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첫 조각이 어떻게 결론나느냐가 '향후 5년간 당청관계의 시금석'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강재섭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위한 여당이다"
야당의 압박과 청와대의 버티기 사이에서 한나라당은 일단 곤혹스럽다. 무엇보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는 게 난감하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야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내심 청와대의 '결단'을 압박하는 양동전략을 택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6일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한승수 총리후보자 인준과 원만한 각료 청문회를 강조하면서도 "우리 한나라당은 각료 내정자들을 무조건 찬성한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 한다"면서 "일찍이 (문제점을) 지적해서 이미 한 분을 낙마를 시켰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 토목공사 하듯이 그렇게는 안할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청문회를 하다가 큰 문제가 생기면 (내각을) 고치자고 당이 건의하자"면서 "청문회를 마치고도 문제가 있다면 여야가 뜻을 같이해 불가 의견을 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 대표는 "10년 만에 여당이 돼서 국정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목표가 다섯 가지 있다"면서 "첫째 국민여당을 지향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부를 위한 여당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여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보내 '협조'를 부탁했지만 이 대통령의 최측근에서조차 내각 인선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평가받는 정두언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인선이나 한나라당 공천은 총선에서 압승한다는 전제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 의원은 "지금부터 수도권 표밭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며 "세상에 거저먹기는 없는 것 같다"고 총선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버티는 청와대…당청관계는?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까지 강경하다.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는 이날 일부 각료 후보자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대한 재검증 계획을 밝히면서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차원이지 탈락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야당 대표를 비롯해 내각 구성에 비판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박근혜계 의원들 다독이기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예방해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청와대 일각에선 한나라당이 적극 '엄호'에 나서지 않는 모습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사실상 전적으로 청와대가 자초한 점이라는 측면에서 거수기 역할을 마다하는 당에 드러내 놓고 불만을 표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의 향배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사이의 역관계가 걸린 문제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내정 철회를 거부하거나 한나라당 지도부가 비판하는 시늉만 낼 경우 당청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을 수 있다. 반대로 청와대가 한나라당의 압박을 수용해 문제 각료 내정자들을 내치면 총선을 앞둔 여론의 풍향은 다시 한나라당 쪽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이명박 정부는 출범부터 체면을 구기게 된다.
물론 취임 초라는 시기적 특성상 당이 청와대를 굴복시키는 듯한 모양새는 연출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당과 청와대가 윈윈하는 '묘수 풀이'가 어려운 건 그래서다.
게다가 당청 사이의 정무라인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정무수석에 내정된 박재완 의원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선 아직 큰 불만이 제기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전통적 의미의 '정무'에 능통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같은 실세 중진들이 당분간 당청 사이의 물밑 가교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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