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유권자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기사를 몇 가지로 분류하고자 한다. 물론 분류의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며, 철저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언론을 보는 작은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언론 또한 권력자가 아닌 시민들과 얼마나 밀착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권자를 노동자·여성·농민·청년 등으로, 선거제도를 노동·여성·농업·청년 관련 제도로 바꿔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정치인의 입에서 시작해 입에서 끝나는 기사
△ 문재인 "농어촌 지역구 줄어드는 것 최소화해야"(<조선일보> 10월 5일 자)
△ 김무성 "그만하자" vs. 서청원 "조심하라"(<오마이뉴스> 10월 5일 자)
정치 기사의 전형이다. 대부분의 기사가 한 정치인의 입에서 시작된다. 유력 정치인의 말이 그대로 기사가 되는 방식이다. 이는 유권자와의 거리가 가장 먼 기사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정치제도를 규정하는 데는 여러 원칙이 있다. 선거제도를 중심으로 본다면, 유권자의 의사가 얼마나 국회 의석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지를 따지는 비례성이나, 유권자 개개인의 표의 값이 같아야 한다는 등가성의 원칙 등이다. 유권자가 주어인 원칙들이다.
맞다.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기사도 써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 유권자가 주어인 이러한 원칙들에 대해서는 짚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권자의 존재 자체를 기사에서 찾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말이 유권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정치인들의 행동에 맥락을 입힌 기사
△ 친박·비박, 기구 명칭부터 신경전… 金의 전쟁 재연되나(<한국일보>10월 5일 자)
기사의 소재는 첫 번째 유형과 같다. 정치인의 말을 기본으로 놓고, 여기에 맥락을 입힌 것이 차이점이다. 정치인 A는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거기에 반대하는 정치인 B의 속내는 무엇인지, 여러 각도로 분석한다. 독자가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는 유형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유권자의 자리는 없다.
사실 이는 기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정치권이 유권자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권과 유권자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기사와 유권자의 거리도 먼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은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정쟁이 유권자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 아니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라도 해야 한다.
바뀐 정치제도에 대한 시뮬레이션 기사
△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② 권역별 비례대표제 (<서울신문> 10월 3일 자)
유권자와 기사의 간극이 조금 가까워진 경우다. 이 기사는 올해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낸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기사는 바뀌는 선거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유권자가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러 선거제도들의 모습이 어떤지, 말로만 전달하는 것보다 지난 선거 결과와 비교해 알려주면 유권자 입장에서 더 알기 쉽다. 왜 정치인들이 뭔가를 필사적으로 찬성하고 반대하는지도 대략 알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이 확실한 유권자라면, 선거제도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혹은 정치인의 유불리까지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 유형도 유권자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묻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여부만 따진다.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각 정당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더 많다. 그래서 유권자가 주인공인 기사로 보기 어렵다.
여론조사 결과를 다루는 기사
△ 국민 10명중 7명 "국회의원 후보자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노컷뉴스> 10월 5일 자)
△ '비례대표 확대'에 여론은 뜨뜻미지근 (<시사IN> 10월 2일 자)
이 기사들은 유권자와의 거리를 더 좁혔다. 얼핏 보면 유권자에 포커스를 맞춘 것처럼 보인다.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정치제도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사를 묻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권자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만 등장한다. 여기에 한계가 있다.
일단 유권자들이 왜 이런 판단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위의 기사처럼 국회의원 후보자를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이 여론조사의 결과는 어떤 더 크고 근본적인 원인 때문에 생긴 여론의 왜곡이 아닐까? 예를 들어 그것이 공천 비리라면, 공천 비리를 없앨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과연 더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해도 70%의 유권자들이 소위 ‘국민공천제'라는 것에 찬성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또 반복되는 얘기지만, 유권자에게 이러한 제도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점도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비례대표의 확대가 유권자들에게 어떤 점이 유리한지, 또 어떤 점이 불리한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 앞서 살펴본 유형의 기사에서도 이런 정보는 얻을 수 없었고, 이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 입장을 고려해 쓰인 기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유권자 밀착형 기사
유권자들을 기사의 주인공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제도권 언론 밖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4년 <프레시안>에 연재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과 같은 기사다. 이 기사들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선거제도가 얼마나 이상한지 추적하였다. 동시선거가, 기호제도가, 선거운동 제한이 유권자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 한 번에 7개 투표, 누군지 알고 찍나요? (<프레시안> 2014년 5월 26일 자)
△ 속옷만 입을 뻔한 후보들, 사연은? (<프레시안> 2014년 6월 2일 자)
△ 기호 1번 허경영! 우습다면 당신은 이미… (<프레시안> 2014년 6월 11일 자)
유권자가 주인공인 기사가 보고 싶다
지금까지 유권자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여러 기사를 살펴봤다. 많은 기사들이 유권자와의 거리에 신경 쓰지 않거나, 노력했더라도 간극을 좁히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기사들이 쓸모가 없다거나, 유해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주로 비판적인 논조로 다뤘지만, 각각의 기사는 나름의 의미와 효용이 있다. 다만 정치제도를 다루는 기사에서 유권자가 더 많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제도 논쟁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이야말로 진정 유권자를 위한 개혁이라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논쟁이 유권자와 맞닿아있는지를 묻는다면, 답은 회의적일 것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언론이 시민(독자)을 위해 기사를 생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기사가 유권자와 맞닿아 있는가. 유권자가 주인공인 기사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정치실험공동체 '정치발전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으로, 소위 '정치 후진국'이라 평가받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 혐오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정치와 시민의 삶을 가깝게 할 수 있는 정치기사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좋은 정치 기사'를 판별하는 팀 나름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지난 석 달 간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정치 보도가 △반정치주의를 부추기지는 않는지, △정치적 갈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리지는 않는지, △의회 민주주의의 역할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진 않는지, △정치권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편견을 강화하지는 않는지 등 문제의식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지난 세 달 간의 세미나를 통해 얻은 문제의식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기회를 가져 보려 합니다. 총 10회에 걸친 '정치 기사 뒤집어 보기' 연재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정치와 시민의 삶을 가깝게 만드는 정치 기사가 많아지길 기대하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치발전소 홈페이지 http://politicalpowerplan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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