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05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던 채은하라고 합니다. 한때는 매일 같이 글을 올렸던 지면인데 오래간만에 인사를 드리려니 떨리네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프레시안은 언론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조합원 모집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도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 캠페인에 동참해 볼까 합니다. 전 직장을 응원하는 한때 기자라니, 아무래도 좀 어색하긴 하네요.
1.
2005년 프레시안에 입사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받게 될 월급의 액수를 말씀드린 날, 부모님은 저 몰래 이런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했다고 하셨죠.
"한 달 월급이 ○○○이라고? 쥐꼬리네 쥐꼬리."
"쥐꼬리는 길기라도 하지, 이건 짜리몽땅 토끼 꼬리야."
"토끼 꼬리는 굵기라도 하잖아. 쥐꼬리지!"
그때 저는 월급 액수가 아니라 처음 보는 세상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직후 프레시안의 황우석 보도가 시작되었거든요. 기자 명찰만 달았을 뿐 아직 눈은 뜨지 못한 햇병아리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집단에 포함되어 있는 기분은, 아마 다들 모르실 겁니다. (눼눼.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기자가 되기 전부터 준비된 언론인이 많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눼눼. 생각해보니 저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도 제법 프로다웠던 것 같네요.)
프레시안의 로고가 붙은 노트북만 들고 가도 어디선가 한대 맞을 것 같았던 강렬한 적개심의 몇 주가 지나, 결국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을 때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보수 일간지의 기자가 그랬습니다. "프레시안이야, 황우석 덕 본 거지. 원래는 뭐…" 지금 생각하면 웃으면서 "아, ○○일보도 친일파랑 박통 덕 봤죠?"라고 말해줄 것을 그랬죠. 하지만 그때는 화가 나면서도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또 한편으로는 '그런가? 이제 프레시안 잘나가는 건가?' 하는, 정말 병아리 같은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언론 시장이란 이상한 곳이어서, 좋은 상품을 내놓는다고 해서 매출의 증대로 바로 이어지지도 않고, 심지어는 '좋은 상품을 내놨다'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하기 쉬운 곳이었지요. 그리고 이후 한미FTA와 촛불시위, 삼성 비자금 보도 등을 거치며 이러한 사정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회사지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회사라니.
2.
그럼에도 프레시안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기자들을 흔들거나, 광고와 기사를 바꾸거나 한 일은 없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하고 재미도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미디어 기자를 맡아 YTN, KBS, MBC에서 기자가 해고되는 등 언론사에 상상 그 이상의 외압이 가해지고, 모두가 빠른 속도로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당연한 원칙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지요. 지금도 복직하지 못한 기자들과, 푹 절인 배추와 같은 언론사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바입니다. 복종하는 언론에 익숙해진 우리 모두에게도요.)
아직 언론협동조합의 구상이 구체화하기 전, '후원회원'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논의 중일 때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느 분이 그랬습니다. "난 어렵다고 손 벌리고 그런 건 좀 그렇다고 봐." 언제나 그렇듯이, 딱히 반박도 못했지만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았던 말이지요.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광고를 파는 언론사는 떳떳하고, 유료독자를 불러 모으는 언론사(특히 온라인 언론사)는 구차하다.
우리 모두가 수많은 이유를 떠올릴 수 있지요. 뉴스는 '공짜'라는 인식을 당연하게 만든 온라인 콘텐츠 시장의 문제, 포털 사이트 중심의 유통 문제, 이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는 광고의 문제…프레시안도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 낸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독자로부터의 고립 혹은 독자의 소외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지방에 내려와 살면서, '독자' 또한 하나의 정체성이라는 점을 자주 생각합니다. (지금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광고의 기준이 되는 클릭 수나 판매부수와는 다른, '읽는 사람'으로서의 나. 광고에 노출되는 숫자가 아닌, 좋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를 응원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독자. 기자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어려워지는 프레시안의 역설은, 바로 이러한 독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좋은 정보와 시각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자주 절감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프레시안이 쌓아두고 있는 콘텐츠가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재직 당시보다 더) 확신하게 되었지요. 당신이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해 3000자 정도의 정리된 정보와 시각을 갖길 원한다면, 프레시안은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한 것도 이 정도라면 돈을 주고 (광고 없이!!) 봐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언론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의 선택은 옳았다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자를 호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프레시안이 독자와 만나는 곳이 바로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난 공공의 영역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읽는 독자이신가요? 프레시안 조합원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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