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미 하원에서 '무역조정지원(TAA, Trade Adjustment Assistance)'법안이 반대 302 대 찬성 126의 압도적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따라서 이에 연계된 '무역촉진권한(TPA, Trade Promotion Authority)' 법안이 자동으로 폐기되었다. 미 언론은 이 TPA 법안의 부결을 오바마 대통령의 '굴욕' 또는 '대참패'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무역촉진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합의한 국제 무역협상은 의회에서 수정할 수 없고, 단순한 찬반 투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바마가 최근 2, 3년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의 올해 체결을 위해서는 이 권한이 절대로 필요하다.
도대체 지난 금요일 미 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정치적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며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결사적으로 TPA 통과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 노조와 환경 단체, 실업 증가를 우려하는 중소기업 등 TPP 반대 세력의 압력 때문인가? 오바마의 경제 정책 유산의 최우선 과제인 TPP의 올해 체결과 한국의 TPP 가입 전망은 어떠한가?
미국 정가의 복잡한 정치와 경제적 파워 게임에 얽힌 이 같은 문제를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이뤄졌다.
전희경: 지난 금요일 미 하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영철: 지난 금요일 미 하원은 얼마 전에 상원에서 넘어온 TPA관련 법안패키지를 원안대로 상정하지 않고 3개의 연계법안으로 수정하여 투표를 시행했습니다. 3개의 연계 법안은다음과 같습니다. 1) '무역조정지원' 법안, 2) '무역촉진권한'법안, 3) '무역규제강화' 법안입니다. 상원에서 넘어온 법안에는 1번과 2번 법안이 한 개의 법안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투표 결과는 1번 '무역조정지원' 법안이 126대 302로 부결되므로 TPA 법안 패키지 전체가 부결된 셈입니다. 따라서2번, 3번은 투표할 필요가 없어 자동 폐기되었습니다.
전희경: '무역조정(TAA)' 법안은 국제무역협정의 체결로 해고를 당하거나 임금손실을 본 노동자를 지원하는 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간 민주당은 이 법안을 적극 지지해 왔는데 이번에 이 법안 부결에 144명의 민주당 의원이 가담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영철: 의회 투표 상황을 생중계하는 국회전용 C-SPAN 채널을 보고 있던 저도 너무 놀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민주당이 이 법안을 지지해온 이유는 노동계는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무역조정지원 제도는 오는9월 말에 종료됩니다. 따라서그 이전에 갱신되어야만 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난 금요일 하원의 민주당 의원 절대다수(144명)가 이 법안을 부결시킨 것입니다. 그 정치적 이유는 '무역촉진권한'을 자동 폐기시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전희경: 미 언론은 이 법안의 부결을 '오바마의 굴욕'이라고 부르고 그 부결 이유를 하원의 민주당 원내 총무 낸시 펠로시의'반란' 때문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박영철: 펠로시 민주당 원내 총무는 투표 직전에 행한 연설에서 “자신은 '무역조정지원' 법안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 연설이 주저하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반대 투표하도록 했을 가능성은 큽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TP)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진보진영과 AFL-CFO등 노동계, 그리고 환경단체의 압력이 지난번NAFTA 경우보다 훨씬 더 강했다고 봅니다.
전희경: TPP에 대한 미 국민의 '민심'은 어떤가요?
박영철: 오바마 행정부는 TPP에 대한 일반 국민의 지원도 받지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시행된 <월스트리저널(WSJ)>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겨우 37%가 자유무역협정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02년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 임기 중에 체결한 NAFTA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9년의 여론 조사에서는 겨우 18%가 NAFTA 협정이 미국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미 국민의 다수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정책 유산을 남기려 TPP 체결을 너무 조급히 밀어붙인다는 의혹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희경: 최근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TPP 추진 전략에 큰 변화가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TPP가 경제 성장이나 고용 창출 효과를 강조하는 경제적 홍보의 한계를 느끼고 이제는 “TPP는 중국과의 제로섬(Zero-Sum)게임이다”라는 새로운 안보 우선의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도 그렇게 보시나요?
박영철: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최근 절대다수의 민주당의원, 노조 및 환경 보호 운동가, 그리고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상당수의 공화당 의원이 TPP에 집요하게 반대하고 있는 현실을 참조하여, 오바마 행정부가 TPP 홍보 전략에 '안보'라는 항목을 전보다 훨씬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암묵적으로 인정해 온 TPP는 미국과 중국을 위한 상생전략이 아니라, 이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견지에서 갈수록 확장되는 중국의 군사 및 경제적 패권을 견제하고 억제하기위한 수단으로 TPP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미 정가는 오바마 행정부가 TPP 체결을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외교 정책과 깊숙이 연계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TPP 체결은 순수한 경제 영역을 넘어 군사 및 정치,외교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TPP 참여 여부도 이 새로운 변수에 크게 좌우될 것이 확실합니다.
