 자전적 이야기에서 팝처럼 명랑하게 튄다. 제대로 기분 좋은 책이다. 오늘은 집에서 뭘 들을지 고민해야겠다. 오쿠다 소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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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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