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박 전 대표 계열 의원들은 심심찮게 모임을 가졌지만 이처럼 공개적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박 전 대표에게는 보고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이날 오전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 기준에 대한 심각한 불만을 밝힌 것과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당규 3조 2항 바꿔야"
이혜훈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들을 만나 "오늘 국회 본회의가 끝난 후 친박계 의원들이 모여 김무성 최고위원과 정치적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27명이 회의에 참여했고, 모임을 가졌다는 연락을 받고 8명이 전화로 이름을 넣어달라고 해 도합 35명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김무성 최고위원이 '나는 오늘 정치적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말했고 많은 의원들의 반발이 있었다"면서 "조만간 다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한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현재 당헌당규는) 4.25 재보선이 끝나고 당의 중지를 모아 개정된 것이 아니라 경선이 끝난 지난해 9월 경황 없는 와중에 개정됐고, 대부분의 의원들이 당헌 당규 개정 사실조차 잘 몰랐다"면서 "또 초안에는 사면복권 단서조항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빠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날 오전 박근혜 전 대표가 기자들을 만나서 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이 의원은 "정종복 공천심사위원회 간사가 사실과 다른 결과를 브리핑한 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수의 공심위원들은 공심위가 개별심사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일부는 범죄사실이 (당헌당규에) 해당되면 자동적으로 배제된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배수진을 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심위원 중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공천 신청 단계에서 부터)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들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어서 다수를 끌고 간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명박 계의 이방호 사무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법은 왜 봐주냐"…정두언부터 걸릴 판
공심위 발표 이전 당내에서는 '당헌당규는 그대로 두되 탄력적으로 해석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공심위에서 이명박계 실세들의 입김으로 '일괄적용'을 발표하면서 개별적 심사기회가 봉쇄됐다는 게 박근혜계 의원들의 의심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오늘 모임에서) 부적절한 당헌당규이니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면서 "공천 일정이 바쁘니 개정을 미루고 신축적으로 적용하자는 말이 있어 여기까지 온 것인데 이 마당까지 왔으니 확실하게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와 교감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의원은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다"고만 답했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최측근 인사도 같은 질문에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박 전 대표 측이 이처럼 집단행동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박 전 대표 측으로부터 '매파'로 지목받고 있는 이방호 사무총장이나 인수위 쪽에선 "공심위에서 당규대로 한다는데 우린들 별 수 가 있냐"는 입장이다.
또한 '부패 연루자를 떨궈내겠다'는 명분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다. 이런 까닭에 박 전 대표 측은 형평성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
이날 이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공심위에서 선거법 위반자는 구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특정된 한 사람에게 주면 뇌물죄인데 다수에게 돈거래를 하고 매표를 하는 것은 다수의 중첩접 범죄"라며 "그런데 뇌물은 하나만 걸려도 아예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에서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도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면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면서 "똑같이 해야 승복하지 이런 식의 표적공천은 말도 안 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선거법 위반자까지 공천을 탈락시키면 당장 이명박 당선인의 최측근 정두언 의원부터 걸리게 된다.
"만나면 웃고 헤어지면 뒷통수 치는 게 반복된다"
박 전 대표 측은 특히 이명박 당선인에 대해 '신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두 차례의 박근혜-이명박 독대 내용이 지속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대선 이후 공천 시기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을 당시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주앉았다. 그러나 첫 만남 이후 양측의 전언이 엇갈려 갈등은 다시 고조됐다. 공심위 구성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주에도 두 사람은 다시 만나 '담판'을 지었지만 또다시 이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공심위 인적 구성을 이렇게 양보해놓고 어떻게 공천을 보장 받을 수 있냐'는 측근들의 불만을 '대승적 결단'이라는 명분으로 달랬던 박 전 대표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최측근 인사는 "만날 때 웃고 돌아서서 뒤통수 치고 그런 이중플레이가 반복되는데 이게 정말 구태정치다"고 박 전 대표 측의 기류를 전했다.
이같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계의 대거 탈당 사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이날 오전 "공심위 결정은 존중하나 집행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며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타협의 여지를 열어뒀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또다시 우여곡절을 거쳐 봉합한다손 치더라도 두 사람이 '국정 동반자' 수준의 신뢰를 원천적으로 구축하기는 어려워졌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게다가 봉합은 곧바로 '공천 개혁의 후퇴'를 의미하기에 양측이 모두 상처를 입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계파 의원들의 격앙된 반응 속에서도 탈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기엔 명분이 부족한, 진퇴양난에 처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이 결국은 관건이다.
다음은 김무성 최고위원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밝힌 현역 의원 35명의 명단.
김기춘 김무성 김성조 김영선 김용갑 김태환 김학송 김학원 문희 서병수 송영선 심재엽 안명옥 안홍준 엄호성 유기준 유승민 유정복 이계진 이인기 이혜훈 정갑윤 주성영 최경환 한선교 허태열 황진하 김재원 박세환 서상기 이경재 이규택 이진구 이해봉 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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