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마을이 가까워 '폭격하기 좋은' 사격장이 있었다. 실탄을 장착한 미군 폭격기는 해안가 마을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들에 폭격을 퍼부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폭격은 하루에 11시간씩 이어졌다. 표적 바로 옆에 펼쳐진 마을은 실전 연습에 적당한 긴장감을 주었다. 저고도의 굉음은 끊이지 않았고 포성은 54년간 이어졌다.
반세기의 폭격 끝에 이름 없는 작은 섬 몇 개가 사라졌고, 주민 여럿이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폭격이라면 끔찍했을 피폐한 마을에서 주민들은 탄과 탄피를 주워다 고철로 팔아가며 살았다. 매향리 쿠니사격장 이야기다.
매향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미군의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 주민들이 사격장 반대에 나섰고, 오랜 싸움 끝에 2005년 8월 사격장은 폐쇄됐다. 하지만 마을은 그 흔적을 쉽게 지우지는 못했다. 그 후 10년 이 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 당시 포탄이 일상적으로 떨어지던 참상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쿠니 미군 사격장 폐쇄 10년을 맞아 당시의 기록과 오늘의 풍경을 아우른 전시 <못살, 몸살, 몽상>展이 열린다. 사진가 강용석, 국수용, 노순택이 당시 매향리를 기록한 사진들을 꺼냈고, 이영욱, 윤승준, 정진호가 2015년 지금의 풍경을 새로 찍었다.
여섯 명의 사진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매향리를 보여준다. 국수용은 마을 사람들의 뿌리 깊은 불안과 고통을 가까이서 기록했고, 노순택은 주민들의 치열한 싸움의 과정과 탄의 궤적을 시각화한 사진들에 '고장난 섬(Wrong Island)'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용석은 기교를 배제한 매우 건조한 이미지를 통해 사진 속에서 사실만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영욱은 폐허가 된 미군기지의 쓸쓸한 풍경을, 정진호는 아직 어딘가 어색한 마을의 일상을 담았다. 윤승준은 오래된 흑백 사진을 현재의 풍경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켜 보여주려 했다.
사진은 도심 속 갤러리의 하얀 벽이 아니라 폐허가 된 음습하고 눅눅한 매향리 미군 기지의 벽에 걸린다(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산 157-4번지). 벽에 걸린 사진만이 아니라 전시장 밖 무수한 사실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기획자 최연하는 “지금 한국의 개인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묻기를 그쳤다”고 진단한다.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고,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지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매향리에서 말이다.
불과 일주일 동안만 열리는 이 전시는 23일 시작한다. 이날 4시부터는 작가와 관객, 주민이 함께 하는 '매향리 평화의 밤' 행사가 열린다.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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