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ISD)'에 또 휘말렸다. 비슷한 ISD가 더 이어질 전망이라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독소 조항'으로 꼽혔던 ISD가 실체로 다가온 셈.
그러나 한국 정부가 지난 2011년 한미 FTA 비준 당시 국민에게 했던 약속은 잊힌 분위기다. ISD에 대해 재협상을 하겠다는 게 당시 약속이었다.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ISD를 제기했고, 현재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만수르 회사', 한국에 낸 세금 돌려달라며 ISD 제소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에선 완전히 판박이다. 론스타와 '만수르 회사' 모두 조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명목상의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웠다. 이후 한국 조세법의 실질 과세 원칙에 의해 한국 정부로부터 세금을 징수당하자,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가 관련 정보를 철저히 숨긴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론스타는 벨기에 페이퍼컴퍼니 LSF-KEB 등을 앞세웠다. 만수르 회장의 IPIC는 네덜란드 페이퍼컴퍼니 하노칼을 동원했다.
론스타는 스타타워 빌딩, 극동건설, 스타리스, 외환은행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IPIC는 현대오일뱅크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각각 회피하려 했다. IPIC의 네덜란드 페이퍼컴퍼니 하노칼은 지난 1999년 현대오일뱅크 주식 50%를 취득한 뒤 현대중공업에 1조8381억 원에 팔았다. 당시 낸 세금이 한국-네덜란드 이중과세 회피 협약에 어긋난다는 게 하노칼 측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결국 한국 과세 당국은 론스타에게 약 8000억 원, IPIC에겐 약 1838억 원의 세금을 거둬들였다. 오로지 조세 회피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에 대해선, 그 배후에 있는 실질적인 수익 귀속자에게 과세한다는 게 한국 판례다. 예컨대 하노칼은 지난 2008년 이후 평균 고용 직원 수가 1명이다. 명백한 '페이퍼컴퍼니'다.
론스타와 IPIC는 이 같은 한국 판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당하게 낸 세금이니, 돌려달라는 것. 그들이 ISD를 통해 국제 중재에 회부한 건 그래서다.
한국 정부, 잇따른 ISD에 대해 '비밀주의' 일관…"'납세자 권리' 무시"
국재 중재 결과에 따라, 한국 정부는 막대한 돈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 결국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그런데 납세자인 국민에겐 관련 정보가 차단돼 있다.
론스타가 제기한 ISD 첫 심리가 지난 15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진행된다. 과거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과정에 참가했던 전직 고위 공직자들이 증인 출석을 위해 대거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누가 증인으로 출석했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따르면, IPIC는 지난해 11월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하는 국제중재회부 예고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는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는 22일 기자 회견을 열어 정부의 비밀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기자실에서 열린 이날 회견에서 민변은 IPIC가 보낸 국제중재회부 예고서를 공개하도록 정부에 촉구했다. 아울러 민변은 론스타가 제기한 ISD 관련 정보 가운데 론스타가 영업 비밀로 지정한 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민변은 △한미 FTA 비준 당시 국민에게 했던 ISD 관련 재협상 약속을 즉시 이행할 것 △현재 추진 중인 한중 FTA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등 모든 통상 협정에서 ISD 회부제를 제외할 것 등을 요구했다.
세 번째 ISD가 온다…이번엔 이란 기업
이 같은 요구가 절실한 건, 비슷한 유형의 ISD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민변에 따르면, 이란의 가전회사인 엔텍합 그룹이 올해 2월 19일 청와대에 국제중재회부 예고서를 보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 및 내용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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