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라."
8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국민연금에 최근 제출했다. 국민연금은 지분 11.2%를 가진 삼성물산 최대주주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이 출자해 만든 곳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다.
국민연금이 이런 권고를 따른다면, 오는 17일 예정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주총회에서 합병 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삼성이 준비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는 어그러진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던 사례도 있어서,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 시점"
이에 앞서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글래스 루이스,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도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같은 이유로 합병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도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삼성그룹 총수일가 3세들의 지배권 승계와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임시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SK 건에선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
국민연금은 이번 주 안으로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자체적으로 정할지, 외부위원으로 구성되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의사 결정권을 넘길지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자체적으로 정하게 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달리,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결정한다면, 반대 입장이 나오리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지난 1년 여 동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위임된 안건은 3건이었다. 모두 반대 입장이 나왔다. 만약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자체적으로 정하기로 한다면, '형평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구조가 비슷한 다른 재벌 사건에서 국민연금이 취했던 입장 때문이다.
SK C&C와 SK(주)의 합병 관련 임시주주총회가 지난달 26일 열렸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논란과 비슷한 얼개다. 총수 지분이 높은 SK C&C에 유리하게끔 합병비율이 정해졌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안 역시 총수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에 유리하게끔 합병비율이 정해져서 논란이 된다. SK C&C와 SK(주)의 합병 안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자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국민연금 측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안건을 넘겼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합병비율이 총수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SK C&C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산정되어 있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경제개혁연대는 8일 논평에서 "삼성 합병 안건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SK 사례와의 형평을 고려하면 그래야 한다는 것.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이 SK 건과는 달리 삼성 건에 대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한다면, 이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반대 결정이 내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삼성 눈치 보지 않고 독립적인 결정을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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