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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직원 연수, 마지막은 아내 바느질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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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직원 연수, 마지막은 아내 바느질 교육?

[프레시안 books] 에리크 쉬르데주의 <한국인은 미쳤다!>

잘 나가는 국외 법인의 현지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부회장이 방문했다. 빡빡한 의전 일정을 모두 수행한 다음, 부회장과 현지 간부가 모인 성대한 점심 자리가 마련됐다. 모든 건 좋았다. 식사가 끝나고 법인의 한 간부가 휴대전화로 부회장의 사진을 찍기 전까지.

바로 다음 날 현지 법인장이 실무 책임자를 불러 사진을 찍은 사람을 해고하라고 했다. 부회장이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황당한 일이다. 그는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었다. 결국, 타협을 봤다. 조직도에서 해당 간부 이름을 빼고 부회장에게 증거로 보여주되, 실제로는 그를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부회장이 마음에 들어했다. 상부의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한국 기업의 부끄러운 현실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 LG전자의 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이가 쓴 <한국인은 미쳤다!>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 북하우스 펴냄)이다.

프랑스 태생의 저자는 2003년 LG그룹 프랑스 법인의 부장으로 입사해 2012년 해고될 때까지 10년을 몸담았다. LG그룹에는 약 400명의 고위 간부(상무 이상)가 있는데, 저자는 2006년 12월 상무로 진급했다. 재직 기간 현지 법인이 매출액이 7배나 성장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LG그룹 사상 첫 외국인 상무다. 저자 이후로 27명의 외국인이 LG그룹의 상무직에 올랐다.

책은 저자가 LG그룹에서 겪은 여러 경험담을 묶어, 그가 관찰자로서 바라본 한국 재벌 기업의 현실을 전한다. 저자는 근무 기간이 말해주듯 폐쇄적인 한국 기업 문화에 잘 적응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가 겪은 일들의 대부분이 황당함으로 다가왔음을 증언했다. 철저히 상명하복으로 돌아가는 조직 문화, 야근이 당연시되고 인사 관리에 철저히 효율만이 강조되는 분위기, 불가능한 과업을 조직 목표로 정하고 돌진하는 한국 기업의 운영 방식은 프랑스 직원들과 빈번히 마찰을 일으켰다.

▲ <한국인은 미쳤다>(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이 책은 저자가 프랑스 독자에게 한국 기업의 독특한 현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프랑스인에게는 너무나 생경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반면 한국인 독자는 일상이었던 광경을 거리를 두고 새로이 볼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극단적으로 효율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다. 적잖은 한국인은 여전히 외환 위기 이후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이른바 '정(情)'으로 대표되는 인간관계 중심의 문화가 우리 사회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기에 한국의 조직은 오직 효율을 핑계로 직원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군대식 문화에 지배당할 뿐이다.

"한국 기업은 사원의 헌신이나 '잘 된 업무'와 같은 애매한 개념, 훌륭한 팀워크 등 전적으로 주관적인 인상에 좌우되고 서양의 기업들이 아주 좋아하는 질적 기준을 거부한다. (…) 생산, 경영, 마케팅 부문에서 한국 기업은 구체적인 실적이 중시되는 왕국이라 할 수 있다. 인간미나 정서는 파고들 틈이 없다. () 동료의 업무를 두고 다른 방식으로 일하면 얼마나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토론하는 프랑스식은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처럼 경직된 조직 문화는 모든 한국인 직원의 일상, 특히 가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임원으로 승진한 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업무 연수의 마지막 날 모든 직원의 아내가 바느질 등의 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 왜 아내가 남편의 직장에서 전근대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나.

우리는 흔히 '일본과 한국의 기업 문화는 비슷하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소니, 도시바 등 일본의 기업에 재직할 때를 두고 저자는 "동료들과의 교류는 매우 예의가 넘쳤고 근무 환경도 훌륭했다. 자율성도 보장되어 있어서 창의력이 늘 깨어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한국 간부 20명이 똑같은 상황에 놓이면 20명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며 한국 기업은 일본과 완전히 다르다고 전한다.

그 근원을 그는 한국 기업 특유의 폐쇄성에서 찾는다. 단일 민족 신화, 군사 문화 등으로 대표되는 사례들 말이다. 실제 저자는 책을 통해 "앞으로 조직 내 모든 문서는 한국어로만 작성하라"는 부회장의 지시 사항을 전하고, "한국어를 못한다"며 핀잔을 받은 경험담을 기록했다. 이른바 글로벌 기업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일이다.

이런 '닥치고 돌진하는' 시스템이 과연 뛰어날까. 과거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관료주의에 막히고 창의성이 중시되지 않으면서 그 법칙은 작동되지 않았다.

그가 LG에 갓 취업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LG 프랑스 법인의 시장 지배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현지 상황을 알고자 한국의 본사 사업 본부장이 시찰을 오기로 했다. 안달이 난 법인장을 달래기 위해 그는 한 가지 타개책을 내놨다. 본부장이 오는 당일에만 LG 상품이 잘 보이도록 현지 유통 업체를 달래 진열한 후, 그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자 자사 직원들을 동원해 원상 복구시켰다. 군대를 다녀온 이라면 알,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처리다. 책의 추천사를 쓴 유정식 컨설턴트는 이와 같은 성과주의 문화가 조직 내 정치만 키웠다고 비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촌극들이 책의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그가 임원 교육을 받기 위해 연수원에서 겪은 경험담들을 보면, 그 기괴함에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며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은 소재라는 점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현실이다.

이 책은 저녁이 없는 오늘날 한국의 '미생'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생생한 이야기들로 꾸려졌다. 한국 기업 문화가 심각하게 병들었음을 고발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웃픈' 현실에 지친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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