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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리듬' 제주를 녹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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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리듬' 제주를 녹음하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제주의 소리 담은 오디오 감독 김창훈

제주의 소리를 만나다

2003년쯤 <홍반장>이란 영화 작업을 제주도에서 했어요. 제 일을 소개할 때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 씨가 갈대숲 녹음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요.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설명하기 쉬우니까요. 예전에는 '동시녹음'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정확한 배경음을 현장에서 동시에 만나기는 어려워요.

<홍반장>은 어촌 마을이 배경인데, 장면마다 거기에 맞는 '배경음(앰비언스, ambience)'을 녹음해야 했어요. 어느 날 아침에 나갔더니 아주 독특한 새들이 있더라고요. 어느 지역이나 새는 있겠지만,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새들이 있잖아요. 그것이 제주의 소리인 거죠. 갖가지 소리를 만났는데, '아 이런 소리를 제대로 녹음하면 좋겠다'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10년이 지나서야 시작하게 된 거죠.문제는 '앰비언스'가 자꾸 달라진다는 겁니다. 10년은 아주 긴 시간이잖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개발 탓에 변화 폭이 커지는 것을 피부로 느껴요. 녹음이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어떤 곳에서 아주 독특한 소리를 들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10년 만에 제주에서 소리를 담게 된 계기는 시각장애인 이동우 씨와 근육병을 앓고 있는 대준 씨가 제주 여행을 하는 다큐멘터리 녹음팀으로 함께하면서였어요. 열흘 정도 일정이었는데, '사려니숲'에 갔을 때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에서 비켜나 한 20분 정도 말없이 숲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가 10월 말 만추(晩秋)였어요. 갖가지 제주가 소리 형태로 거기에 있었어요.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드디어 2014년 3월 봄날부터 5월까지 제주를 오가면서 제주의 소리를 녹음해서 지난해 12월 초에 음반이 나왔어요.

▲ 김창훈 감독은 동시녹음팀 '라온엠케이투(raon mk2)'를 바탕으로 자연의 소리를 담는 소리풍경과 생태음향 전문 음반회사 '라온 레코드'를 만들었다. 지난해 첫 번째로, 제주의 소리를 담은 음반 '지구의 리듬: 제주 사운드스케이프(Rythme of the Earth: Jeju soundscape)'를 발매했다. ⓒ라온레코딩

제주를 녹음하다

'사려니숲'에서 녹음한 것 가운데 하나는 산에서 살고 있는 큰부리까마귀예요. 까마귀가 처음부터 산에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숲 설명해주는 분이 바닷가 쪽에 있던 까마귀들이 까치들에게 쫓겨 산으로 도망친 거라 하더라고요.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소리가 다르게 들렸어요. 까마귀 날갯짓하는 소리까지 자세히 녹음했어요. 장비를 고정하는데 까마귀가 계속 따라다니더라고요.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면 뭐 주는 거 아닌가 싶은지 가까이 다가오더라고요. 별일 없으면 마치 "야, 별거 없어"하면서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아주 낮게도 날고 해서 날갯짓 소리가 세세하게 녹음된 거죠.

새벽에 가서 6시간 머물렀었는데, 느낌은 한 시간 남짓인 것 같았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죠. 녹음에 몰두하는데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여섯 시간이 흐른 거예요. 녹음을 둘이서 했는데 숲에 들어오니 서로 대화도 없어졌습니다. 떨어져 앉아 '소리와 나만 있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 긴장감조차 턱 하니 놓고요. 낯선 곳에 가면 마치 어깨에 누가 손을 얹고 있는 듯한, 아주 미미하지만 분명하게 다가오는 긴장감이 있잖아요. 가령 호수에 파문이 일어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물결에 비친 내 모습을 한 번 또렷하게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것은 아마 '지구 리듬'을 들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한참 지나 그때 녹음했던 걸 들으면서 우리가 '지구 리듬' 한 조각을 들은 것 같다고 느꼈어요.

녹음에 비행기 소리가 들어갔어요. 앨범에 포함할지 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비행기 소리 없는 트랙을 사용했지만요. 사실 녹음을 길게 했거든요. 비행기 소리가 사라지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어요. 8분에서 10분 정도를 잘라내고 이어 붙였더니, 소리가 이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건 분명 '지구의 리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어 붙여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은 '지구 리듬'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앨범이 <지구의 리듬: 제주 사운드스케이프(Rythme of the Earth: Jeju soundscape)>입니다.

