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대사들은 모두 "인물 중심 선거를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눈에는 위장전입, 탈세, 주가조작, 파업 엄단이 주요 이슈인 '한국적 현실'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인 모양이다.
이들과 간담회를 가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그래도 당신네가 우리랑 제일 비슷하다'는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공약에 대해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망상가들의 망상'이라고 집중 공격이 심해 '내가 혹시 몽상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 정도다"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핀란드 대사 "인물중심정당이란 것도 있구나"
7일 오전 권영길 후보는 라르사 바리외 스웨덴 대사, 킴 데이비르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 디드릭 톤셋 노르웨이 대사와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민노당의 정책과 북구 3개국의 정책을 비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바리외 스웨덴 대사와 톤셋 노르웨이 대사는 "한국의 선거가 정책적 대립보다는 개인 중심이다"면서 "북유럽에서는 정당정책이 선거의 중심이다"고 말했다.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도 "한국정치에서 '인물중심 정당'이 생기는 게 의아했다"고 거들었다.
특히 톤셋 대사는 "민노당의 구체적 정책대안이 눈에 띄고 북유럽과 유사한 선거 캠페인이다"고 평가하면서 "다른 후보들도 거시정책을 제시하지만, 실현방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톤셋 대사는 "후보들이 경제성장을 말하기는 하는데,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고찰해야 할 경제학자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가"라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스웨덴 대사 "산별협약이 스웨덴 산업발전의 기반"
3개국 대사들의 '대선 관전평' 앞에서 '권 후보는 이들에게 "보육, 교육, 의료, 산재문제 등에 대해 국가 역할이 전혀 없는데,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들은 전적으로 개인들이 책임지고 있고 더욱더 이런 경향들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오늘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권 후보는 "보육,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보장제도 이야기하면, 국민들과 다른 정당들은 '실현불가능하다'고 비판해서 북유럽을 예를들어 사회보장제도를 설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지난 해 정권 교체 이후 한국의 언론과 기업가들로부터 '복지병에 걸린 나라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는 괴이한 찬사를 받았던 스웨덴의 바리외 대사는 "신임 총리가 '복지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효율화 노력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면서 "스웨덴의 복지시스템 유지는 사회적 합의다"고 강조했다.
바리외 대사는 "노동시장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 부담이 커진다는 오해가 있지만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다"면서 "노사간 합의는 지킨다는 신뢰가 바탕되면 노조는 경제발전의 도움이다"고 말했다.
바리외 대사는 "산업별 노사간 협약이 지켜지고 그것이 경제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스웨덴의 산업이 발전했다"고 부연했다.
노르웨이 대사 "북유럽 성공의 기반은 사회연대의식"
이들은 한국의 사회적 의식수준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톤셋 노르웨이 대사는 "저희들의 성공 이유는 모든 계층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고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이다"고 사회연대의식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꼽았다.
톤셋 대사는 "한국은 유교전통이 강하고 가족중심이 강하지만 이제는 민주노동당 등이 사회공동체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고 충고했다.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도 "핀란드에서는 법질서, 정부기관, 정부당국 등 국가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다"면서 "한국에서는 국가보다는 가족, 동창 등 혈연, 학연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더 큰 것 같다"고 꼬집었다.
루오토넨 대사는 "핀란드에서는 그런 학연의 의미가 없다"면서 "노키아가 제일 큰 회사인데 그 회사 경영자들이 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1시간 10분 여 동안 진행된 간담회를 마친 후 권 후보는 "오늘 세 분 말씀을 듣고 크게 힘을 받아 간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박용진 대변인 역시 "선거 기간에 주한 외국 대사와 정치적 이야기를 나누는 게 관례가 아니었지만 다행히 다들 초청에 응해 주셨다"면서 "서로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박 대변인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사진도 한 장 못 찍었다"고 전했다. 솔직한 고언을 해준 3개국 대사들이 혹여 외교적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이들 역시 오랜만에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간담회 이후 권 후보는 '삼십년 전에 헤어진 동생 만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작 북유럽 대사들과 간담회가 필요한 사람은 권영길 후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게 솔직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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