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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로!

[창비 주간 논평] 시대와 인간의 진심을 담은 명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國歌)로 삼자. 이렇게 주장한다면, 한국의 보수 진영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며 혀를 차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이들도 이 노래를 낳은 5.18의 기념식에서조차 '합창은 되지만 제창은 안 된다'는 상황에서 '그래도 부른다' 식의 수준 낮은 드잡이를 한 지 8년째인데 나가도 너무 나간 소리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부르는 데 삼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 짧은 노래 하나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전선이 선명하게 그어진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35년 전에 군부 쿠데타 세력이 총칼로 강행하며 권력을 손에 넣었던 '광주 고립 전략'을 옹졸하게 계승하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집결시킨다.

왜 이 노래를 이다지도 불편해 하나

국가보훈처나 재향군인회 그리고 김진태 같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입장은 한결같다. 즉, (2013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 운동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데 합의했음에도) 이 노래가 1991년 북한이 대남 공작용으로 제작한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주제곡이며, 작사자가 불법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복역한 바 있는 반체제 인사라는 점, 그리고 친북·종북 단체들이 각종 의식에서 애국가를 대신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 노래를 부정한다. 친북·종북의 선전 수단인 이 노래가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행사에서 기념곡으로 불린다는 것은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체제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로서, 굳이 필요하다면 5.18 민주화 정신에 부합되고 온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곡을 만들자는 것이다.

김진태 의원의 단어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 노래는 이들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같은 당의 김무성 대표나, 정의화 국회의장, 나아가 하태경 의원 같은 신진 보수파까지 이런 입장에 난색을 표하면서 노래에까지 종북 덧칠을 해서는 안 되며 반독재 투쟁의 민주주의 정신을 통합과 상생의 정신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진짜 문제는 '애국가'에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공식적인 국가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려온 '애국가'의 작곡자인 안익태가 나치 치하의 1942년 베를린에서 일본 괴뢰 정부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사실이나, 그가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후기 낭만주의의 대가 리하트르 슈트라우스가 쓴 일본 제국 찬양 작품 <대일본축전>을 일본에서 지휘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침묵한다.

특히 영상물로도 남아 있는 베를린 공연에선 '애국가'가 포함되어 있는 안익태의 관현악곡 <한국 환상곡> 속의 선율 테마와 유사한 대목이 두 군데 정도 포함되어 있다니 정말이지 아찔한 노릇이다. 만약 이 지적이 사실이라면 연주가 있기 6년 전에 뜨거운 민족 사랑으로 썼던 <한국 환상곡>의 음률이 일장기가 휘장으로 내걸린 제국주의와 파시즘 찬양의 제단에 바쳐졌다는 말이 된다.

다양한 이유로 '애국가'가 국가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은 1960년대부터 있어왔다. 국가가 새로이 제정되어야 한다면 나는 단연코, 새로운 곡을 만들 필요도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우리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국제 연대의 상징

미국과 중국, 프랑스를 위시하여 우리가 알 만한 거개의 나라는 공화제와 민주주의 수립, 혹은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려는 독립투쟁의 피 어린 정신을 담은 내용의 노래를 국가로 삼고 있다.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는 많이 알려졌다시피 1812년 영국군과의 메릴랜드 매켄리 요새 전투의 모습을 담은, 변호사 프랜시스 스코트 키의 시로부터 탄생했고, 프랑스의 국가 'La Marseillaise'는 프랑스 혁명 직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800킬로미터를 행군해온 마르세유 의용군이 부른 노래로, 공병대 대위 루제 드 릴이 쓴 곡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맞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 더 장엄하고 보편적으로 이 헌법의 정신을 표현한 노래가 또 있을까? 그리고 한국의 보수 진영이 알아야 할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좁은 이 땅에서 왈가왈부되는 그저 그런 노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희망하는 세계의 깨어 있는 시민의 노래로 널리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민공들을 위한 사회 단체 공연이나 심지어는 일본의 민주주의 집회, 필리핀이나 타이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집회에서 이 노래가 그들 나라의 노랫말로 등장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노래 하나가 민주주의의 국제적인 연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와 인간의 진심을 담은 노래를 언제까지 폄하할 건가

하태경 의원은 말한다. 이 노래가 폭력적인 집회를 연상하게 하므로 공식적인 자리에선 적합하지 않다고. 그러나 미국이나 프랑스 국가의 가사와 견준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너무나 문학적이다.

"그들의 피로 사악한 발자국들을 씻어냈도다!" ('The Star-Spangled Banner')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 행진하자 행진하자 / 적들의 더러운 피로 / 우리의 밭을 적실 때까지" ('La Marseillaise')

1980년의 봄 이후 광주의 노래는 많았다. 그중에서 왜 4박자의 단조 행진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유독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게 되었는지, 그리고 세계의 많은 이들이 왜 이 노래에 공감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 땅의 보수 진영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이 노래는 시대와 인간의 진심을 담은 명곡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가로 삼기에 충분하고도 충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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