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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공동 육아'를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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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공동 육아'를 두려워하는가?

[민들레] 공동육아·① 아이 돌보기

윤호의 백일상

윤호의 백일상이 차려졌다. 잔치를 하기엔 부담스러워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는데 "100일엔 애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 아빠 잘했다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날인 거다. 불고기 좀 준비해갈 테니 집 식구들이랑 식사 한 끼 하렴"이라는 시어머님 말씀으로 점심을 준비했다.

그날 아침 나의 일상은 평소와 같았다. 윤호 젖 물리기, 놀기, 안아주기…. 그런데 점심때가 되자 어느새 상 위엔 불고기, 잡채, 전, 샐러드 같은 음식이 한가득 차려졌고, 거실엔 사람들이 꽉 찼다. 윤호 100일이니 점심 한 끼 먹자는 말에 스무 명이나 되는 삼촌, 이모들이 모인 것이다. 심지어 각자 음식까지 준비해 왔다. 시끌벅적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은 100일 2부를 준비했다며 옆집으로 바쁘게 이동했다. 뒤따라 가보니 옆집의 복층 다락방에는 색색이 풍선이 매달려 있고, '윤호 백일'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다과상 주위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앉아 우리 세 식구를 맞아주었다.

윤호 덕분에 집이 참 따뜻해졌다고, 자신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더 자주 하게 되었다고,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살아보자는 친구의 편지 낭독에 나는 결국 눈시울이 붉어졌다. 좁은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윤호와 함께 지내온 100일을 되돌아보며 소감을 나눴다. 대접하려고 모인 자리가 결국 엄청난 대접을 받는 자리로 변했다. 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 '룰루랄라 우동사' 워크숍 사진. ⓒ이성희

이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사는 곳은 인천시 서구 검암동의 다세대 빌라다. 복층 다락이 있는 방 세 칸짜리 집에 우리 부부와 윤호를 포함해 모두 여덟 명이 같이 살고 있다. 몇 년 전 귀촌하고 싶은 친구 여섯 명이 집을 얻어 연습 삼아 같이 살아 보기 시작했다. 공감대는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당장 시골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에 귀촌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매달 답사를 다니면서 준비해 나가던 터였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막연히 가지고 있던 귀촌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졌고, 실제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귀촌'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무작정 주거를 옮기기 전에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따뜻한 관계를 맺어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살고 싶은 친구들이 늘어났고, 공동 자금으로 집을 더 마련해 지금은 한 빌라 세 가구에서 총 열아홉 명이 모여 살고 있다. 정다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싶은 마음에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다른 부부를 빼고는 모두 싱글이다. 윤호가 태어나기 전까지 누구도 아이를 키워보기는커녕, 가까이에서 자주 본 적조차 없었기에 임신 후 걱정이 많았다. 혹시 아이가 울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어른들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집을 따로 구해야 하나, 아니면 방음이 잘 되는 방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걱정은 많았지만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대책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모두 처음이니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고, 섣불리 계획을 세우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사는 친구들과 이야기한 것은 아이가 태어난 후의 상황은 지금 알 수 없으니, 키우면서 불편한 점을 서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놓자, 정도였다.

그러고는 윤호가 태어났다. 예상했던 상황도 일어났다. 아이는 새벽에도 방 밖으로 소리가 나갈 정도로 우렁차게 울었고, 공용 공간에 아이 짐이 쌓이고, 육아를 위해 필요한 공간이 점점 더 늘어났다. 밤이 되면 자는 아이를 위해 나머지 식구들 모두 거실 조명을 어둡게 줄이고, 말소리조차 소곤소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상황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갈등을 빚지는 않았다. 태교부터 시작해서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똥을 싸고 배냇짓을 하며 웃는 모습을 같이 본 친구들은 그런 불편을 기꺼이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윤호가 소리를 내거나 하품만 해도 손뼉치며 환호하는 조카 바보들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린 더 친밀했고, 아이 또한 스스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육아를 많이 도와주던 친구 네 명이 해외로 한 달 이상 여행을 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1시간 간격으로 젖을 달라고 보채고, 2시간 이상 자지 않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식사도 잠도 제대로 챙겨지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오후가 되면 남편의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됐다. 일반 엄마들의 육아가 얼마나 힘들지,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행 갔던 친구들이 돌아오고 아이를 대하는 것이 낯설었던 나도 적응이 되면서 그제야 예쁜 아이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엄마가 아이를 예쁘게 바라볼 수 있는 건 혼자 힘으로 불가능했다). 요즘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동네에서 펍(Pub)을 운영하느라 저녁에 출근하는 친구들이 거의 매일같이 와서 윤호를 봐준다. 저녁 시간이 돼 친구들이 가고 나면, 이번엔 퇴근한 이모 삼촌들이 달려와 윤호와 놀아주고, 늦는 날에도 꼭 들러 아이 얼굴이라도 보고 간다.

