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오는 난민 소식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사책을 통해서 느꼈을 전쟁의 고통과 아픔이 동시대를 사는 다른 민족에겐 오늘 당장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매일같이 보도되는 시리아 난민들의 죽음 소식과 유럽 각국이 난민 수용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들이 남일 같이만 느껴진다.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란의 희생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을 진 모르나, 동북아까진 그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난민 문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동북아 3국
시리아 난민 사태가 불거지고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정부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하다. 세계적인 이슈거리에 '경제 대국'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고개를 내밀던 중국도 어찌된 일인지 이번만큼은 반응이 없다. 오히려 난민 사태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저지른 죗값을 받는 격"이라며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일본은 시리아 등 분쟁 지역에 무기 사용이 가능한 자위대 파병을 검토한다는 어이없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보법 통과에 힘입어 내전 지역을 이용해 자위대의 전투력을 상승시키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한국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시리아 난민이 세계적인 문제로 번지기 전 이들에 대한 원조 금액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경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3억1000만 파운드(한화 약 5600억 원)를 원조했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8번째로 금전적 원조를 많이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은 20만 파운드(한화 약 3억6000만 원), 한국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1526만 파운드(한화 약 278억 원)의 금전적 원조를 제공했다. 액수와는 상관없이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도 할 말은 없다.
물론 단순한 원조 금액이나 난민 수용 수치만 가지고 각 국가들의 난민 정책을 비판할 수는 없다. 국가마다 경제적 이유, 국민의 정서 등이 달라 정부로써도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가 없는 민족이 겪는 아픔과 서러움 그리고 고통을 겪었다. 또한 중국 국민들은 천안문 사태를 통해 자신의 국가로부터 인권을 보호받기 힘든 시기를 스스로 경험했다. 오늘날에는 북한의 탈북 난민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들 난민들의 절실함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경제적,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 민족도 난민이었을 때가 있었고, 낯선 그들의 도움으로 그 어려웠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난민 보호는 우리의 국제적 의무
난민에 대한 보호는 인도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세계 각국이 함께 약속한 국제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1951)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1967)가 현재까지도 난민 보호에 있어서 국제법 및 국내법의 근간이 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본 협약 및 의정서에 각각 1992년, 1982년에 가입 및 서명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 난민의 자격이 부여된 외국인은 의료 및 교육 등 개인적 기본권을 비롯하여 외국인 체류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똑같은 합법적 권리와 사회보장 혜택이 지원된다.
중국은 본 의정서에 서명한 후 1982년 헌법에 난민 보호에 관한 의무를 명시했다(32조). 이후 2012년 통과된 '출입경관리법'(出入境管理法)에 난민 문제를 직접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최초로 제정됐다(제46조). 46조의 내용은 공안 기관이 중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임시 신분증을 발급해주면, 난민 인정을 받은 외국인은 이를 가지고 중국 경내에서 체류 및 거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핵심 내용 이외에 별도의 이행법률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막상 난민을 받아들이려 할 때 어떤 기준과 절차로 난민을 인정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또 난민 신청자와 난민 인정자가 중국 경내에 체류 및 거류할 때 어떠한 권리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근거 법률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을 위한 진정한 난민 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중국과 비슷하게 일본도 '출입경관리법'에 난민 지위의 심사 및 절차, 그리고 표준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에서 이에 대한 공정성과 효율성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자구책으로 2003년에는 '난민 등 보호에 관한 법안'을 발의하여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할 것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3국 중에서는 그나마 한국이 제일 나아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보다 늦게 의정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미 난민에 관한 독자법인 '난민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서는 최초이다.
난민 발목 잡는 아시아 최초 한국 '난민법'
한국은 1994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면서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난민법이 시행되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인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현재 4%(522명)대다. 그나마 인도적 체류 허가는 이보다 많은 7%(876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난민 협약국의 난민 인정률이 38%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실제 50% 이상의 난민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난민법이 시행되고 약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수치상 나타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이 정도라면 난민법을 제정한 목적부터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난민법에 따른 난민 인정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난민법은 상기 의정서상 난민에 대한 정의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본국에서 '국적, 인종, 종교,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으로 인한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만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그 외 시리아와 같은 내전으로 인한 난민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해 본인이 원하는 만큼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강제 출국을 시키진 않는다. 하지만 따로 사회보장 및 기초생활 보장 등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함정이 있다.
난민 인정을 받기도 매우 어렵지만, 난민이 된다 해도 이들이 한국, 중국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 타 민족에 대한 국민의 배타성 때문이다. 이는 시리아 난민 사태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서 잘 보여 준다. 외국인 이주자, 난민에 대해서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과 이웃으로 지내며 공간을 나눠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시리아 난민들에게 선뜻 자기가 사는 집까지 내주겠다고 하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민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는 말은 경제 영역에서나 해당되는 것인가 싶다. 이제는 동북아 3국이 민족주의의 틀을 깨고 세계와 소통하는 국가와 국민으로 거듭 나야 하지 않을까? 포용력을 가진 진정한 대국으로서 말이다.
(윤성혜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법률연구소의 연구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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