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rut [No No No] 6.5/10
동유럽권이나 중동 부근의 대중음악을 좀처럼 듣기 힘든 현실에서 베이루트(Beirut), 곧 잭 콘돈(Zach Condon)의 원맨 밴드는 단비와 같은 뮤지션이었다. 십대 시절 학교를 박차고 시작한 유랑 생활에서 이어진 배경 이야기에 더해, 그가 관악기와 함께 뽑아내는 뭉클한 사운드는 귀를 흘러넘치게 채우다 결국 가슴까지 적시곤 했다.
유럽에서의 이야기를 마치고 보다 밝아진 팝사운드로 미국의 이야기를 노래했던 베이루트가 4년 만에 네 번째 앨범 [노 노 노(No No No)]를 발표했다. 그 사이 투어가 괴롭다고 하던 그는 건강을 잃었고, 이혼을 경험했다. 앨범은 바닥을 친 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대신 보다 소박한 사운드가 회복기 청년 뮤지션의 노트를 채웠던 듯하다. '오거스트 홀란드(August Holland)'는 산뜻한 건반 악기가 이끄는 팝이고, '퍼스(Perth)'는 아예 한발 더 미니멀하게 나아간 곡이다.
곡들은 잭 콘돈의 이야기를 가득 담았다. 그리고 전작들에서처럼 그의 인상에 남은 지역명이 마치 기록처럼 곡명에 그대로 사용됐다. 'Perth'는 그가 재활 치료를 받은 호주(오스트레일리아)의 지역이고, '페네(Fener)' 역시 터키의 지역명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앨범으로, 일상의 배경이 되어주기 충분하다. 1, 2집처럼 가슴을 무겁게 뒤흔드는 힘을 지닌 곡이 없지만, 전작의 '산타페(Santa Fe)' 정도로 밝지도 않다. 곡을 듣노라면 그의 뮤직비디오에서 차용되곤 하는 길거리를 걷는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지고, 괜스레 여유를 부리고 싶어진다.
그는 더 유명해졌으나 결코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는 더 유명해졌으나 결코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Holly Golightly [Slowtown Now!] 8/10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홀리 골라이틀리(Holly Golightly) 역시 블루스, 컨트리, 로큰롤, 개러지 록, 리듬 앤드 블루스 등 여러 장르에 발을 걸친 뮤지션으로 묘사될 수 있다. 디 헤드코츠(Thee Headcoats') 출신으로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메이저 음악 팬에게는 화이트 스트라이프트 앨범 작업 참여로 이름을 알려왔으나, 실은 열장이 넘는 솔로 앨범을 발표한 베테랑 뮤지션이다.
지난해 낸 앨범 [올 허 폴트(All Her Fault)]에서처럼 미국의 컨트리 음악에 조금 더 지향점을 둔 앨범은 백 밴드 브로크오프스(Brokeoffs)와 함께 작업하지만, 개러지 록과 블루스에 조금 더 방점을 둔 곡은 솔로 작품으로 내곤 했다.
지난 8월 나온 신작 [슬로타운 나우!(Slowtown Now!)]는 솔로 작품이다. 전작들에 비해 개러지 록의 성질은 가라앉았고, 보다 넓은 음악적 성질이 부각됐다.
앨범을 여는 '세븐 원더스(Seven Wonders)'는 마치 가벼운 톰 웨이츠의 1980년대 작품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축축한 기운을 머금은 블루스가 재치 있는 연주로 이어지는 가운데, 홀리 골라이트의 힘을 뺀 보컬은 튀어오르는 비트를 나긋이 짓누른다.
기분 좋은 로커빌리 스타일의 '애즈 유 고 다운(As You Go Down)', 마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듣는 듯한 '스톱드 마이 하트(Stopped My Heart)', 올드 스쿨 리듬 앤드 블루스 스타일의 '캐치 유어 폴(Catch Your Fall)' 등 보물과 같은 곡들이 가득하다.
마치 더 킬스(The Kills)의 앨리슨 모사트(Alison Mosshart)나 더 멀게는 블론디(Blondie)의 데비 해리(Debbie Harry)를 연상케 하는 홀리 골라이트의 보컬은 곡에 따라 섹시하면서도 느긋하다. 기운을 쭉 뺀 보컬이 곡과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곡의 정서를 더 키우거나 다듬는데 일조한다.
예스러운 냄새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신선함이 어우러진 앨범이다. 가을을 여는 작품으로 이 정도면 더 바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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