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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상 최악의 사건…남북관계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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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정원 사상 최악의 사건…남북관계 악영향"

김만복 원장은 왜 '제 무덤'을 팠을까?

정권 교체를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두고 김만복 국정원장의 불명예 퇴진이 확실시 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 국정원장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대화를 나눈 사실 자체도 논란꺼리지만 김만복 국정원장이 도대체 왜 스스로 이 대화록을 유포했는지가 관심사다.

지난 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던 김 원장에 대해 '정보기관 수장답지 않게 나서기 좋아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 원장의 성격 탓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십년 만에 정권교체를 맞은 국정원의 조직적 불안감, 정치인 출신이 갖출 수 있는 '뚝심' 대신 권력의 향배에 예민한 '촉각'을 갖춘 국정원 직원 출신 원장의 한계,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춰왔던 김 원장의 개인적 특성이 결합된 사태로 풀이된다.

"남북관계와 조직의 안정을 위해 대화록 유출했다"?

김 원장은 15일 사의표명 기자회견에서 "지난 9일 오후 국정원 관계관을 통해 모 언론사 간부에게 면담록이 포함된 국정원장의 선거 하루 전 방북 배경 및 경과 관련 자료를 비보도를 전제로 전달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과 청와대, 대통령직 인수위의 설명에 따르면 김 원장이 대화록을 전달한 곳은 10일 이를 단독보도한 <중앙일보> 뿐이 아니라 인수위나 한나라당에 '연'이 닿는 퇴직 국정원 간부를 포함해 14명에 달한다. 보도 자체는 김 원장이 주도한 국정원 측의 유출에 의한 것으로 정리되지만, 인수위와 한나라당 쪽을 통해 '팩트'가 사전에 유포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 ▲ 김만복 국정원장이 15일 오후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자신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간의 대화록 유출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갖기 전에 머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김 원장은 면담록 작성과 유출 배경에 대해 "12월18일 나의 방북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소위 '북풍공작' 의혹이 강하게 제기됨에 따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면서 "세간에 불필요한 의혹이 확대 재생산돼 국론분열을 야기하고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대선과정에서 철저한 중립을 지켜온 조직의 안정을 위해 주변인사들에게 자료를 전달하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잘못됐지만 '충정'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선 이후 김 원장이 거의 공공연하게 평양 방문 사실을 이야기하고 다녔던 점, 평양 방문 사실 공개 이후 논란이 커지지 않았던 점등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오히려 18일 방북 자체가 당선이 확실시되던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알리바이 만들기'차원이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누구 들으라고 한 이야긴가?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실시 된다",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화해협력기조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욱 과감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는 대화록의 내용 자체는 이명박 당선인 측이 눈살을 찌푸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도 치르기 전에 한국의 정보총책임자가 평양에 가서 '야당 후보 당선 확실' 등을 거침없이 말한 것은 결국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인을 향한 것 아니냐'는 점이 문제다.

인수위 측도 이 점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어차피 업무보고를 통해 대화록이 전달되는데 이걸 또 바깥으로 유출시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 국정원 직원은 "김 원장이 되게 불안하기는 불안했던 모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 초인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정보관리실장으로 발탁된 이후 기조실장, 1차장, 원장으로 승승장구한 김 원장이 차기 정부에서 다른 자리를 바라지야 않았겠지만 '다치지 않을까' 걱정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김 원장은 본인이 수차례 부인했지만 지난 해 가을까지만 해도 차기 총선에 현 여당 간판으로 고향인 기장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이 '원 사이드'로 진행되면서 출마를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런 과정에서 대선 기간의 '국정원 내 이명박 TF' 논란 등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심적 불안감이 이번의 '오버'로 이어졌다는 것. 또한 대선 기간 내 특정 학맥, 인맥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줄대기가 적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김 원장 입장에선 이를 만회할 '한 방'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측근인 박희태 의원이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대선 기간 국정원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더러 인수위 내에서도 김 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사들도 적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괜히 제발 저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공직사회, 경쟁적 '코드 바꾸기'

이같은 '오버'는 국정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들고 나온 노동부, 언론사 성향조사에 앞장 선 문화관광부, '시위 현장에서 폴리스라인 침범시 전원 연행' 방침을 들고 나오는 경찰청 등 경쟁적 '코드 바꾸기'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의 이번 대화록 유출 사건은 국정원 조직은 물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현 노무현 정부에 엄청난 상처를 안겼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악성(惡性) 사건이다.

최고 대남사업 관계자(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발언이 남측 정보책임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유출된 상황은 상호 신뢰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국정원 사상 최악의 사건"이라며 "국정원 조직이 커다란 상처를 입었음은 물론이고, 북한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최고 대남 책임자의 발언이 양측의 합의 없이 남한 언론에 흘러 나감으로써 남한의 대북채널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 게 자명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북통인 정형근 의원도 지난 10일 <중앙일보> 보도 직후 "국민의 알권리 충족도 좋지만 이런 내용이 보도되면 이게 상대방이 있는 건데 상대방이 믿고 신뢰가 되는 알 수 있는 범위에서 대처해야 하는데 전면 보도가 바람직한 건지…"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의 대부분은 김만복 원장 본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프카니스탄 사태 당시 과다 노출 논란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국정원의 업무도 무조건 비밀로 할 때가 아니다"고 오히려 부채질을 했던 청와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또한 자신들은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정권교체기 공직사회의 불안감을 조장해 '영혼이 없는 관료들'을 양산하고 있는 인수위의 행태 역시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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