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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땅 연꽃 되니 죽산땅 꽃술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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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땅 연꽃 되니 죽산땅 꽃술 되다

7월 폐사지학교, 안성의 폐사지들

폐사지학교(교장 이지누. 폐사지 전문가·전 <불교신문> 논설위원)의 7월, 열여섯 번째 강의는 경기도 안성 지역입니다. 경기도 안성 일대는 불교문화가 꽃으로 핀 곳이며, 죽산 지역은 그 중 꽃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통일신라시대에 화차사(華次寺)로 창건되고, 고려 개국과 함께 중창되어 태조 왕건의 진영을 모신 진전사원(眞殿寺院)이었다는 봉업사(奉業寺)를 중심으로 반경 2km내에 있는 불교유적만 하더라도 봉업사지의 당간지주와 5층석탑 그리고 매산리 석불입상과 그 앞의 5층석탑, 죽산리 석불입상과 3층석탑, 죽산리 석불입상 앞의 연화대좌와 석탑의 부재, 장명사지(長明寺址) 석조연화대좌, 장원리 3층석탑 그리고 두현리에는 비록 그 솜씨가 빼어나진 않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마애삼존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범위를 조금 넓혀보면 죽산면에는 칠현산 기슭에 봉업사지의 석불입상과 장원리에서 나온 석불좌상을 모셔 놓았으며, 혜소국사(慧昭國師) 정현(972~1054)이 주석했던 칠장사(七長寺)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기솔리의 쌍미륵, 흔히 궁예미륵이라고 불리는 국사암의 미륵삼존, 또 일죽면 신여리 선유동 마애불상군까지 덧보탤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대덕면 진현리의 굴암사(窟巖寺) 마애여래좌상과 마애약사여래좌상, 대농리에는 방갓을 쓰고 있는 미륵, 죽리 외평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석조여래입상, 금광면에는 문무왕 20년인 680년에 석선(奭善)이 창건한 석남사(石南寺)와 마애여래좌상은 물론 안성 땅 곳곳에 흩어져 잇는 미륵과 청룡사(靑龍寺)까지 더하면 안성 일대의 불교문화는 비록 세련되어 우아하거나 화려한 자태는 지니지 못했을지언정 통일신라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법등을 꺼트리지 않은 채 이어진 아름다운 곳입니다. 성하(盛夏)의 7월 18일(토), 당일로 열리는 안성 일대 폐사지 투어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봉업사지 당간지주와 5층석탑 ⓒ이지누
폐사지(廢寺址)는 본디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향화가 끊어지고 독경소리가 사라진 곳을 말합니다. 전각들은 허물어졌으며,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 터에 박힌 주춧돌과 석조유물이 대부분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은 불탔거나 삭아버렸으며, 쇠로 만든 것들은 불에 녹았거나 박물관으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폐사지는 천 년 전의 주춧돌을 차지하고 앉아 선정에 드는 독특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주춧돌 하나하나가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 되는 곳, 그 작은 선방에서 스스로를 꿰뚫어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얻는 길, 폐사지로 가는 길입니다. 아울러 폐사지 답사는 불교 인문학의 정수입니다. 미술사로 다다를 수 없고, 사상사로서 모두 헤아릴 수 없어 둘을 아울러야만 하는 곳입니다.

이지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7월 답사지에 대해 들어봅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봉업사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 189호이며 1966년 탑 주변에 대한 경지작업 중 발견된 ‘향완香垸’과 보물 576호로 지정된 ‘정우5년명반자(貞祐五年銘飯子)’에 새겨진 봉업사라는 명문에 의해 그 위치와 사명을 알게 되었다. 그 후, 1997~1998년, 2000~2001년 그리고 2004년에 걸쳐 경기도박물관에 의해 세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현재 남아있는 5층석탑 뒤 200여m 북서쪽 방향에 진전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유구를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절터 바로 앞으로 안성으로부터 이어지는 38번 국도가 지나고 있으며 중부고속도로 일죽 나들목으로부터 38번 국도를 따라 안성 방면으로 3k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안성에서 오자면 두원공대와 죽산면소를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길가에 석탑과 당간지주가 보이며 일죽 나들목에서는 용인방면의 17번 국도와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죽산면소로 들어가는 삼거리상의 오른쪽에 있다.