▲ 음반 '지구의 리듬: 제주 사운드스케이프(Rythme of the Earth: Jeju soundscape)' ⓒ라온레코딩

'지구의 리듬'을 듣다


음악하는 후배가 녹음을 듣더니 "형, 이거 이펙트(effect) 쓴 거 아니죠?" 하더라고요. 이쪽 용어로 '리버브(reverb)'라고 하는데, '울림'을 뜻해요. 그걸 사람이 인공으로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전문장비를 쓰면 아주 생생하게 들리거든요. 하지만 그 한계점을 인간은 구분하는 거겠죠. 인간에게는 기계와는 다른 감성과 감각이 있으니까요. 그런 소리를 인공으로 만들려면 너무 과도한 울림을 써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후배가 녹음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그걸 확인하려고 '후반 작업'을 한 건지를 되묻더라고요. 손대거나 가공하지 않은 자연 울림이었거든요.

제주 산정호수에서 녹음할 때는 마이크를 수면 가까이에 두었어요. 수면 반사음과 공명이 녹음되었어요. 잘 들어보면, 멀리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도 있고 새들이 목욕하는 소리도 있어요. 벌이 나는 소리도 들리고요. 그런 소리는 전면에 나와 있는 건 아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들려요. 사이사이 새들이 우는데, 그 공명은 이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울림을 만드는 겁니다.

녹음 기간은 5박 6일 정도였어요. 일반 엔지니어들이 했다면, 소화할 수 없는 일정입니다. 18곳에서 녹음했는데, 밤 12시에 숙소를 와서 새벽 3~4시에 다시 나가는 강행군이었어요. 공판장 수산물 새벽 경매를 녹음해야 했으니까요. 비가 오는 날도 미리 대비했어요. 비가 오면 빗소리를 담기 위해 미리 계획한 곳으로 달려갔죠. 앨범에 선별해서 열 가지만 담았어요. 어떤 소리를 담아야 제주를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지요.

녹음 기간은 봄이었어요. 5번 트랙이 '녹산로길'인데, 유채꽃이 좍 펼쳐져 있었거든요. 1번부터 5번 트랙까지는 사람이 내는 소리·자동차·비행기 소리가 포함되어 있고, 6번부터 10번까지는 자연의 소리만 담았어요. 전체 구성은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정리를 해봤어요. 처음은 '도두동'으로 시작하는데, 비행기 소리로 어딘가를 떠나왔다는 연상을 할 수 있게 되죠. 그다음이 '월정해변', 밤바다 파도소리가 있으니까 바닷가 숙소를 떠올릴 수 있겠죠. 사람이 만든 소리에서 점점 자연으로 다가가는 구성입니다. 마지막은 '알작지해변'인데, 1분 정도 몽돌해변 파도에 밀려 몽돌이 자르르 구르는 소리로 빠져나옵니다.

도움을 준 제주 현지분이 계셔요. 오전 반나절을 우리를 이끌고 안내를 해주셨는데, 3개월 동안 준비한 것보다 반나절 동안 들었던 그분 이야기가 더 생생했어요. 해녀 이야기, 용오름 이야기, 올레길 담벼락에서 놀던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책상머리 준비에 대해 후회막급이었어요.

▲ 제주 사려니숲을 녹음할 때 '소리와 나만 있는 경험'을 했어요. 마지막 긴장감조차 턱 하니 놓게 되더라고요. '지구 리듬' 한 조각을 들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앨범 제목이 '지구의 리듬(Rythme of the Earth)' 입니다. ⓒ김창훈

제주 곶자왈숲도 갔었는데, 숲이 강인하게 생겼어요. 조금 무서울 정도로요. 숲이 바닥의 돌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랄까. 곳곳이 화산이 만들어낸 숨골과 풍혈지대가 있어요. 산 입구에 안내하는 분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여기 동식물들이 놀라니까 조용히 하라'고 신신당부했어요. 우리에게도 '동식물들이 느끼는 거 같이 녹음을 해 달라'고 말하더라고요.

제주에서 녹음할 때 외지인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어려웠어요. 한림 공판장 녹음을 할 때 허락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는 분이 친인척 관계여서 아름아름 녹음했던 거죠. 더 큰 공판장도 있었지만, 접근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앨범에서 사람과 문화에 관련된 인문분야는 담지 못했어요. 해녀 '숨비 소리'는 바지선도 띄워야 하고, 장치가 많이 필요해 진행을 못 했어요. 새봄에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보존회도 있고 단체와 이해관계가 있는 부분이라 접근하기 어려웠어요.

