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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회의원, 정말 '특권층'인가?

[정치 기사 뒤집어 보기] 한국 언론이 정치인을 보는 눈

최근 아버지와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진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특히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관한 아버지의 의견이 궁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뜸 '박원석 의원, 본회의 중 '조건만남' 검색, 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항상 딴짓만 하면서 특권을 누리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국회의원을 도대체 왜 줄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놓은 혁신안의 주요 내용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더는 아버지에게 물을 수 없었다. 이미 상당한 정치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게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설득하기도 어려웠다.

지난 2월 중앙선관위원회가 국회에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제출했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당시 정치권의 갑론을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여론은 심상치 않았다.

지난해 12월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10명 중 7명은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게 낫다고 응답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더하면, 사실상 유권자 10명 중 2명만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찬성한 셈이다. 신문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이유로,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다고 강조했다.

▲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5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전북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탈을 저지른 소수와 정치인 전반을 구분해야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정치인들 스스로에게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비키니 사진을 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처럼 '딴짓'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애교다. 성폭행 의혹으로 새누리당에서 제명된 심학봉 의원, 지인 취업 특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기춘 의원(현재 무소속) 등. 최근 사례만 해도 일일이 거론하기 벅차다.

하지만 일탈을 저지른 소수의 국회의원과 정치인 전반은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이 정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에 대해 언론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몇몇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이 국회의원 일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 데는 언론 보도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비위를 고발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 중 하나지만, 정치인 몇 명의 일탈이 정치혐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언론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아래 기사는 개별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 비판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기사다.

△ 노인폄훼 설화·비키니 성동…'맹탕 국감' 별볼일 없었다 (<헤럴드경제> 2014년 10월 27일 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치인들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도 노골적이지 않았다. 정치인을 마구잡이로 구속하는 등의 방법을 쓰지 않았다. 대신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불륜을 들춰내 트집을 잡거나, 교통법규 위반 등 꼭 정치인이 아닌 누구라도 자칫하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들춰내는 식이다.

"개인의 도덕성을 공격함으로써 거둘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크다. 권위주의 정권은 이 점을 잘 알고 활용했다. 그런데 언론마저 마찬가지 방식에 동참해선 안 된다. 그래선 권위주의 시절처럼 정치를 위축하는 데 언론이 본의 아니게 기여할 수 있다."

국회의원, 정말 '특권층'인가?

국회의원 의정 활동 수행을 위한 권한과 지원을 무조건 '특권'으로 몰아가는 보도도 문제다. 얼마 전 SNS에서 스웨덴과 우리나라 의원의 '특권'을 비교한 자료를 봤다. 스웨덴은 의원을 수행하기 위한 별도의 운전기사도 고용하지 않고,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도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과도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자료는 우리나라 의원들의 면책 및 불체포 특권은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탄압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무시했다. 또 외국에 비해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가 너무 많아 의원이 민의를 대의(大義)하기 어렵다는 상황 또한 설명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해당 자료는 국내 한 방송사의 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것으로, 언론이 만든 단편적인 자료가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정치인에 대한 반감도 끌어 올렸다.

△ 특권 없는 3D 임시직, 스웨덴 국회의원 (KBS <셰계는 지금> 2012년 4월 7일 방영분)

의원 특권을 비판하는 기사 대부분은 '욕(꼬투리 잡기)'만 하고 끝낸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국회의원 특권 200개'가 이슈가 됐다. 당시 기사는 국회의원 권한에 대한 이유와 배경을 다루는 대신, 특권 유지를 위해 자리다툼 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 [국가시스템 개조하자] 국회의원… 특권 200여개 신뢰도는 꼴찌 (<서울경제> 2013년 5월 8일 자)
△ 국회의원 한명이 1년간 쓰는 나랏돈이 6억원… (<조선일보> 2012년 4월 5일 자)
△ 특권포기 잇따르는 국회의원 분석해보니, 200여개 특권 있다 (<헤럴드경제> 2012년 1월 2일 자)

하지만 이런 권한은 피선거권과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군의 경우, 4개의 기초자치단체가 합쳐서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한다. 해당 선거구의 면적은 서울의 5.5배다. 반면, 서울은 인구 집중도가 높아 48개의 선거구로 잘게 쪼개진다. 서울 성북갑과 강원 통합선거구의 크기는 대략 264배의 차이가 난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지역 현안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유류비 지원 등의 교통상 편의 제공은 필요하다.