드넓었을 사역은 가늠할 수조차 없이 농경지로 변해버리고 손바닥만큼 남은 절터에는 보물 제435호인 5층석탑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인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존재감이 뚜렷한 5층석탑은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이지만 아직 신라의 모습을 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체적으로 훤칠하여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고려석탑들과는 달리 둔중한 느낌을 풍기는 것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둔중하며 투박한 모습을 한 고려의 석탑은 중원 미륵리 절터에도 있으므로 서로 견주어 봐도 좋을 것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기단부와 일층 몸돌이 유난히 길어서 불안정해 보이기도 하나 홀쭉하게 보이는 여느 고려의 석탑들과는 달리 안정감이 뛰어나다. 일층 몸돌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감실이 파져 있으며 주위로는 감실을 덮었던 철판이나 유리를 고정했던 못을 박았던 구멍들이 반원형으로 뚫어져 있다.

느티나무 곁에 서 있는 당간지주는 화려한 장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담박하다. 이미 쓰러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전하는데 아무래도 그 위치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탑의 위치가 옮겨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볼 수도 있겠지만 1968년 복원공사 당시 4층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 되었다는 것은 탑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탑의 위치를 고정해 놓고 보면 당간지주의 위치가 가람 규모에 비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다른 위치에서 옮겨져 다시 세운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인 죽주산성과 태평미륵이라고 불리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매산리 석불입상과 완형을 이루지 못한 5층석탑은 삼거리에서 용인 방향으로 100m가량 진행하면 왼쪽으로 미륵당 마을이 보이며, 길에서도 보호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석불입상은 높이 3.9m에 이르는 거대한 돌기둥을 세워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논산의 개태사 석불과 견주어 봐도 좋을 일이지만 이러한 석주형(石柱形)의 석불들 중 대표적인 것들인 보물 제96호인 중원 미륵리 절터의 석불입상 그리고 보물 제508호인 예산 삽교리 보살입상이 있으며 가까이에는 기솔리의 쌍미륵이 있다.

▲국사암 궁예미륵 ⓒ이지누

마을 사람들이 미륵이라고 부르는 미륵당의 석불입상은 이마에서부터 길쭉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의 끝에 다시 사각형의 방갓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온화하지만 갓 해가 솟아오른 이른 새벽이 아니면 해가 비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상호 전체에서 온화한 미소를 느낄 수 있으며 그윽한 표정은 돋보이나 가슴께에 올린 손의 모습이 투박하기 그지없다. 외장한 오른손은 검지를 곧게 펴서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복부를 감싸며 내장한 왼손의 검지 또한 곧게 펴서 옆을 가리키고 있는데 오동통한 입체감이 뛰어나다.

그러나 조각은 유려하지 못하며 성긴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목의 삼도를 기준으로 그 위의 조각은 정교하며 세련미를 풍기나 그 아래로는 위와 비교해 현저히 솜씨가 떨어지며 어깨 또한 상호에 비해 좁아지는 고려 석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타구니의 표현 또한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며, 또 다른 진전이 있었던 논산 개태사의 우협시보살의 그것과 유사함을 풍긴다. 석불입상 앞의 5층석탑은 완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1966년 탑 안에서 ‘영태2년명탑지’가 나와 조성한 사람과 중수한 인물들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산성은 미륵당이 있는 뒷산에 있으면 정상부에 가깝게 자동차로 오를 수 있다. 미륵당 앞에서 큰 도로를 포기하고 농로와도 같은 길을 따라 오던 방향으로 50m 가량 되짚어 가면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우회전해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8호인 죽산리 3층석탑 그리고 석탑 뒤 산기슭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7호인 죽산리 석불입상과 연화대좌 그리고 부서진 석탑의 잔해와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모두 봉업사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며, 봉업사지의 위치를 파악하고 난 다음에 둘러보면 한 눈에 봉업사지를 감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지에 이렇듯 다수의 사찰이 존재한다는 것은 각 사찰들이 개별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봉업사와의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봉업사지 ⓒ이지누

