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해킹을 담당했던 직원 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국정원의 내부 감찰을 받았느냐를 두고 새누리당이 '오락가락' 해명을 늘어놓고 있다.
임 씨가 숨진 직후인 19일에는 '감찰이 있었다'고 밝혔다가, '강도 높은 내부 감찰이었다'는 언론 보도 후에는 '감찰이 아니라 알아보기 수준이었다'고 말을 바꾼 것. 애초 새누리당이 아니라 국정원이 해명해야 할 일임에도, 국정원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면서 '야당 탓' 공세 수위를 높여가다 혼선만 키운 모습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측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임 씨가 숨진 채로 발견되고 하루 뒤인 19일 오후, 새누리당 당사무실에서 관련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정원 측과의 전화 통화에서 파악한 내용 일부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이걸 '외부에 했느냐' '어떻게 했느냐' 감찰도 들어오고 하니 그에 대한 많은 심리적 압박을, 또 정치 문제화되니까 더 압박을 느낀 것 같다."
이처럼 '감찰이 있었다'고 이 의원은 명확히 밝혔으며, 이어 "대 테러범·대북 공작국에서 요청한 것을 기술자로서 해줬는데 '구입을 어떻게 했는지' '내용이 뭐냐'고 계속 물어보니 이 사람이 잠도 못 잤다"고도 설명했다.
여기서 '계속 물어본 주체'는 말의 맥락상 국정원일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임 씨라는 인물이 특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언론이나 국회로부터의 질문을 임 씨가 직접 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의원은 또 "자기가 옛날에 했던 거니까 잘 모르지 않나. 그래서 분석을 해보니 사람 이름이 막 들어있으니까 공개되면 '국정원 문제 있다'고 할까봐 부담을 가진 것 같다"면서 임 씨가 해킹 자료를 삭제한 이유까지도 추정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순수하니 삭제를 했는데 국정원장이 '삭제된 것 다 공개하라'고 하니 부담을 가졌"을 것이라면서 "이런 일이 이어지니까 4일간 잠도 못 자고 신경이 예민해지니 그런 사건(자살)이 발생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숨진 임 씨는 해킹 대상과 과정에 대한 내부 감찰을 받았고, 삭제한 해킹 자료 전체를 예상과는 달리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새누리 "감찰도 들어오니 심리적 압박"→ <한겨레> "숨지기 직전까지 특별감찰"
따라서 임 씨가 내부로부터 강도 높은 감찰을 받았다는 20일 <한겨레> 보도(☞해당 기사 보기 : [단독] '국정원 직원, 자살 직전까지 수차례 ‘해킹’ 특별감찰 받았다") 는 이 위원의 전날 브리핑 내용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
다만 이 보도에서는 감찰 당국이 '진술서에 (임 씨의) 손도장을 받았다' '숨진 당일 오전 10시에도 조사가 예정돼 있었다'는 사정 당국 관계자의 말이 추가됐다.
이렇게 감찰 정황이 이 의원의 브리핑에서 훨씬 더 구체화됨으로써, '자살의 원인은 야당의 정치 쟁점화 때문'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임 씨가 토요일임에도 18일 출근이 예정돼 있었던 것과 관련해서는 새누리당의 설명과 언론 취재 결과가 완전히 배치되고 있다.
이 의원은 '출근의 목적'에 대해 "이 문제가 불거지고 계속 근무(이철우 위원 19일 브리핑)"라고 설명했으나, <한겨레>가 취재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18일 오전 10시부터 국정원에서 조사받기로 돼 있"었다고 전했다.
새누리 "감찰 아니라 전화 몇 번…정치권 흔들기에 부담"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감찰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결정을 하기까지의 배경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앞서 임 씨 죽음의 귀책사유를 야당에 물었던 만큼,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21일 말을 뒤바꿨다. 국정원 감찰 보안팀으로부터의 기초적인 정보 조사는 있었으나 감찰은 없었다는 쪽으로 설명이 바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은 '감찰'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정보 수집' '알아보기' 등의 표현을 썼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당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는 "어제 제가 확인봤다"면서 "(국정원에서는) '우선 복구하는데 바빴기 때문에 이 직원에 대해서는 전화로 몇 마디 물어본 것밖에 없다. 감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감찰실에 불려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얼굴도 못 보고 그냥 전화 몇 번 했던 것밖에 없다. 그건 분명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게 들은 말을 옮긴 것이다.
그러면서 "(임 씨가) 감찰 조사를 세게 받을 이유도 없었다. 그 직원이 잘못한 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자신의 해석도 곁들였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고도 했다.
'야당 탓'하더니…
상황이 이러니 취재진의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취재진은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가 끝날 때까지 그를 기다렸다가 재차 감찰 여부에 대해 물었고 이 의원은 "감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감찰실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는 것"이라면서 "(이 경우엔) 이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물어보는 정도에 그쳤다"고 답했다.
한 기자가 '어쨌건 감찰실에서 움직였다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에는 이 의원은 "감찰실에선 '어떤 내용을 하느냐' 다 알아보게 돼 있다. 알아보는 수준이지 (임 씨를) 조사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임 씨가 사망한 그날에는 감찰이 예정돼 있지 않았나'라고 묻자, 이에 대해서는 "감찰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감찰을 받지 않았다)"면서 "기술적으로 우리가 해킹을 당한 건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감찰은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알아야 되지 않나. 그런 내용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찰 조사팀은 움직이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안 움직였다"면서 "보안팀이 기초 수집을 한 것"이라고 이 의원은 설명했다.
안철수 "감찰 받으려 출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이 의원의 말이 '오락가락'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 위원장은 같은 날 오후 "다시 말 바꾸기를 하는 만큼 신뢰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추측건대 아주 강도 높은 감찰 있었다. 국정원 내부 사정을 들어 보니 토요일에 감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토요일에도 오전 10시까지 출근해서 감찰을 받으라고 해서 (임 씨가) 새벽에 출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그러면서 "국정원직원법 27조 징계 대상자 진술권에 따라 작성된 진술서와 감찰 조서를 국회에 제출해 달라"고 국정원에 요구했다.
숨진 임 씨가 파일 삭제를 언제, 왜 했는지 역시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안 의원은 "(임 씨와 같은) 실무자는 (해킹 프로그램을) 운영만 하고, 상급자가 중요한 파일에 대한 삭제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 분야 실무자였다가 다른 부서 팀장으로 간 고인이, 그 전에 자기가 일하던 부서의 파일을 삭제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른 부서의 사람이 파일을 삭제할 수 없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해명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보기 : 'IT 보안관' 안철수 "국정원, 디지털 증거부터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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