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일 천안문 광장서 열린, 중국의 항일 승전 70주년 '열병식'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우리 대통령의 참석 여부와 남북 간 대화 가능성도 화제가 되었고, 인민해방군 1만2000명이 동원된 부대 사열과 분열은 그야말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사불란함을 과시했다. 화려한 열병식이 중국 내외에 전하는 메시지는, 중국이 이미 떠오르는 강대국이 되었고 막강한 군사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진핑, 열병식에서 30만 감군 선언하다
정상들의 자리 배치가 어떻게 되었고, 뭘 먹었으며, 뭘 입었는지 등은 논외로 하자. 본질을 향한 시야를 가리는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미녀 의장대'의 평균 신장과 나이에 대한 보도는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세계 주요 신문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 탐사 보도 수준이다.
금번 열병식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즉 '국가'의 성립 시 거행된 최초의 열병식 이래 15번째로 거행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항상 10월 1일 '건국절'에 실시됐으나, 2014년 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 우리의 국회 격)에서 9월 3일을 '전승절'로 결정한 후 '9.3 전승절' 기념행사로는 처음 거행된 것이다.
열병식을 통한 힘의 과시는 대외적으로 중국에 대한 우려를 자아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진핑 '주석'(국가 및 중앙군사위원회)은 열병식 말미에 "인민해방군 병력을 30만 명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감군 30만, 군 현대화에 대한 강한 의지
힘의 과시와 평화 제창이라는 중국의 대외적 '이중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인민해방군을 30만이나 감군하겠다는 것은 중국군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군 구조의 대대적인 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지,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2015년은 중국이 전 분야에 걸쳐 군 현대화를 실시한 지 만 30년이 되는 해이다. 1985년 이후 중국군은 전면적인 개혁을 실시해 왔으나, 과거에는 군 병력의 비대, 무기 및 장비의 노후화, 예산 부족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점진적이면서 저비용을 염두에 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우선적 방편이 감군이었다.
1985년 당시 중국군의 규모를 약 400만 명으로 볼 경우, 1985~1987년 기간에 100만, 1997~2000년에 50만, 그리고 2003~2005년에 20만의 병력 감축이 이뤄졌다. 현재까지 170만 명의 감군이 이뤄졌고, 이번에 발표한 30만 명을 더하면 총 200만 명의 감군인 셈이다. 감군 규모는 분명 크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중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이만한 병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감군 발표는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한 가지는 1985년 이후 세 번의 감군은 항상 공식 발표 전에 어느 정도 시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78년 12월 개혁 개방 정책(사실은 '노선')이 발표되기 전 이미 일부 지역에서 같은 정책이 실시되었던 바와 같이, '조용히' 실시해보고 잘 되면 발표하고 아니면 없었던 일로 덮어두는 방식은 중국공산당 특유의 오랜 관행이다. 이번 발표도 이와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번 감군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문직(文職)'과 관련된 것이다. 문직이란 것은 국방부 군무원이나 미 국방부 민간 요원과 유사한데 '군인'은 아니고 계급장도 없으나 유사시 전투에 투입된다. 다른 국가에서는 '비전투 요원'으로 분류하나 중국은 '문직'을 정규 병력에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각군 학교의 외국어 교관, 문예 공연단 단원, 군수 지원 인력 등이다. 현재 중국군 병력을 약 230만 명으로 볼 때,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중 20만 명 이상이 '문직'이다. 즉, 금번 30만 명 감군 시, '문직'의 범위를 줄이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감군과 군 구조 변화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군의 지휘 조직은 최상부에 중앙군사위원회가 있어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등 4총부를 거느린다. 그 아래 지역별로 7개 대군구(MR)를 두고, 대군구는 총 18개 집단군(GA, 우리의 군단 개념) 체제로 되어 있다.
1985년 이후 7개 대군구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나, 집단군은 당시 24개에서 21개로, 이후 다시 18개로 3개씩 축소되어왔다. 감군의 결과다.
대대적 감군의 부작용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시진핑이 선언한 30만 명이라는 규모가 1개 대군구보다 크다는 데에 있다. 즉, 30년 만에 7개 대군구 체제가 바뀌게 되면 집단군 수도 축소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부대 해체와 조정 등 후속 작업이 따르게 마련이다.
군 내외 여파도 상당하다. 현재 중국군의 장성 수를 약 1400명으로 잡는데, 이중 '소장'(중국에서는 별 하나)급이 1000명 이상이다. 상당수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는 집단군 급에 있는 별들이 주요 대상이 될 것이다. 30만 명의 '퇴역'으로 인한 연금, 재교육, 취업도 복잡한 문제다. 중국 경제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1985년에 시작된 군 현대화의 첫 포성은 100만 명의 감군이었다. 10년 후인 1995년 장쩌민 주석은 군 현대화와 관련하여 '두개의 전환(兩個轉變)'이란 노선을 발표했다. 하나는 일반적인 국부전(국지전)에서 '현대화와 첨단 기술 조건하에서의 국부 전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量)적 군대에서 질(質)적 군대로의 전환이었다. 후진타오 주석도 이 노선을 따랐고 이번 시진핑 주석의 감군 발표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이 30년간의 군 현대화 이후 다음 단계의 군 현대화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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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현대중국연구소장 겸 한림대만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국방부와 해군의 자문위원이다. SSCI 등재지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3事(人事, 外事, 軍事)이다. "Sino-ROK Relations at a Crossroads" "China's Anti-Access Strategy and Regional Contingencies" 등 150여 편의 논문이 있고,<동아시아 주요 해양 분쟁과 중국의 군사력>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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