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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 곧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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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음악방송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 곧 폭발한다"

[다시, 순위제 폐지를 말하다·下]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인터뷰

'등수' 없는 음악방송이 방영되던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음악방송 순위제 폐지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순위 선정의 불공정성과 특정 장르에 편중된 캐스팅 등 순위제가 낳은 폐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일부 전문가, 문화 시민단체 활동가뿐 아니라 서태지, 이승환 등 대형 팬덤이 나서 캠페인을 벌였다. 각 방송사는 항복 선언을 하고 순위제를 없앴다.

방송사들은 오래지 않아 다시금 슬그머니 순위제를 꺼내 들었다. '가요계 활성화'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부흥의 기미는 없이 사재기 논란, 팬덤 간 갈등 등 부작용만 늘고 있다는 게 지금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4년 전 음악방송 순위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다시 한 번 순위제 폐지를 논할 때가 왔다"고 했다. 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아이돌 아닌 가수는 음악방송 순위 제도 안에선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남 8학군이 아닌 학생이 명문대에 들어가기란 무척 힘든 것'과 같은 이치라는 얘기다. 왜곡된 가요계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팬들과 문화 운동 활동가들이 다시금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이뤄졌다. 편집자


▲이동연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형식적 민주주의가 갖춰졌다고 '공정 사회'인 건 아니다"

프레시안 : 최근 SBS <인기가요> 1위 후보 사전 투표 논란 이후 아이돌 팬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순위제 폐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총평해달라. (☞관련 기사 : 빅뱅-엑소 팬들의 고백 "음방 1위 필요 없어요")

이동연 : 2000년대 초 일어난 순위제 폐지 운동 이후 한동안은 지상파 방송에서 순위제가 사라졌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로 순위제가 다시 부활했다. 다양한 채점 방식을 통해 그간 문제가 됐었던 공정성 부분을 보강한다거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등 방송사에서는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다시 또 문제가 생겼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장돼있었던 문제가 터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 그럴까. 앞으로도 순위제의 공정성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일들이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순위 산정 방식의 공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순위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보나.

이동연 : 쉽게 생각해보자. 강남 8학군이나 외고 출신들이 아닌 인문계 고등학생이 명문대에 들어가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순위제 자체가 그러 식의 비슷한 구조적인 모순,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다. 음악만으로는 절대 승부를 볼 수 없다. 대형 기획사가 무대 구성이나 홍보 등 지원을 해주고, 팬덤을 동원해주는 아이돌 가수를 그런 뒷받침 없는 가수들이 이길 수 없다. 형식적으로 순위 제도에 아무리 공정성을 기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아이돌 아닌 가수들이 1위를 한다면 그건 대형 아이돌이 활동하지 않는 때나 가능하다.


올해 지상파 3사 음악방송 1위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거의 아이돌이 휩쓸었다. (2015년도 6월 넷째 주까지 <인기가요>에서 4회 이상 1위를 차지한 가수는 빅뱅, 엑소, 2회 이상은 샤이니, EXID였다. 포미닛, 신화, 빅스, 레드벨벳, 정용화, 인피니트H 등은 각각 한 번씩 1위를 차지했다. 아이돌이 아닌 1위 가수는 매드클라운, 나얼이었다. 편집자)


형식적 민주주의가 갖춰진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성된 게 아니라고,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고 비판하듯이, 순위 시스템 형식이 잘 갖춰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이라거나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프레시안 : 순위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방송사마다 집계 방식이 다 다르다. 음원 및 음반 점수를 기본으로 한 뒤, KBS <뮤직뱅크>는 방송출연점수를 따로 넣고, <인기가요> 같은 경우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 점수, 즉 동영상 조회 점수 비중을 높게 잡았다. 또 <인기가요>와 MBC <쇼! 음악중심>은 생방송 시청자 문자 투표 점수도 반영한다. 어떤 방식이 낫다고 보나.

이동연 : 우선, 순위 선정 방식이 서로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동영상 점수나, 방송출연 횟수가 비중 있게 반영되는 방식은 문제라고 본다. 거대 팬덤을 가진 가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 음악 순위 프로그램 로고. ⓒ프레시안(서어리)

"방송사, 음악방송 등수로 연예인 예능 출연 좌지우지"

프레시안 : 음악방송 순위제를 작동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순위제를 통해 가장 이익을 보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동연 : 방송사다. 많은 신문, 잡지가 각자 문학상을 열어 권위를 유지하듯, 방송사도 음악방송 순위제를 통해 권위를 획득한다. 권위만 가져가면 좋을 텐데, 방송사가 순위 제도를 통해 스스로 권력을 생산한다는 게 문제다.

음악방송이 방송사 내부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섭외가 관건인 방송사에 있어 음악방송은 연예인들의 등용문 구실을 한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 출연은 곧 다른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전제로 한다. 방송사는 이를테면 어떤 가수에게 음악 프로그램 '1위'라는 명성을 주고, 그 대신 다른 프로그램의 게스트에 넣는 식으로 섭외력을 키운다. 이런 식으로 순위제가 곧 방송사의 권력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음악방송 초창기 때 방송사의 권력 남용이 심했다. 가장 오래된 지상파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 <가요톱텐>인데, 순위가 임의로 조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특정 뮤지션을 다른 예능 방송에 출연시키기 위해 순위를 인위적으로 올렸다 내렸다 한다는 것이다.

