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국적 기업 글로벌 세제에 대한 논의가 G20(주요 20개 국 정상들의 회의)를 중심으로 한 선진 진영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기구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은 OECD가 진행하는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세원 잠식과 이익 이전) 이니셔티브의 마련 및 추진으로 구체화됐다. 이 논의의 전개과정에서 UN과 개도국, 저개발국 등은 그 동안 소외돼 온 면이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 글로벌 이윤의 과세 기준 마련 측면에서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이해관계 충돌은 사활적 수준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플랫폼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여 '다국적기업 조세 개혁을 위한 독립 위원회'(ICRICT, The Independent Commission for the Reform of International Corporate Taxation)가 올해 출범했다.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 옥스팜(Oxfam), 크리스찬 에이드(Christian Aid), 국제 공공부문 노조 연맹(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국제노조협의회(Council of Global Unions) 등 시민사회 영역과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와 호세 오캄포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등 학계 인사 및 에바 졸리 유럽의회 의원 겸 조세 특별 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공공 시민 사회 기구, 관련 분야 전문가 및 학계 주력 인사들이 망라된 협의체라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스티글리츠 교수, 에바 졸리 의원 등 9인이 구성하고 있으며, 의장은 유엔 사무차장과 콜롬비아 재무장관을 지낸 오캄포 교수가 맡고 있다.
지난 7월 12일 일요일 저녁(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 소재 쉐라톤 아디스 호텔에서는 유엔 '개발재원'(FFD, Financing For Development) 총회 시작에 앞서 ICRICT가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후원으로 첫 공식 미팅을 가졌다. 스티글리츠 교수, 졸리 의원, 오캄포 교수 및 OECD 조세행정센터에서 BEPS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파스칼 생아망 소장 등이 패널 토론을 벌였고, ICRICT 이름으로 총 34개 항에 달하는 개혁권고안을 발표했다.
다음은 행사에 참여했던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챕터 이유영 대표가 34개 항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I. 다국적 기업을 단일 기업으로 간주하여 과세하자
1. 각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들이 자회사와 지사를 세법 상 개별적 법인으로 취급하는 기법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이들을 국가 간 영역을 넘어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단일 기업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2. 각국 정부는 자국의 과세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게 귀속될 매출액과 비용을 자국의 몫에 맞게 인식할 수 있도록 양자간 및 다자간 협약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3. 지적재산권의 통제나 소유에서 나온 이윤을 저세율 국가로 이전하는 대신, 해당 이윤은 관련 지적 재산권이 개발된 국가로 귀속되어야 한다. 한편 지적 재산권을 활용한 판매 행위가 이루어진 경우, 그 이윤은 매출과 고용 등 객관적인 경제적 인자에 따라 각국에 귀속되어야 한다.
4. 각국 정부는 자국에 거주기업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관계사들을 자국 조세권에 조세연계성을 갖고 있는 고정사업장으로 간주해야 한다.
5. 각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이 인터넷을 통해 자국의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거나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할 때 특정한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 해당 기업행위가 고정사업장 지위를 창출한 것임을 규정하도록 자국의 고정사업장 법제를 개정해야 한다.
6. 장기적으로, 다국적기업의 자회사를 별개의 법인으로 과세하고 있는 현재의 조세 체계를 단일적 통합 기업으로 과세하는 조세 체계로 대체해야 한다. 단일적 통합 기업으로의 과세는 매출과 고용과 같은 객관적 인자에 근거한 공식을 활용하고 원천지 원칙에 대한 충분한 고려 또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7. 개혁을 위한 국제적 협력은 현행 OECD 주도의 BEPS 이니셔티브 수준을 넘어서 진행되어야 하며 다국적 기업 활동 결과물의 국제적 연결 및 할당 기준에 대한 연구와 협상 또한 개시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기업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과세 표준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 지와 이윤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에 대한 규칙 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런 이행이 야기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의 수직적 통합을 통한 대응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되어야 한다.
II. 조세 경쟁을 억제하자
8. 선진국들은 법인세제에 있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쟁적 세율 인하 움직임에 대한 대응의 첫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이는 OECD를 통해 특정한 최소 법인세율에 합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9. 각국 정부는 자국이 채택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자국의 세제 혜택이 타국에 있어 조세 회피를 촉진하는 경우 이를 철폐해야 한다.
10. 각국 정부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공공 세제적 인센티브, 세제 혜택, 그리고 소득 공제 조치 등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11. 각국 정부는 타국과 조세 쟁송에 연루되어 있는 자국의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외교적 또는 기타 수단을 통한 옹호 행위를 삼가야 한다.
12.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법인세 혜택이 불법적 정부 보조금에 해당되는 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점을 명확히 해야 하며, 이러한 조세 혜택의 사용을 중단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법적 조치를 유럽 의회에 내놓아야 한다.
