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롯데 그룹 총수 가족 대부분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은 신격호 롯데 그룹 총괄회장의 아버지 제삿날이었다. 하지만 꼭 있어야 했을 사람이 둘 빠졌다. 한 명은 신 총괄회장의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스코 씨다. 그녀는 하루 전에 입국했었다. 시아버지 제사 때문이라는 게 당시 언론의 해석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다음 날인 8월 1일 일본으로 떠났다.
제사에 불참한 다른 한 명은,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이다. 할아버지 제삿날, 그는 무얼 했을까. 제사에 왜 불참했을까.
신동빈, L투자회사 12곳 가운데 10곳의 대표이사 등기
단서가 드러났다. 일본 법무성이 6일 발급한 L투자회사의 법인등기부등본을 보면, 신 회장은 7월 31일 일본 L투자회사 10곳(1·2·4·5·7·8·9·10·11·12)의 대표이사로 올랐다. 일본 L투자회사는 모두 12개인데, 나머지 두 곳(L제3투자회사, L제6투자회사)의 경우 등기 기재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법인등기부등본 열람 및 발급이 불가능했다.
신 회장이 일본 L투자회사 10곳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건 6월 30일, 등기가 완료된 게 7월 31일이다. 그 전에는 12개 L투자회사 중 9곳(1·2·3·7·8·9·10·11·12)의 대표이사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나머지 3곳(4·5·6)은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이제는 일본 L투자회사 8곳(1·2·7·8·9·10·11·12)은 신격호, 신동빈 공동 대표이사 체제다. 두 곳(4·5)은 신동빈 단독 대표이사 체제다.
신동빈 회장과 경영권 경쟁을 하고 있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일본 L투자회사 두 곳(4·5)의 대표이사 직에서 올해 1월 물러났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일본 L투자회사 6곳(2·7·8·9·10·11)의 이사 직에서도 해임됐다. 이 시기는 신 전 부회장이 그룹 내 다른 주요 보직에서도 밀려나던 때다.
신동빈 회장이 L투자회사 대부분을 실제로 장악하고 있다면, 롯데 그룹 경영권 다툼은 신 회장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반(反)신동빈 진영이 제사상 앞에 모여 있던 날, 신 회장은 그룹 경영권 장악을 위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롯데 그룹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뒤, 계속 반복됐던 문제 때문이다. 바로 불투명성. 지금 알려진 건, 일본 L투자회사 12곳 가운데 10곳의 대표이사일 뿐이다. 12개 L투자회사들의 구체적인 지분 구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5일 MBC 보도에 따르면, L투자회사 한 곳은 주소지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 자택이었다.
실제 지분 구성에서 신 총괄회장이 앞서 있다면, 신격호, 신동빈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확인된 L투자회사 8곳은 신 총괄회장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 경우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유리해진다.
롯데 그룹 지배구조는 왜 이토록 불투명한 걸까.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재벌 개혁의 명분에도 그만큼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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