전희경: TPP 협정의 의미와 중요성이 더 확장되었군요.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금요일 하원에서 TPP 체결에 절대 필요한 대통령의 '무역촉진권한' 법안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TPP의 올해 타결은 물 건너가는가요?
박영철: 그건 아닙니다. 지난 금요일 하원에서 상징적인 투표가 있었다고 말씀 드렸지요? 하원은 '무역촉진권한' 법안에 대해 법적 효력은 없고 상징적 의미만 있는 투표를 했습니다. 표결과는 찬성이 절반을 겨우 넘는 219표였으며, 그 중 민주당에서 28 찬성표가 나왔습니다. 상징적인 의미가 클 수도 있는 투표 결과입니다.
전희경: 해석이 각각일 수 있는 묘한 투표 결과가 나왔군요. 진영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하겠군요?
박영철: 맞습니다. 투표가 끝난 직후 백악관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오늘 하원에서 무역촉진권한 법안이 부결된 것은 '절차적 차질'일 뿐이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무역촉진법안이 219 찬성표를 얻은 것은 고무적이다."
반대 진영에서는 일단 무역조정지원 법안을 부결하여 TPA법안을 폐기해 매우 고무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번 주에TAA 법안의 재투표가 시행되더라도 다시 부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이번 주 하원에서 새로운 TAA 법안이 상정되어 투표에 부칠 가능성이 있나요?
박영철: 한 때 그 같은 가능성을 타진했던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원내 지도부가 이번 주에 상정될 경우 법안 통과 전망이 거의 0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미 언론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그렇다면 오바마는 언제 '환태평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의 필수조건인 '무역촉진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을까요?
박영철: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주요 변수를 주시해야 합니다.
변수 (1): 공화당이 왜 그리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제 1년 반 남은 오바마 행정부 임기 중에 TPP 체결을 원하는가?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이 당선될 확률은 얼마라고 보는가?
변수 (2): 오늘 현재 오바마는 '친정' 민주당의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여인의 도전을 받고 있다. 즉 민주당의 진보진영을 이끄는 엘리자베쓰 워렌과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과연 오바마가 언제 이 두 여인의 협조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까?
변수 (3): 노조 단체와 민주당의 진보진영이 오는 9월 말에 종료되는 '무역조정지원'을 어떻게 갱신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그 혜택을 포기할 수 있을까?
전희경: 이 세 변수를 참조하는 경우 하원의 '무역촉진권한' 법안의 재상정과 통과는 언제라고 보시는지요?
박영철: 현시점에서 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개월에 걸친 이해 관계자들 간의 집요한 로비와 전략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의 국회의장 존뵈너는 오늘 6월 말이나 여름 휴가 이후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합니다.
전희경: 예측이 매우 어렵겠습니다. 끝으로 <워싱턴 포스트>의 일본 특파원 애나 피필드에 의하면 지난 금요일 미 하원이TPA 법안을 부결시킴으로써 미국과 더불어 TPP 협정의 최대 경제국인 일본에 '타격'을 주고 특히 아베 총리의 TPP 추진 동력에 금이 가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생각은 어떤지요?
박영철: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좀 차분히 지켜봐야 합니다.
전희경: 미 하원의 TPA 부결은 한국에 '호재'일까요?
박영철: 저는 영향이 없다고 봅니다. 만약 TPP 체결이 1~2년 미루어져 한국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다 해도 한국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을 띄우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TPP 참여 여부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벌써 한미 FTA도 가지고 있습니다.
(19일 추가된 내용입니다)
전희경: 18일 하원에서 TAA 법안 없이 별도 법안으로 상정된 TPA가 218대 208표로 통과되었습니다. 화요일에 처리하려던 것을 이틀 미룬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요?
박영철: 오바마와 공화당 원내 지도부의 전격적인 상정 도박이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 금요일과는 반대로 미 민주당의 진보진영과 노조, 환경운동 단체의 참패라 볼 수 있습니다. 하원의 전투는 오바마의 승리로 끝났지만 상원의 전투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상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확실하지만, 일단 오늘 하원의 TPA 통과는 TPP의 올해 최종 타결의 청신호입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원광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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