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초반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은 이명박 후보 본인이 '내가 BBK를 세웠다'고 말한 광운대 동영상을 언급하며 "진실이 밝혀졌으니 사퇴하라"고 공세를 펼쳤지만 정작 이 후보는 "저는 준비된 대통령이다. 국민 여러분들은 알 것이다"며 피해나갔다.
경제 분야에 국한된 이날 토론에서 거의 모든 후보들은 '대기업도 육성하고 중소기업도 발전시키고', '성장율도 높이고 양극화도 해소하겠다', '세금도 줄이고 국민연금은 늘리겠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나 이회창 후보는 친기업적 기조를 강조했고 문국현 후보나 권영길 후보는 '재벌 특권 혁파'에도 무게를 실었다. 정동영 후보는 중간적 성향을 드러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역시 지난 두 차례 토론과 마찬가지로 수박 겉핥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후보들은 명백히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주장을 펼쳤지만 발언-반론-재반론 시간 제한이 엄격해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은 이어지지 못했다.
"도둑이 자기 고발한 시민더러 '네거티브하냐'는 격"
추첨에 의해 맨 먼저 기조발언에 나선 이명박 후보는 "오늘 동영상이 나왔는데 나는 30억 원을 내라는 공갈범의 공갈을 받았지만 즉각 경찰에 신고했다"고 선수를 쳤다. 이 후보는 "나는 많은 네거티브를 받았지만 국민 여러분들은 진실을 알 것이다"면서 "노 대통령이 (BBK) 재조사를 지시했는데 드디어 투표를 3일 앞두고 공작이 나오는 모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후보는 이후로 이 문제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후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후보들은 "사퇴하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동영 후보는 이 후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명박 후보님 광운대에 가셨습니까", "BBK를 설립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라고 연이어 질문을 던진 후 "이 자리에 앉아 계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문국현 후보도 "이명박 후보를 믿었던 국민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토론회를 마치고 나머지 다섯 후보가 별도로 대책을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제시된 토론 주제에 한해 이야기 해달라. 위법에 이르는 발언이 있으면 발언 도중에라도 중지를 요구하겠다"는 사회자의 엄중한 '경고' 탓인지 이에 대한 공방은 이어지지 않고 도덕성 논란이 단발적으로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다만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향해 "2002년 김대업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 후보가 이제 네거티브에 동참하고 있다.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이회창 후보는 "기가 막힌 일이다"고 쏘아붙였다.
이회창 후보는 " 온갖 탈법과 편법, 후보 자신이 한 말을 안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서 "도둑이 자기를 고발한 시민에 대해서 '왜 네거티브했냐'는 것하고 뭐가 다르냐"고 맹공을 가했다.
또 문국현 후보는 "(회계부정으로 잘 알려진) 엔론의 레이 전 회장이 거짓말을 계속하다가 160년 형을 받았는데 이명박 후보를 보면 꼭 레이 회장이 생각난다"고 꼬집었다.
"삼면이 바다고 다도해도 있는데 대운하 가서 유람선 타겠냐"
각론에 들어가선 물고 물리는 공방도 이어졌다. 정동영 후보가 "참여정부 들어서 경제가 죽었냐. 다만 서민경제가 좀 힘들 뿐이다"고 주장하자 다른 후보들은 입을 모아 "뭘 몰라서 하는 말이냐"고 공격을 가했다.
특히 문국현 후보는 "아파트 원가 공개 반대해서 집값을 폭등시킨 분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면서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다 안 된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문국현 후보가 현행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맹공을 가하자 권영길 후보는 "참 좋은 말씀이다"면서도 "그런데 창조한국당의 김영춘 의원도 그 법을 만드는데 앞장서지 않았냐"고 꼬집었다.
문 후보의 '일자리 500만개, 경제성장률 8% 공약'에 대해선 정동영 후보 역시 "그게 말이 좋지만 가능하겠냐"며 회의적 눈길을 보냈다.
이명박 후보가 먼저 대운하 공약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각 후보들은 '시대착오적이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특히 이인제 후보는 "처음엔 물류 때문이라더니 이제는 관광이 80%라는데 삼면이 바다고 다도해도 있는 나라에서 거기에 왜 배를 타러 가냐"고 공세를 펼쳤다.
정동영 후보는 권영길 후보를 향해 "경제에 있어 이념의 역사는 끝났다"며 자신의 '실용적 면모'를 부각시키려 애쓰기도 했다.
이념적으로 가장 상반된 이명박 후보와 권영길 후보 사이에도 공방이 벌어졌다. 이 후보가 권 후보를 향해 "민주노총의 과도한 파업도 좀 자제시켜 달라"고 말하자 권 후보는 "이 후보 사돈 기업인 한국타이어에서 산업재해로 열 다섯명이 죽었는데 그 사돈기업 노사관계나 신경 쓰시라"고 맞받아 쳤다.
이 시간만 넘기고 보자? 이날 토론회는 시간 제약, 재반론 기회와 사회자의 전문성 부족 등으로 인해 각 후보들의 교묘한 '사실 왜곡', '동문서답'이 종종 나타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대운하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수세에 몰린 이명박 후보는 "유럽에 2010 계획이라고 있는데 거기 보면 21세기 친환경을 위해서도 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 후보가 항상 운하 성공사례로 꼽는 독일의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 '아겐다 2010'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슈뢰더 정부 시절 수립돼 메르켈 정부가 계승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보장 축소 등을 담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이긴 하지만 대운하 등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또한 문국현 후보는 권영길 후보로부터 '사람중심경제라는 말은 좋은데 문 후보가 KT(한국통신) 사외이사 재직 당시 그 회사는 2만 5000명을 강제퇴직 시켰고 분식회계도 했다. 게다가 당시 KT사장은 지금 창조한국당 공동 대표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잘 몰라서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내가 KT사외이사로 들어간 것은 그 이후"라고 답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2002년 8월부터 KT사외이사에 임명됐는데 KT의 7차례 걸친 구조조정 가운데 5500명 해직은 2003년 10월에 벌어졌다. 이 밖에 이회창 후보는 '대기업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사람이 정경유착을 혁파할 수 있냐'는 지적에 "권영길 후보도 민주노총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냐"면서 "적은 돈 받으면 도둑이고 많은 돈 받으면 도둑이 아니냐"고 받아쳤다. 하지만 민주노총에서 권영길 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증여한 적은 없다. |
다들 "내가 대통령 되면 다 잘 된다"
한편 토론 내내 장밋빛 전망들이 이어져 각 후보 간의 차별점이 제대로 노출되기가 힘들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선 이명박 후보도 손쉬운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기업들을 향해 "생산성과 임금은 비례한다"고 일갈하며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고 성장을 논의하는 대목에선 권영길 후보도 "진보적 경제성장"을 언급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모든 후보들은 "국민연금에 문제가 많다"며 하나 같이 "덜 내고 더 받게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문국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는 연금 모델 설계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명박 후보는 운영의 민영화라는 시장주의적 대안을 제출해 차별성을 보였다.
또한 문국현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기업 경영의 경험'을 강조하며 경제전문가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이 후보는 문 후보를 향해 "유한킴벌리는 미국 클라크 사에 로열티를 지급한 곳 아니냐"고 또 다른 차별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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