13. 각국 정부는 조세 경쟁을 억제하도록 기업계를 고무해야 한다. 특히 동아프리카공동체(the East African Community) 권역에서의 조화로운 세제 인센티브 체제 마련이나 유럽연합 권역에서의 공통연결기업과세표준(the Common Consolidated Corporate Tax Base) 구축 움직임과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수 있다.
III. 집행력을 강화하자
14. 각국 정부는 유해 조세 관행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해야 한다.
15. 각 다자 간 기구는 다국적 기업 집단 관계사 간에 이루어지는 이자, 배당, 로열티 및 그 밖의 지불행위에 대해 그 해당 행위가 국경을 넘어 해외 송금을 행하기 전 조세 원천징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원천징수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16. 각 다자 간 기구는 유해조세 관행을 외부에 공개한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모델 규정을 개발해야 한다.
17. 각국 정부는 자국 조세행정당국이 다국적 기업 징세과정에서 충분한 자원과 독립적 권위, 그리고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8. 각 다국적 기업은 조세 납부에 관한 일련의 윤리 규정을 제정 공표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또한 각 다국적 기업은 자사가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국가들을 위해 조세납부를 이행한다는 시민적 의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천명해야 한다.
IV. 투명성을 제고하자
19. 각국 정부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막론하고 다국적 기업들에게 영업국가별재무제표(country-by-country reports)의 작성 보고를 요구해야 하며, 작성 보고가 이루어진 후 해당 재무제표를 각국의 조세 행정당국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때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고 효율적이며 비용 효과적인 조세 행정 체제를 촉진하기 위해서 별도의 조약이나 협약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20. 각국 정부는 영업국가별재무제표를 보고가 이루어진 30일 이내에 공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21. 각국 정부는 기업 주식의 최종적인 수익적 소유자인 자연인의 이름을 확보하고 공공 등기부에 해당 이름을 기재한 뒤 이를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22. 채광산업에 종사하는 각 다국적 기업은 영업국가 및 프로젝트 별로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각 정부에 대해 지급한 금액을 공개해야 한다. 이때 해당 재무제표는 미국의 도드-프랭크 법(the Dodd-Frank Act) 제 1504절 및 유럽연합의 회계 및 투명성 지침(the Accounting and Transparency Directives)을 토대로 작성한다.
23. 각 다국적 기업은 연례적으로 공시되는 재무제표에 "의미 있는" 자회사군 만이 아니라 모든 자회사들을 공개해야 한다.
24. 각국 정부는 이전가격 사전합의와 상호합의 절차의 결과물들을 공개해야 하며 사전합의와 관련된 핵심적 요소들에 대한 공중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모델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
V. 조세 조약을 개혁하자
25. 각국 정부는 조세 조약에 있어 조세 원천징수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을 회피해야 한다.
26. 각 다자 간 기구는 모델 조세 조약의 목적에 이중 비과세를 방지하고 유해 조세 관행을 억제하며 효과적 조세 행정체제를 촉진하기 위해 정보교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목적을 포함시켜 이를 확대해야 한다.
27. 각 다자간 기구는 모델 조세 조약이 일반 반-조세회피 규칙을 포함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28. 각국 정부는 세법을 무력화 시키거나 우회하는 규정들을 투자자 보호 조약 또는 채굴산업 협약이나 여타의 협약에 포함시키는 것을 회피해야 한다.
VI. 국제 조세 협력에 있어 보다 많은 국가들을 참여시킬 태세를 갖추자
29. 각 유엔 회원국은 '유엔 조세전문가위원회'(the UN Committee of Experts on International Cooperation in Tax Matters)를 국제 정부간 위원회로 격상시키고 그에 따른 충분한 자원을 공급해야 한다.
30. G20 및 OECD가 주도하는 BEPS 프로젝트는 지향하는 방향은 맞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우선적 현안을 반영하기 위해 보다 더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이때 개발도상국가에게 동등한 투표권 및 실행 계획 변경 관련하여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
31. 각 다자 간 기구 및 기타 정부간 국제 기구는 개발도상국가의 조세행정 부문 역량 강화를 위해 자원 지원을 증대시켜야 한다. 이때 개발도상국가 간의 협력 또한 증진시킨다.
32. 유엔 글로벌 임팩트(Global Impact) 및 OECD 다국적기업을 위한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은 조세 납부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 우선적 가치임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33. 각 유엔 회원국은 유해조세관행을 불식시키기 위한 유엔 협약을 제정하도록 협의를 개시해야 한다. 이 유엔 협약은 후일 다국적 기업 이윤 과세를 위한 연결 및 할당 체제를 채택하게 될 협약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34. 국제 사회는 국제적 수준에서 다국적 기업 세제를 규율하게 될 가장 효과적이고 참여지향적인 메커니즘을 찾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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