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부터 신·구파의 파쟁을 일으켜 국민의 성원과 기대를 어겼다. 그리고, 국민 가운데 분별없는 자유를 주장하여 가지각색의 자기주장을 요구하는 (…) 사태가 벌어졌고, 심지어 데모대가 국회 의사당을 점령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민주당 정부는 이와 같이 사회 질서를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고교 국사>(1977년), 227쪽)
앞뒤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느 맥락에서 이런 글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제목은 '5월 혁명', 가장 큰 제목은 '민족 중흥의 새 전기'라는 대목에 들어 있다. 누가 봐도 군사 쿠데타와 10월 유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내용이다.
지금 40~50대 이상의 세대는 이렇게 배웠고, 기억한다. 정권이 달라진 다음에, 그리고 나이가 들고 새로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그때 배움의 영향이 없다고 하지 못한다. 알게 모르게 세상을 보는 눈에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오래간다.
이런 교과서를 만든 사람의 직계 후예와 후배, 그리고 교과서 내용에 포함될 자들이 힘을 합쳐 '올바른' 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니. 비극이면서 동시에 한편의 소극(笑劇)이다. 여러 반대가 있으니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시비는 이 정도로 그친다.
우리는 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에서 이중의 과제를 발견한다. 미리 말하지만, 교과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체의 문제다. 한편으로는 역사와 역사 해석의 문제가 직접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통 교육'의 가치와 의미, 목표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교육 체계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어떤 사람을 기르려 하는가?"
질문은 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히 사회나 정치, 경제와 관련된 교과목이 지향하는 것은 직접 드러난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경제 성장, 대기업과 재벌 체제, 불평등과 빈부 격차, 노동과 노동운동…. 보편과 객관, 중립을 내세우지만, 여기에 어찌 중립이 있을까. 그만큼 예외 없이 권력이 작동한다. 국익과 국가 경쟁력, 경제 성장, 삼성, 세계화 등등이 권력으로서의 이념이자 현실이다.
이런 과목에서 오히려 사정이 낫다는 것은 역설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사회적 관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더 나쁘다. 가치 판단에서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교과목에서 사실은 가치를 내장하면서 보통 교육의 권력이 작동한다.
교과서가 교육 내용을 반영한다고 전제하고, 아마도 모든(!) 사람이 가장 비정치적이라 생각할 <보건> 교과서를 보자. 참고로 <보건> 교과목은 2009년부터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다음 내용은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어떤 <보건> 교과서에서 뽑은 내용이다.
"건강은 생물학적 요인, 환경적 요인, 생활 습관 요인, 보건 의료 요인, 기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생물학적 요인은 개인의 노력으로 변화하기는 어렵지만, 환경적 요인, 생활습관 요인, 보건 의료 요인, 대중 매체, 기술력 등은 개인과 사회 구성원의 노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언뜻 봐서는 무난하고 중립적, 객관적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여기에 쓰인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더) 중요한 건강 결정 요인인 사회적 요인이 빠져 있다. 한마디로 말해, 건강을 탈(脫) 사회화, 탈정치화했다.
'환경적 요인'이나 '보건 의료 요인'이 사회적 요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교과서를 보는 어떤 학생이 여기서 빈곤이나 교육, 비정규 노동 등 정말 중요한 이 시대의 건강 결정 요인을 떠올리겠는가. 개인 차원을 넘는 사회 문제로 건강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아마도 평생).
같은 교과서에 포함된 직업병이나 노동 환경 부분도 객관적이거나 가치중립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가치 판단이 내재해 있고, 그것은 대체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작업 환경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 능률과 관련이 있고",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쾌적한 작업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지만, "직업별 특성에 맞게 직업병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눈에 띄게) 스트레칭 방법을 그림으로 제시한다. 참담한 수준의 산업재해, 그리고 이를 초래하는 기업과 자본이라는 원인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누구의 시각이고 가치 판단인가? 교과서 내용을 저자들이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오해다. 국정 교과서는 물론 검정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체제'는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과 같다. 저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보면 기술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다.
다시 <보건> 교과서의 예를 보자. 정부(2009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시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 기준"을 보면, 숨쉬기도 답답하다. 일상생활과 건강, 질병 예방과 관리 등 일곱 가지 영역은 물론, 각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제시되어 있다. 이 논평의 부록으로 당시의 기준을 옮겨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내용은 이미 '스크리닝'을 거친 것이다. 배경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렇게 정했는지 생각해 봄 직하다. 실무자와 실무체계 못지않게, 어떤 '체제적' 요인들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중요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지침 자체는 또 얼마나 친절한지(?). 세부 내용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제시하고 간섭하는 것이 기본 틀이다. 말만 검정이지 국정과 차이가 크지 않다. 여기서 무슨 자율과 창의, 지적 자극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얼마 전 국사 교과서의 예에서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검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간섭과 수정 요구. 내용은 물론이고 문구와 표현, 사진까지 맞추어야 한다. 가치중립은 몇 가지 기술 문제에 그칠 뿐이다. 예를 들어 참고 문헌이나 맞춤법. 나머지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가치 판단이 작용한다.
국정이든 검정이든, 교과서와 교육 내용은 결국 '체제'의 산물이다. 작게 보면 교육 체제, 크게 보면 국가 체제의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국사>, <정치>와 <경제>, 그리고 <보건>도 다를 바 없다. 예외 없이 '권력'이 작동한다고 하는 이유다.
교육의 권력 문제가 국사 교과서 분란을 통해 드러난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교과서의 국정화가 즉각 민주주의의 과제를 제기한 점이 그것이다. 이제 전체 교과서는 물론, 교육 내용을 다시 살펴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내친김에 교육 체제의 민주화까지 갈 수 있을까. 교육에서는 형식과 절차뿐 아니라 내용의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것도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그에 기초한 권력의 재편이야말로 보통 교육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다시 설계하는 토대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불평등을, 가난을, 평화를, 그리고 건강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국가 교과서를 둘러싼 분란이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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