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00일째 되던 날, 해양수산부가 유가족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배·보상 안 받은 사람은 빨리 신청하라'라는 내용이다.
그 다음 날인 29일, 세월호 희생자 고(故) 최성호 군 아버지 최경덕 씨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섰다. '정부가 주겠다는 돈, 왜 받을 수 없나.' 이유는 명료했다.
"보상금을 받으면, 정부와 화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실제로 그렇다. 해양수산부가 제시한 세월호 참사 배·보상 기준에는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있다. 정부가 잘못한 게 없다면, 지난 500여 일 동안 유가족이 흘린 땀과 눈물은 허사가 된다. 정부가 제대로 책임을 지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라는 것. 그래서 이런 비극이 또 생기지 않게끔 하라는 것. 이런 요구를 하느라 밥을 거르고 거리를 누볐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의 책임을 묻지 말라니.
세월호 참사 501일째인 29일 오후, 서울역과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100여 명과 시민 100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 국민대회'에 참가했다. 이어 이들은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했다. 이날 7시에 열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를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직접 합창단을 꾸렸다. 이들은 평화의 나무 합창단과 함께 약 한달 반 동안 연습했다. 그리고 이날 무대에 올라 공연했다.
<그날이 오면> 등을 합창하는 유가족들을 보며, 시민들은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광화문을 찾은 시민 유지은 씨는 "벌써 500일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계절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바뀐 게 없다는 이야기다.
"생명보다 돈을 앞세우는 풍토가 참사를 불렀다. 그런데 여전히 '생명보다 돈'이다. 참사의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정부는 '돈 얼마 주면 되느냐'라고만 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대학생 김현경 씨는 "(합창문화제가) 유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하다. 참사 후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조사위가 꾸려졌지만, 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여전히 요원하다.
고(故)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무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딱 1년 전인 지난해 8월, 광화문과 국회에서 단식·점거 농성을 했다. 당시 국민 600만 명이 서명으로 힘을 보탰다. 그때는 1년만 지나면 억울함을 풀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미수습자) 9명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유가족 최경덕 씨는 이 대목을 성토했다. 최 씨는 "(바다에 잠긴) 세월호 창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신 유실을 막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최 씨는 "유가족이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겠다는 걸, 정부가 거절했다. 인양 지점 1마일 안에 접근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잠긴 세월호를 직접 봐야겠다는 입장이다. 최 씨는 "오는 9월 1일, 유가족들이 동거차도(세월호 침몰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섬)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서 세월호 인양 장면을 직접 보겠다는 게다.
유가족들이 이야기 하는 "인양"은 그저 배만 건져 올리는 게 아니다. 실종자 9명도 함께 찾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실종자 9명의 얼굴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이들이 전한 메시지다.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혁규, 권재근, 이영숙.
세월호 안에 여전히 단원고 학생 4명과 2명의 선생님, 일반인 희생자 3명이 있습니다.
이들이 아직 여행 중이라면, 500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날 합창문화제는 세월호 유가족, 평화의 나무 합창단, 성미산 마을 합창단 등이 함께 무대에 올라 <화인(火印)>을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도종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불도장(화인, 火印), 무대 위 전광판에 가사가 떴고 시민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그 옛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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