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서울 종로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섰다. 전날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의 짐을 내려놓자고 말한 것이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 문제를 덮고 가자는 의미인 것 같아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같은 듯 다른…박근혜 '과거사', 아베 '3각 동맹' 강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관으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할머니는 "(한국과 일본이) 회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또 얼버무릴 것 같다"면서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면 이 늙은이들이 몇십 년 동안 이 자리에 앉아서 아우성을 쳐도 이거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8.15 전후해서 정상회담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회담도 좋지만 일본 정부가 과거사 깨끗이 청산하고 법적으로 우리의 명예 회복시켜줘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회담 때는 우리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대협은 기자회견문에서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채, "한미일 3국 협력 강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더없이 소중하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아태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외면과 군사적 재무장이며 미국을 등에 업은 군사적 동맹강화는 더욱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라고 맞받아쳤다.
정대협은 "아베 총리가 자신의 외조부이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를 들먹이며 국교정상화 50년을 자축하는 모습은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협하는 징후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대협은 전날 박 대통령의 축사에 대해서도 "어느 때보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부의 성급함과 무원칙한 외교정책이 결국에는 서로 다른 말만 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축사로 일단락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말하는 '화해와 상생'은 가해국 일본의 과거사 직시와 이에 따른 진실한 반성과 사죄 그리고 책임이행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가해자임에도 권리가 있는 것 같은 행태를 보였고, 박 대통령은 뭐가 급했는지 일본 정부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한국 정부가 굴욕적인 외교 행태를 보였다고 일갈했다.
윤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일제 침략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과 명예회복, 그리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정대협 법률전문위원회 전문위원인 이상희 변호사는 50년 전 이뤄진 한일협정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50년 전의 협정은 50년 동안 한일 관계 개선에 발목을 잡아왔다. 이제는 그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인간의 존엄에 기초한 외교와 이에 기초한 한일관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사 문제는 '내려놓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일 관계가)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교과서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라며 "냉각된 한일 관계에 물꼬를 튼 것은 좋은 일이나, 현재 정부의 행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 없이 '한-일 정상회담 성사'라는 목적에만 초조하게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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