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불거진 '공갈 사퇴' 막말 논란도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교동계 등 당내 일부에서는 문재인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 이 와중에 '공갈' 발언의 당사자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사과를 거부한 채 다른 비노계 중진 의원과 SNS에서 또다시 말다툼을 벌여, 당내 계파 갈등에 계속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文측, 주승용-김한길에 편치 않은 심정 "흔들기 차원 넘어"
앞서 자신이 사퇴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을 치는 게 더 문제"(8일 정청래 최고위원)라는 조롱 섞인 발언을 듣고 격분, 최고위원직 사퇴를 재선언한 주승용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은 10일 현재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 여수에 칩거 중이다. 주 최고위원은 문 대표 쪽의 전화 연락 등 접촉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으며, 간혹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복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문 대표가 여수로 찾아와도, '십고초려'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주 최고위원을 어서 복귀시켜 지도부 내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처지의 문 대표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문 대표는 지난 8일 주 최고위원이 사퇴 선언에 대해 "정 최고위원 발언 때문에 하나의 반응으로 말한 것이지 주 최고위원의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 최고위원이) 적절하게 사과하면 풀릴 것"이라고 말했었다.
주 최고위원은 현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일한 호남 지역구 의원일 뿐 아니라, 김한길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지내 대표적인 '김한길계'로 불린다. 당 내 다른 계파에서는 "주 최고위원이 하는 말은 곧 김 전 대표가 하는 말"로 인식되고 있기까지 한다. 주 최고위원은 사퇴 선언 후 문 대표 측의 연락은 피하고 있지만, 김 전 대표와는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지난 7일 오후 김 전 대표를 만나기도 했으나, 김 전 대표 측에서는 "분위기가 좋았다거나 '협조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문 대표가 주로 얘기했고 김 전 대표는 주로 듣기만 했다"고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 대표 쪽에서도 김 전 대표 및 주 최고위원에 대해 "'흔들기' 차원을 넘어섰다"며 점차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고 있다. 정 최고위원의 발언에 주 최고위원이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지만, 문 대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않느냐는 분위기다. 문 대표와 가까운 한 당직자는, 주 최고위원이 정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 후 "이것이 (친노) 패권주의"라고 한 데 대해 "정 최고위원이 왜 '친노'냐"고 했다.
'문재인 지킴이' 자청한 정청래…"자기 장사" 비난 쇄도
주 최고위원에게 "공갈"이란 말을 해 이번 사태를 촉발한 장본인인 정 최고위원은 문 대표의 사과 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최고위 직후 '사과할 생각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없다"고 단언했고, 이날까지 입장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8일 오후 정 최고위원에 대해 "발언이 과했다"며 "정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함으로써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사과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히려 비노계 중진인 박주선 의원과 또다시 공개 설전을 벌이며 기존의 '친노-비노'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정 최고위원은 박 의원이 방송 인터뷰 등에서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 "우리 당의 대선주자 문재인을 지키려는 정청래, 문재인을 흔들어 대선주자를 망가트리려는 박주선. 과연 누가 옳은가?"라고 스스로를 문 대표 '지킴이'로 규정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 과정에서 "지난 총선 경선 과정에서 본인 지역구에서 사람까지 죽었다", "대선 때는 박근혜 지지하려고 했던 분 아니신가?"라며 과거 일을 들어 박 의원을 원색 비난하기도 했다. 문 대표 쪽에서 "그 분이 왜 '친노'냐"며 정색하고 손을 내저을 만한 상황인 것. 실제로 정 최고위원은 과거 DY(정동영)계였지만 19대 국회 들어서는 딱히 어떤 계파로 분류되지 않는다.
정 최고위원에 대해 비주류 그룹에 속한 이언주 의원은 역시 SNS를 통해 "화가 나는 건 (정 최고위원이) 겉으로는 마치 문 대표를 위하는 듯 포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자기 장사'를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지원 "文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선 안 돼"…동교동계도 참전?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문 대표와 경쟁했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주 최고위원과 같이 '4.29 재보선 참패 책임론'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밤 방송 인터뷰에서 "(재보선 패배에 대해) 문 대표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퇴하라는 뜻이냐'는 재질문이 나오자 그는 "그런 노골적 표현보다는 '그런 결정은 문 대표가 잘 해야 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박 전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10일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말은, 문 대표에게 사퇴하라는 뜻이 아니라 '문 대표가 당원·국민과 호남 민심 앞에 이 사태에 대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발언의 파장이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오전 문 대표와 회동했고, 문 대표 측은 이 회동 결과를 '박 전 원내대표도 문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8일 최고위에서 주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이 있었고, 같은날 오전 박 전 원내대표가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과도 회동한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자 문 대표 쪽은 당황한 분위기다. 문 대표 쪽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7일 회동 당시에는) 사퇴하라는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는데, 이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8일 오전의 박지원-권노갑 회동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문재인 책임론'에 공감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동교동계 소속 전직 의원 등이 내주 초 집단 의사 표명에 나설 것이라는 한 동교동계 관계자의 전언이 이날 <연합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문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까지 나올 수 있다는 말도 있어, 야당의 내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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