날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윤호는 정말 복이 많다. 그 많은 이모, 삼촌들은 날마다 윤호가 보고 싶어서 자꾸 오게 된다며, 사이좋은 어른들 사이에서 사랑을 주고 상처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한다. 이젠 확실하게 '윤호는 우동사에서 같이 키우는 아이구나' 싶다. 이것이 내게는 큰 위안과 안심을 준다. 여기 살면서 이런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이, 윤호를 이곳에서 낳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결혼하면 꼭 따로 살아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 같이 사는 건 절대로 안 된다"라고 하던 친정어머니도 우리 집에 몇 번 와보고는 "좋은 친구들과 같이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신다.

▲ 최근 '아이 돌보기'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TV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KBS 2TV <해피선데이 :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송일국 씨의 삼둥이 '대한·민국·만세'는 '진짜 아이돌'이라고 불리며 인기몰이 중이다. ⓒKBS

함께 산다는 것은


한 공간에 같이 살다 보면 곳곳에서 생활방식과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 초기엔 이것들을 조율하는 것이 늘 화두였다. 표면으로 떠오르기 쉬운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누구는 가스레인지가 더러운 게 싫고, 누구는 계단에 먼지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빨래할 때도 색깔별로 할지, 깨끗하고 더러운 순으로 할지도 달랐고, 심지어 더러움의 기준도 제각각 이었다. 그때 우리는 규칙을 정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조금 품을 들이더라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각자 점검하며 이야기로 풀려 애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에서 부딪히는 부분은 적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다큐 촬영 요청이었는데,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사생활 노출을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절대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왜 촬영을 하고 싶어 하는가? 나는 어떤 점이 싫은가?'를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꺼냈고, 긴 시간을 두고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풀어가자 신기하게도 다들 꼭 해야 하는 것도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전환됐다. 마지막엔 촬영 중에 서로 잘 묻고 잘 드러내서, 불편함이 작도록 배려하며 부분 촬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함께 사니 불편한 점도 생기지만, 꺼내놓고 이야기할 기회도 많아져 연구거리 삼아 같이 공부하며 해결하는 작은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초창기에는 우리의 지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다 함께 모여 연찬을 하기도 했다. 우리의 목적을 분명히 명문화해야 더 단단해지고 발전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도, 어디까지가 공동체라고 한계를 짓기도 참 어려웠다. 그래서 '같이 살아보니 불안이 해소되고 안심되더라. 즐겁더라. 여러 가지 해볼 수 있는 거리가 생기더라. 그럼, 그런 것들을 모아서 우리 캐치프레이즈나 만들어볼까?' 하고는 '안심되는 실험 공동체 룰루랄라 우동사'라고 정하고 모임을 끝낸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 공동체의 성격에 대해 뭔가 합의할 수 있는 접점을 못 이끌어내서 그렇게 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모두가 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참 억지스러운 작업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최상의 가치로 삼고 있지만, 결국 인생은 자신의 감각으로 보고, 그 감각에 맞추어 살아가는 거니까. 예전엔 '우동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했다면, 지금은 '우동사에서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으로 바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개인이 가진 것들을 최대한 잘 살리면서,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은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고 그중에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주거에서 직장까지 변화의 바람이

공동 주거로 시작한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적은 수입으로도 안정감 있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니, '서로 잘 말할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는 관계에서 일해보고 싶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외연을 넓혀보고 싶다.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고, 밖에서 직장을 다니던 몇몇 친구들이 일을 그만두고 우동사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보려고 여러 가지를 실험하게 된 것이다.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공동 주거를 위한 집을 한 채 더 마련해, 우리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여섯 명의 이웃들이 살게 됐다. 네 명의 친구들은 동네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로 '커뮤니티 펍'을 열어 운영하고 있으며, 그 공간에서 독서 모임이나 서당 같은 모임을 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귀촌의 끈을 놓지 않고자, 지인의 도움으로 강화도에 논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로 3년이 됐다. 그 덕분에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로 전업한 친구가 생겼고, 더 많은 실험이 가능해졌다. '논-데이(day)'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과 논에서 놀고 일하며,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안심되는 실험 공동체 룰루랄라 우동사'는 재미 삼아 정했던 문구였지만, 내겐 이 공간이 정말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가 태어나도, 직장을 쉬어도 큰 불안이 없다.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돈독한 관계라는 것을 이곳에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과 깊이 어울려 살며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더 확장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삶이 더 재미있어졌다.

앞으로 우동사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더 다양하게 더 많은 관계가 생겨날 것이다.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사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아이를 키우고 싶다. 건강한 어른들이 아이에게 삶의 모델이 되어줄 것이고, 아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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