반대 경우도 있다. 1등을 하는 인기 가수는 음악방송 시청률을 위해 무조건 방송에 나와야 했다. 만약 1위를 해도 다른 행사나 개인 사정 때문에 못 나와서 출연진 없이 1위를 발표하는 상황이 오면, 그 가수는 괘씸죄에 걸렸다. 그래서 해당 방송사의 다른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신예 아이돌 그룹을 빼고는 메이저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빅뱅, 엑소 같은 그룹의 경우 방송사 권력과 연예기획사의 '갑을관계'가 역전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이너 그룹, 작은 기획사에 소속된 신예 가수들은 음악방송 출연 한 번에 목숨을 건다. 일 년에 60~70팀이 데뷔하니까. 그래서 여전히 순위 프로그램은 출연을 매개로 한 방송사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출연이나 방송을 조건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아무리 해도 투명할 수가 없다. 순위 제도는 그 성격 자체도 문제지만, 방송사 안팎의 권력관계를 내재한 장치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기획사 입장에서는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럼에도 '보이콧'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동연 : '신경숙 사태'를 보자. 표절 의혹이 제기돼도 창비, 문학동네 같은 출판사는 작가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거다. 마찬가지다. 연예기획사들도 순위 프로그램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딱히 반기를 들지 않는다. 언젠가는 자신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순위제 부활 이후 논란이 잠잠했던 이유도, 공정해서라기보단,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나눠 먹기' 식으로 순위제가 운영돼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형 소속사, 메이저 아이돌 가수들이 서로 알아서 시기를 조정해서 컴백하는 식으로 순위제 시스템에 공모해왔다. 대형 아이돌 그룹은 방송 복귀하면 웬만하면 한 번이라도 1위를 한다. 그렇게 나눠 먹기의 평화로운 시절이 지속돼왔다. 그러니 지금처럼 엑소, 빅뱅 같은 메이저 아이돌 그룹이 한꺼번에 복귀할 경우 지금까지 당연히 해왔던 1위를 못 하게 되고, 그럼 팬들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순위제 '퇴출'만이 답인가. 개선의 여지는 없을까.

이동연 : 현재 지상파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이 운영하는 순위 프로그램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케이블 음악 전문 방송에서 지금의 순위제 프로그램을 대체하는 다른 포맷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출연진 없이 뮤직비디오만 내보내고 순위는 자체 산정 방식이 아닌 가온차트를 인용하는 방식.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순위제의 모순, 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프레시안 : 과거 '문화연대'를 중심으로 음악방송 순위제 폐지 운동이 있었고,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과정을 말해달라.

이동연 : 2001년 당시에도 순위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팬덤 내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특정 팬덤만 문제의식이 갖고 있던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중의 관점 자체가 '음악 프로는 공정하지 못한 프로그램'으로 굳어져있었다. 그래서 문화연대가 주축으로 나서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폐지 운동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그때 많은 팬덤이 이기심을 버리고 순위제 폐지를 위해 연대했다. 서태지 팬덤이 운동에 가장 활발하게 참여했고, 이승환, 지오디(GOD) 팬덤 일부도 규합했다. 거의 일 년 동안 팬들이 알아서 오프라인 서명운동도 벌이고 온라인 시위도 벌였다. 항의글이 봇물 터지듯 올라와 KBS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어떤 서태지 팬 한 명이 오프라인 서명을 혼자 수백 장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런 노력 덕분에 <뮤직뱅크>가 가장 먼저 폐지 선언을 했고, 나머지 프로그램도 순차적으로 순위를 없앴다.

프레시안 :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크게 제기될 때마다 방송사가 순위제를 폐지했지만, 결국 '침체된 가요계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이유로 부활시키기도 했다.

이동연 : 사실 순위제를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일일이 점수 계산하고, 팬들 민원도 듣고, 얼마나 귀찮겠나. 그러니 순위제를 부활시키는 것도 제작진들 입장에선 곤욕이었을 거다. 그러나 결국 시청률, 섭외 문제와 같은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으면서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거다.

'가요계 활성화'라는 건 둘러대는 얘기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순위제도를 통해 다시 권위를 획득한 음악방송이 과연 가요계를 부흥시키거나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켰나. 한두 번 빼면 아이돌 가수들이 1위를 휩쓸고, 툭하면 사재기 논란을 양산하는 지금 상황에서, 방송사가 가요계를 운운한다면 민망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시청률이라도 올랐나. 2%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인가. 특별히 대답할 게 없다. 순위제는 다시 한 번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프레시안 안종길 조합원

프레시안 : 과연 순위제를 다시 폐지할 수 있을까. 과거 운동이 성과를 거둔 데에는 팬덤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지금도 그때처럼 팬덤이 나서서 순위제 폐지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이동연 : 우선, 순위제가 부활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방송사에서 당분간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리라 본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아마 존폐를 논할 만한 엄청난 잡음이 날 거다.

팬들은 이미 순위제가 공정하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다만 순위 조작이 명백하게 밝혀진다거나 하는, 팬덤이 폭발할 만한 사건이나 계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지금처럼 아이돌 팬이 팬덤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상황 속에서도, 팬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떠나 성숙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팬클럽만으로는 운동이 유지되기 어렵다. 팬들과 더불어 시민문화운동 차원에서의 문제제기도 동반돼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순위제는 개별 프로그램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거다. 연말 시상식과도 연동된 문제다. 순위 프로그램과 연말 시상식 문제를 묶어서 반대 운동이 다시 전개될 필요가 있다.

[다시, 순위제 폐지를 말하다] 기획

상편 : 빅뱅-엑소 팬들의 고백 "음방 1위 필요 없어요"

중편 : "가수 욕 먹을까 봐 음원 총공에 반복 스밍, 힘들어요"

하편 : "음악방송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 곧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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