국회의원 한 명당 9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행정 각 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을 국회의원 혼자 처리하기는 불가능하다. 보좌진과 협력을 통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 필요한 제도를 만들 수 있다.

만일 이런 지원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인력과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사람만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정치가 '있는' 사람의 것이 될 우려가 크다. 정치 참여에 드는 비용 또한 사회가 함께 지불하는 게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러한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국회의원을 무조건 '기득권층'으로 몰아가는 보도는 정치를 축소할 뿐이다.

또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지원은 정부 각 부처의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다른 고위공무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서복경 교수는 "국회의원이 다른 장관급 공무원들에 비해 특별히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판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 2015년도 국정감사가 계속된 21일 국회 한 상임위원회 앞 로비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국정감사 자료들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인물에 대한 비판보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박상훈 학교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불완전한 인간이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중요한 게 바로 제도다. 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가 반복되는 구조를 언론이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언론이 마치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기다렸다는 듯 정치 전반을 공격하면 반(反)정치주의만 퍼뜨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개선을 바라는 비판과 반(反)정치주의를 부추기는 비판은 서로 다르다."

아래의 기사는 비키니 사진을 보면서 물의를 일으킨 권성동 의원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기사이다. 당시 사진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대다수 언론은 권 의원이 회의장에서 비키니 사진을 봤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보도했다. 반면 이 기사는 의원 뒤로 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의원이 '딴짓' 하기 어려운 국정감사장의 상황을 설명했다. 권 의원이 비키니 사진을 일부러 검색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조작 실수일 수 있다는 시각을 제공했다.

△ 권성동 의원은 정말 비키니 사진을 '검색'했을까 (<오마이뉴스> 2014년 10월 9일 자)

질타를 받을만한 행위를 한 정치인이 공인으로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물의 성품에 대한 공격보다, 정치인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유권자의 삶에 더 이롭다.

지난 3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경남도의 무상급식을 폐지하기로 한 뒤, 많은 언론이 그를 질타했다. 홍 지사 개인에 대한 비판이 관련 보도의 주를 이루었지만, <한겨레21>은 홍 지사의 극단적인 정책 이유를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분석했다. '비주류'지만 '주류'를 갈망하는 홍 지사의 삶의 궤적, 언론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평소의 소신 등을 중심으로 다뤘다.

△ 난 꿈이 있어요, 개천의 용이 되는 꿈 (<한겨레21> 3월 25일 자)
△ 공격적 질문에 "너 맞는 수가 있다" (상동)

미국의 지역 언론 <템파베이 타임즈(Tempa Bay Times)>는 지난 2006년 '공화당 대 공화당-세포분열' 연속 보도에서 '줄기세포 연구 지원법안'이 처음 의회에 입안돼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을 전했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쪽과 저지하려는 쪽이 각각 어떤 근거를 갖고 있고, 또 자신의 입장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러티브 형식으로 알기 쉽게 담아냈다. 덕분에 독자들은 정치인이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각자가 대표하는 유권자의 삶을 위해 대신 싸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 공화당 대 공화당-세포분열 (<템파베이 타임즈> 2006년 8월 13일 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언론이 정치인을 보도하는 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정치인이 시민의 대표로 제 역할을 하도록 언론이 감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인의 인간적 실수를 문제 삼아 민주주의의 시민적 권능 중 하나인 대표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언론이 가진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여론 형성이다. 시민들의 막연한 정치혐오는 두 번째와 같은 언론 보도에 기인한다. 기사를 통해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론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보다는 정치인을 합리적으로 비판해 그들이 시민의 대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정치실험공동체 '정치발전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으로, 소위 '정치 후진국'이라 평가받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 혐오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정치와 시민의 삶을 가깝게 할 수 있는 정치기사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좋은 정치 기사'를 판별하는 팀 나름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지난 석 달 간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정치 보도가 △반정치주의를 부추기지는 않는지, △정치적 갈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리지는 않는지, △의회 민주주의의 역할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진 않는지, △정치권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편견을 강화하지는 않는지 등 문제의식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지난 세 달 간의 세미나를 통해 얻은 문제의식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기회를 가져 보려 합니다. 총 10회에 걸친 '정치 기사 뒤집어 보기' 연재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정치와 시민의 삶을 가깝게 만드는 정치 기사가 많아지길 기대하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치발전소 홈페이지 http://politicalpowerplan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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