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와 지금의 메르스 정국을 놓고 보면, 절묘하게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지난 4일, 프레시안은 소송을 각오하고 '메르스 병원' 6곳의 실명을 최초로 공개했다. 한 마디로 '질렀다'. 김선종 연구원과 문화방송(MBC)
그래도 외로웠다. 정부가 마비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알 권리를 위해 많은 언론이 프레시안과 함께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정부가 5일과 7일 두 차례 공식 발표를 하기 전까지 다수 언론이 침묵을 지켰다. 단 한 곳,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만 빼고. 뉴스타파는 지난 5일 '메르스 감염 지도' 기사를 통해 메르스 병원 6곳의 정보를 공개했다.
프레시안과 함께 병원 실명을 공개한 언론이 하필 뉴스타파라는 점도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뉴스타파의 대표 얼굴이 된 최승호 앵커, 그는 황우석 사태 당시엔 MBC <PD수첩>
뉴스타파 메르스 첫 보도가 나가기 하루 전인 4일,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스튜디오에서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과 최 앵커가 만났다. 기시감을 느낀 건 전홍기혜 편집국장만이 아닌지, 최 앵커 또한 10년 전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때는 2005년 12월 4일 오후 세 시경. 당시 최 앵커는 12월 6일 자 <PD수첩>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김 연구원을 압박한 건 맞지만, 그와 별개로 논문이 가짜라는 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국 방송이 막혔다. 국민 정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무기한 방송 중단'이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지요. 방송을 하면 그 논문이 가짜인 게 밝혀지는데 왜 못 하게 하는지…. 그날 <뉴스데스크>에서 사과 방송을 하는 걸 보면서 한학수 PD랑 밤새도록 술 마셨어요."
다음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릴 즈음, '줄기세포 논문 가짜 의혹' 보도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고를 친 곳이 어딘가 하고 보니, 프레시안이었다. <PD수첩>
"'방송이 중단됐으니 이렇게 진실이 묻히는 건가' 하고 우리 제작진들은 상당히 암울해했어요. 그런데 프레시안 보도를 보면서 다시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그 보도가 나간 뒤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죠. 그래서 누군가는 그랬다고 해요. '고래들이 싸움을 끝낸 뒤 새우가 칼 들고 나섰다'고."
파문이 크게 일자 다른 언론들도 앞다퉈 황우석 논문의 진위 여부를 캐기 시작했다. 의혹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MBC 사장이 프레시안에 엄청난 영광을 줬다고 봐요. 혹시 사장이 프레시안을 굉장히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웃음)
지금이야 다 밝혀진 상태이니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땐 보도 하나, 방송 한 번 하는 게 살 떨리도록 무서운 일이었다.
"가짜 논문 의혹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워낙 황 교수를 애국자로 떠받드는 분위기라, 과연 방송을 했을 때 <PD수첩>
다행히 나중에 방송이 다시 나갔지만, 대중을 떼로 등진 대가는 혹독했다.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못 이긴 광고주들이
"권력하고 싸운 건 여러 번 경험이 있지만, 대중과 싸운 건 황우석 사태가 처음이었어요. 'PD수첩 폐지' 보도자료가 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격을 당했죠. 대형방송도 못 견딜 만큼 힘들었는데, 프레시안처럼 작은 회사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MBC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안쓰러웠죠. 그런데도 죽지 않고 끝까지 버텼잖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거대 권력뿐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도 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이에요."
황우석 사태를 포함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하던 최 앵커는 결국 2012년 장기 파업 이후 MBC를 떠났다. 엄밀히 말하면 쫓겨났다. 새 둥지를 찾았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는 이곳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MBC 때와 달리 지금은 피디부터 작가까지 혼자 1인 다역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경영진 눈치를 보지 않고 뭐든 취재할 수 있다. 취재한 내용은 고스란히 방송에 반영된다. '차 떼고 포 떼는' 방송이 아니라는 데서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차 안 떼고 포 안 떼는' 방송은 정직한 뉴스를 갈구하던 언론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후원 회원 3만5000명. 뉴스타파는 광고 하나 없이 오롯이 후원금만으로 뉴스를 제작한다.
조세피난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세월호 사고 보도 등을 통해 세운 뉴스타파의 위상은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무기력한 공영방송 또한 뉴스타파의 입지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준공영방송' MBC에서 쫓겨 나왔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중이 언론을, 정부를 믿지 못하면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언론 구성원이 두 눈 부릅뜨고 스스로를 감시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MBC, KBS 구성원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온 것 같아요. 그럴수록, 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가 칼을 들 듯이 '새우 언론들'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새우처럼 작은 언론을 독자들이 많이 도와준다면, 새우 언론이 공영언론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새우가 살기 위해선, 작고 여린 이 생물이 살아남을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새우 언론이 고사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언론 지형은 프레시안이나 뉴스타파 같은 대안언론들이 먹고 살기 힘든 방향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우리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존재해야 하는 언론이지 않습니까. 광고 많다는 이유로 보기 싫다고 거부한다면, 프레시안이라는 좋은 언론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기사 공유와 후원이 새우 언론을 좀 더 자라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조합원으로서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이번 메르스 기사들을 보니, 황우석 사태 때 매섭게 기사를 쏟아냈던 과거의 프레시안이 생각납니다. 무척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고, 앞으로도 이렇게 존재감 있는 기사가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언론협동조합으로서 발전 또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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