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의 산 속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한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 씨의 사망 사건에 대해 1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경찰 및 소방 당국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았다. 임 씨는 이른바 '국정원 해킹 사찰' 의혹과 관련, 이탈리아 해킹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운용해온 것으로 알려진 당사자였다. 야당 안행위원들은 임 씨의 사망 현장에 국정원 직원이 출동해 현장을 변경했을 의혹을 직·간접적으로 제기했고, 경찰·소방 당국은 적극 해명했다.
야당 소속 위원들로부터 제기된 의혹은 크게 3갈래다. 첫째, 국정원이 경찰의 현장 접근을 최대한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근거는 △임 씨의 아내가 남편의 실종 신고를 경찰에 했다가 이를 취소하고 소방서에 신고한 것이 국정원 3차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고 △사망 현장에서 임 씨의 시신을 발견한 소방관이 경찰보다 국정원 직원에게 이를 먼저 통보했으며 △경찰이 사망 현장에 도착하는데 1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소방→경찰'로의 현장 유도가 부정확했다는 것 등이다.
새정치연합 김민기 의원은 이날 안행위 회의에서 "처음에 (소방에서 경찰로) 현장을 '800번지'라고 했다가 다음은 '산' 자를 안 붙이고 '77번지'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연락하니 '산77번지'라고 했다"며 "저는 이것을 단순 실수라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소방을 국정원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라며 "경찰이 빨리 오면 안 되니 이리저리 돌린 것이고, 결국 나중에 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의원은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소방에 당한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송래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장은 "저희가 국정원에서 조종받은 것은 없다"며 "'산77번지'를 '77번지'로 (통보)한 것은 시스템상(문제)…"라고 해명했다. 강 청장도 이에 대해 "(경찰 출동팀이) 소방과 8번이나 핸드폰 통화하며 갈 정도로 현장 지형을 찾기 어려웠다"며 "현장 유도에 시간이 지체됐다. 혼선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의 본질은 요(要)구조자에 대한 구조 요청으로 1차는 소방(관할)"이라며 "신고자(임 씨의 아내)가 '제가 찾아보겠다'고 하니 신고자 뜻대로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해서 즉시 출동을 안 했을 뿐이지 배제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임 씨의 시신을 찾은 소방관이 왜 경찰이 아닌 국정원 직원에게 먼저 연락했는지에 대해, 해당 소방관은 안행위 출석 증언에서 "처음에 왜 걸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음에 (자신이 국정원 직원에게) '○○산 등산로 쪽을 찾아봐 달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즉 소방관들과 사건 현장에 나타난 국정원 직원이 범위를 나눠 현장 수색을 공동으로 했다는 뜻이 된다. 이 소방관은 "수색을 하다 보면 동료 직원이나 가족에게 알릴 일이 생긴다"며 "저는 국정원이라고 (인지)하지 않았다. '동료 직원'이라고만 했다"고 했다. 실종자의 직장 동료라고만 알았을 뿐, 그 '직장'이 국정원인 줄은 몰랐다는 말이다.
임 씨의 아내가 왜 112에 했던 신고를 취소했는지, 국정원 3차장이 왜 임 씨의 아내에게 경찰이 아닌 '119에 신고하라'고 했는지 등은 이날 오전 안행위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앞서 기독교방송(CBS)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3차장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보위 회의에 출석해 자신이 부하에게 "임 과장 부인이 119 신고를 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또 임 과장이 출근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국정원 자체 위치추적장치(MDN)를 가동했는데, 휴대폰에 내장된 이 장치에는 휴대폰 저장 정보를 원격 삭제하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임 씨의 시신이 발견된 마티즈 차량에 대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은 "부검도 안 끝났는데 사망 당일에 차량을 유족에게 넘겨줘 다음날 폐차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강신명 청장은 "차량 인도 관련 얘기가 하도 많아서 경기지방경찰청이 최근 처리한 차량 내 변사사건 10건을 조사해 보니, 8건은 당일에 차량을 인계 처리했고 2건은 다음날 인계했다"며 "당일 차량에 대해 6시간 반에 걸쳐 정밀 감식을 실시해서 형사 절차에 따라 유족에 인도한 것이 현장의 판단이고, 그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셋째, 국정원 직원에 의한 현장 훼손 가능성 제기다. 박남춘 의원은 "현장 소방대원은 국정원 직원에게 경찰보다 약 8분 먼저 상황을 전파했다. 현장 소방대원들이 화산리 정류장 부근에서 구조 회의를 하던중 최초 접촉한, 임 과장의 회사 동료라 밝힌 국정원 직원과 헤어진 뒤(11시 15분경) 차량 발견 직전까지 총 3차례 무선 통화를 진행했고, 11시 54분 소방대원에게 위치를 파악한 국정원 직원은 12시 3분 현장에 도착하였다. 출동 경찰보다 50여 분 일찍 현장을 파악한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내어 밝혔다. 즉 12시 50분경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국정원 직원이 현장에 접근할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은 또 "소방에서 찍은 시신 사진과 경찰이 찍은 사진이 다르다"며 시신의 자세가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누군가 와서 시신을 만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또 최초로 마티즈 차량 문을 연 소방관의 지문이 차량에서 나오지 않았고 17개의 식별 불능 지문이 나왔다며 현장 상황이 변동됐을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강신명 청장은 이에 대해 "(17개는) '쪽 지문'이다. 일부분만 나와 누구 것인지 판정이 안 되는 지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초 발견자인 소방관의 지문이 이 17개 가운데 포함됐을 것이라는 취지다.
정 의원은 또 "사망지점 입구(버스 정류장)에 11시 10분에 소방이 출동하는데 1분 후 국정원 직원이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고, 마티즈 발견 장소에 다른 직원이 나타났다"며 "(사망 현장에 나타난 직원은) '반바지 직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방본부 관계자는 박남춘 의원과의 신문 과정에서 "(반바지 직원과 마티즈 현장 직원은) 같은 분"이라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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