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으면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놓은 답변이다.
이 당선인은 "그렇다, 아니다"에 대한 명확한 답은 하지 않은 채 "국민적인 납득과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운하 공약 추진의 위험성을 꾸준히 지적해 온 언론에 대해선 "일부 언론을 보면 아주 안 된다는 전제 하에 보도를 하고 있다"며 강한 거부감도 드러냈다.
"민자로 진행하기 때문에 세금이 들지 않는다", "사업 자체로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으므로 기업들의 판단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해외 자본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등의 주장은 지난 경선기간부터 대선을 경과하는 동안 이 당선인이 계속 반복해 온 레퍼토리였다.
"세금 한 푼 안 든다"더니…'말 바꾸기' 시작됐나
관건은 '100% 민자사업'이라는 말이 내포한 함정이다.
이 당선인이 각종 토론회나 공개적인 지원유세 등에서 누차 강조해 온 '민자사업'의 의미를 파고들어가 보면 곳곳에 구멍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추부길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충청(금강), 호남(영산강) 운하도 경부운하처럼 민자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추 팀장은 "일부 인수위 관계자들이 재정 사업 얘기를 한 것은 잘 모르고 한 말"이라고도 했다. 경부운하와 마찬가지로 호남·충청운하도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수위 강승규 부대변인은 이날 이 당선인의 기자회견 이후 가진 브리핑에서 "100%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당선인의 언급은 우선 경부운하 사업을 지칭하는 것"이라면서 "호남운하나 충청운하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발 물러섰다.
호남, 충청운하가 '사업성'에 대한 검토를 통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경우 민자가 아닌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부운하, 호남운하, 충청운하를 하나로 묶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통틀어 "세금 한 푼 들지 않는다"고 강조해 온 이 당선인의 약속은 당장 여기에서부터 어긋난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BTL-BTO 여부는 아직도 오리무중
대운하 사업을 BTL(임대형 민자사업)로 진행할지, BTO(직접운영 민자사업)로 진행할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BTO는 민간투자자가 이용료를 직접 징수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반면 BTL은 손해가 발생할 경우 그 손실분을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 줘야 한다. 애초 한나라당과 이 당선인 측이 공식적으로 밝혀 온 사업방식은 BTO였다.
인수위 내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TF) 박승환 공동위원장도 "운하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적자를 재정으로 메워주는 등의 수익보장은 담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었다. 그러나 최근 인수위와 당 내부에선 엉뚱한 소리가 들려 나온다.
강승규 부대변인은 "BTO인지 BTL인지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방법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해 가능성을 열어 뒀다.
당 내 '대운하 전도사'임을 자임하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도 "기업들도 건설에 참여하면서 뭔가 이득이 있어야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우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GS건설,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 국내 상위 5개 건설사는 지난 해 12월 28일 장석효 한반도대운하 TF 팀장과 회동한 데 이어 이미 사업 추진을 위한 단일 컨소시업을 구상하고 사업에 참여키로 한 상태다. 이들 업체들은 BTL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수익, 인수위도 포기했나…업체들도 '시큰둥'
문제는 "민자로 진행한다"는 대운하 사업의 사업성이 대단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실제 <한겨레>신문이 14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컨테이너와 벌크화물 운송업체(화주)의 76%가 "운하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운하가 건설된다는 전제 하에서 이를 이용할 주요 고객들이다.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이를 이용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는 대답은 불과 4곳(6.6%)에 불과했다. 이용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34곳(56.6%), 유보적 답변을 밝힌 업체는 22곳(36.6%)였다. 우여곡절 끝에 운하가 완성되더라도 돈을 내고 이를 사용할 주체는 운하를 원치않는다는 얘기다.
박승환 위원장은 "민자건설사들은 통행료나 통항료 수익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하천부지 개발을 통한 레저시설 운용, 생활시설 임대료 등 부대수익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운하 예정지 주변의 개발을 통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주장이지만, 역으로 보면 물류기능을 통한 수익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설사 이 당선인 측이 대운하 사업을 애초 공약대로 BTO로 진행한다고 해도 하천부지 개발권을 건설사에서 부여한다면 '막개발 논란'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운하 공사가 예정된 지역의 부동산 투기열풍은 이미 시작됐다. 이 당선인의 대선승리와 함께 운하 예정지의 땅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이는 "부동산 가격이 인상되는 일만큼은 막겠다"는 이 당선인 본인의 약속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막무가내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반대 여론에 대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도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이 당선인과 인수위가 "100% 민자로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지만 그 전에 먼저 사업의 추진방식, 세금 투입여부와 그 규모에 대해 명확히 밝히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한 해명 없이 '100% 민자'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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