건강한 '소리환경'이 필요하다

제주에 갈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가장 무서운 게 '인간의 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녹음을 했던 곳에 3개월 만에 다시 갔는데 사람이 짓밟아 풍광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제주에서 자연 생태가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은 '거문오름'인데, 일주일에 한 번 휴식도 있고 인원제한도 있어요. 관리를 안 하는 곳은 훼손이 심해요. '관덕정'이라는 곳은 제주 옛 시내 광장인데, 거기에서 도심을 녹음했어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좋더라고요. 서울 도심도 녹음해 봤는데, 아직까지 제주는 '건강한 소리환경(앰비언스)'을 가지고 있어요.

영화에서 동시녹음이 어려운 조건에서는 대사만 먼저 녹음하고 후반 녹음으로 그림에 맞춰요. 보통은 한 번도 끊이지 않게 아주 '롱 테이크(long take)'로 6분 넘게 녹음해요. 3분짜리를 반복해도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끊김 없는 소리를 담았어요. 2007년까지는 동시녹음이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7년도 안 됐는데, 요즘은 대사 빼고는 동시녹음이 거의 없어요. 소리 환경이 점점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인 거죠. 다채로운 촬영기법과 멀티카메라로 화면은 화려하지만 소리 확보가 어렵게 됐어요.

대구에서 20년을 살다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자고 일어나면 소음 때문에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 서울 왔을 때 비교하면 대구는 시골 수준이었어요. 녹음 작업을 할 때는 귀가 민감해져요. 백화점 같은 곳이나 대형마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래 머물지 못하는 거죠. 출장 갔을 때도 숙소의 냉장고 소리가 거슬려서 코드를 빼놓는 경우도 많아요. 한번은 일산에 있는 중앙차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로 소음이 심각하더라고요. 예전엔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음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물찻오름' 소리를 오랫동안 들어서인지 귀가 좀 건강해졌던 것 같아요. 다시 이런 도심에 오니까 더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 소리들이 점점 디지털로 가고 있잖아요. 저는 CD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CD보다 LP가 더 소리가 열려 있다고 느껴요. MP3 음원을 오래 들으면, 현기증이 난다는 사람도 있어요. 요즘 매트릭스(matrix)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아날로그(analogue)로 도망 다녀야 할 정도로 말이죠. '제주의 소리' 음반도 높은 사양 디지털 녹음기로 녹음을 한 거지만, LP보다 더 좋은 소리는 '릴 테이프(reel tape)' 소리예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요. 더 아날로그인 거죠. 예전에는 원포인트(one-point)라고 해서 마이크 딱 하나로 녹음을 해서 듣는데, 요즘은 마이크를 악기 마다도 두 개씩 놓고 녹음을 해서 그걸 믹싱하고 균형을 잡아 소리를 만들거든요. 아주 섬세하고 세세하게 들리지만, 과거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녹음했던 자연스러움을 못 이겨요.

▲ 다채로운 촬영기법과 멀티카메라로 화면은 화려해지고 있지만, 소리 환경이 점점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소리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난개발로부터 건강한 소리환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창훈

2010년을 기점으로 소리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서울 인근 경기도에 있는 산에 가면, 딱 이미지에 보이는 그런 소리만 들렸어요. 어쩌다가 저기 밑 도로에서 차량 소리가 잠깐잠깐 들리는 정도였죠. 보이는 것은 숲이지만, 소리로만 보면 지금은 숲이 아니에요. 멀리 아주 빠르게 달리는 차 소리, 공사 소리가 쿵쿵 계속 들려요. 녹음을 하는 입장에서는 엄청 곤란하죠.

EBS 지식채널에 미국 음향생태학자 고든 햄튼이 소개되었어요. '1평방인치의 고요'(2012년 4월 16일 자)라는 내용입니다. 20년 동안 소리를 찾아다녔는데, 15분 동안 어떤 소음도 들을 수 없는 곳이 1983년에는 21곳 발견되었지만, 2010년에는 단 3곳으로 줄었다는 내용입니다. 제주도 마찬가집니다. 이제는 완전 난개발 상태예요. 아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서 녹음을 해보면 공사 소음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음반에서 빠진 것도 있어요. 제주가 매력 있는 건 하루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주는 관광수입을 위해 사람들을 더 많이 오게 하려고 하잖아요. 도로도 더 많이 만들고 말이죠. 도로를 만들면 더 빨리 이동하겠지만, 그 사이사이에 있는 숲과 흙이 다 파괴되는 거죠. 이번 '제주의 소리' 음반은 2014년에 담았잖아요. 한 해 한 해가 달라지고 있어요. '건강한 소리환경'이 다 사라지기 전에 담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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