2015년 7월 폐사지학교 제16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7월 18일 토요일>

07:00 서울 출발(정시에 출발합니다.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폐사지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일죽 매산리 석불입상(태평미륵) 도착
-안성 죽산리 3층석탑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
-봉업사지 도착
-칠장사 도착
-점심식사 겸 뒤풀이
-선유동 마애불상군
-기솔리 쌍미륵
-국사암 석조여래입상(궁예미륵)
-두현리 삼존불상
18:30 서울 향발

▲폐사지학교 제16강 답사로 ⓒ폐사지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등산복·배낭·등산화, 모자, 선글라스,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초콜릿, 과일류 등), 자외선차단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폐사지학교 제16강 참가비는 10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2회 식사비 겸 뒤풀이,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전화 문의(050-5609-5609)는 월∼금요일 09:00∼18:00시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공휴일 제외).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울러 폐사지학교 카페(http://cafe.naver.com/pyesajischool)에도 많이 놀러 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폐사지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태평미륵 ⓒ이지누

이지누 교장선생님은 1980년대 후반, 구산선문 답사를 시작으로 불교를 익혔으며 폐사지와 처음 만났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분단 상황과 사회 현실에 대하여, 중반부터는 민속과 휴전선 그리고 한강에 대하여 작업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초반까지는 계간지인 <디새집>을 창간하여 편집인으로 있었으며,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나라 안의 폐사지와 마애불에 대한 작업을,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한강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사 작업을 했습니다. 2009년부터는 동아시아의 불교문화와 일본의 마애불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2012년부터 폐사지 답사기를 출간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충청도의 폐사지 답사기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그리고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를 출간했으며, 다른 지역들도 바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지누 교장선생님은 <폐사지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전각은 무너지고 법등조차 꺼진 폐사지(廢寺址)는 쓸쓸하다. 그러나 쓸쓸함이 적요(寂寥)의 아름다움을 덮을 수 없다. 더러 푸른 기운 가시지 않은 새벽, 폐사지를 향해 걷곤 했다. 아직 바람조차 깨어나지 않은 시간, 고요한 골짜기의 계곡물은 미동도 없이 흘렀다. 홀로 말을 그친 채 걷다가 숨이라도 고르려 잠시 멈추면 적요의 무게가 엄습하듯 들이닥치곤 했다. 그때마다 아름다움에 몸을 떨었다. 엉겁결에 맞닥뜨린 그 순간마다 오히려 마음이 환하게 열려 황홀한 법열(法悅)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폐허일지언정 이른 새벽이면 뭇 새들의 지저귐이 독경소리를 대신하고, 철따라 피어나는 온갖 방초(芳草)와 들꽃들이 자연스레 헌화공양을 올리는 곳. 더러 거친 비바람이 부처가 앉았던 대좌에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곤두박질치던 눈보라는 석탑 추녀 끝에 고드름으로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곳에는 오직 자연의 섭리와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사(禪師)의 이야기,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석조유물 몇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또 아름답다. 텅 비어 있어 다른 무엇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화선지 같으니까 말이다.

꽃잎 한 장 떨어져 내리는 깊이가 끝이 없는 봄날, 주춧돌 위에 앉아 눈을 감으면 그곳이 곧 선방이다. 반드시 가부좌를 하지 않아도 좋다. 모든 것이 자유롭되 말을 그치고 눈을 감으면 그곳이 바로 열락(悅樂)의 선방(禪房)이다. 폐허로부터 받는 뜻밖의 힐링,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얻는 길, 폐사지로 가는 길은 파수공행(把手共行)으로 더욱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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