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대기업에 "즉시 금고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데 대해 경제단체들은 여당에 금산분리 완화 조속 처리 등 '주문 보따리'를 쏟아냈다. 반면 민주당과는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6단체 대표는 24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를 순차적으로 방문해 한나라당에는 금산분리 완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고, 여야 지도부 모두에게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주문은 '봇물', 투자는 '생색'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이기도 한 전경련 조석래 회장은 박희태 대표와 면담에서 "600대 기업의 올 한해의 투자 목표액이 86조 8000억원"이라며 "경제가 무척 어려운데도 작년(투자액 89조원)보다 2조 원 정도 적은 액수"라고 '생색'을 냈다.
그 대신 주문은 무더기로 쏟아냈다. 조 회장은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민정 대타협을 거론하며 "선진국에 비해서도 너무 높은 임금을 다소 삭감해 얻어지는 재원으로 청년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니 한나라당이 성원해 달라"고 말했다. 사내유보금을 풀어달라는 주문에 임금 삭감한 돈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답한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도 이에 적극 동의했다. 김 회장은 "대기업의 고임금 구조가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없는 장애요인으로 작용 해왔다"며 "대기업 임금 정상화는 곧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문어발 사업 확장 및 중소기업 지배 강화 우려 등을 이유로 출자총액제 폐지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던 김 회장은 "지금은 중소기업도 출총제 폐지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조석래 회장은 또 외국계 주주들의 은행 투자가 늘어날 것임을 지적하며 "기업들이 은행에 투자해서 은행을 건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금산분리 완화도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기를 기대한다"며 은행법 등 관련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경영인총연합회 김영배 부회장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한 기업당 최근 참여 한도를 150억으로 높였다가 다시 100억으로 낮췄는데 이 한도를 다시 높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박희태 대표는 이에 "신년사에서 호소한 데 화답하는 말씀 들으니 너무나 감사드린다"며 "오늘 제안해 준 것을 처리할 수 있도록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FTA 비준동의안 두고, '정세균 VS 조석래'
박희태 대표는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로)폭력국회를 야기했다. 그래서 저희들이 강행처리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고 있다"고 곤란한 심정을 표하며 "야당을 잘 설득해달라"고 주문했지만 경제단체장들은 민주당은 완고함에 부딪쳐야 했다.
한나라당 면담에 이어 민주당 지도부를 방문한 경제단체장들은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시기 등과 관련해 의견차만 확인하고 50여 분 만에 면담을 정리했다. 금산분리 완화 등 한나라당 지도부에 무더기로 쏟아냈던 주문은 이 자리에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일부는 미국측이 (한미FTA 비준에) 반대 의견이 있다는 논의도 있고 미국이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는데 저희가 미국 재계와 긴밀히 얘기했지만 그런 것은 없다"며 조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이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시기 조절을 강조하며 "미국이 의회에 비준을 요청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처리해줄 것"이라고 말하자 조 회장은 "비준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든 간에 빨리 실질적 효과가 나도록 하는게 우리의 절박한 바람"이라고 받아쳤다.
이에 박병석 정책위의장이 "한미FTA를 반대한 적이 없다"면서도 "원칙 못지 않게 절차가 중요하다. 상황 변화가 생기면 예기치 않은 일로 악화될 수 있다"고 반박하자 조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논쟁의 기미가 보이자 곧이어 비공개 회의로 전환됐지만 김유정 대변인은 면담 뒤 "조 회장과 민주당 지도부는 서로 의견차만 확인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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