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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암터의 늙은 나무 아래서 탑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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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암터의 늙은 나무 아래서 탑을 바라보다

5월 폐사지학교, 진도·해남의 암자들과 대흥사 템플스테이

폐사지학교(교장 이지누. 폐사지 전문가·전 <불교신문> 논설위원)의 5월, 열다섯 번째 강의는 봄빛 넘치는 남도의 진도와 해남으로 떠납니다. 전남 진도의 금골산 동굴암터와 해남 두륜산의 만일암터에도 이미 봄은 흐드러졌을 것입니다. 가는 길이 먼 만큼 조선시대에는 두 지역 모두 유배지로 이름을 떨쳤던 곳입니다. 그래서 동굴암터에도 또 만일암터에도 사대부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조선 후기의 유배객인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럼없이 승려들과 어울리며 ‘호남불교’라는 새로운 분위기를 진작시켰던 이야기는 만일암터의 늙은 나무 아래에서 탑을 바라보며 나눌 것입니다. 또 성종 당시 진도로 귀양 간 망헌 이주의 가슴시리도록 슬픈 이야기는 진도의 금골산에 있는 동굴암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나눕니다. 그 밖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마애여래좌상과 두 기의 3층석탑이 돋보이는 두륜산 북미륵암과 초의선사 의순(意恂)이가 <동다송>을 집필한 일지암, 그리고 첨찰산의 숲과 계곡이 더 없이 아름다운 진도의 쌍계사와 같은 곳들의 시간은 덤입니다. 봄 빛깔이 짙고도 깊은 5월 16(토)∼17(일)일, 1박2일 일정이며 해남의 명찰 대흥사 템플스테이(1박)로 진행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진도 첨찰산 일출 Ⓒ이지누
폐사지(廢寺址)는 본디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향화가 끊어지고 독경소리가 사라진 곳을 말합니다. 전각들은 허물어졌으며,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 터에 박힌 주춧돌과 석조유물이 대부분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은 불탔거나 삭아버렸으며, 쇠로 만든 것들은 불에 녹았거나 박물관으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폐사지는 천 년 전의 주춧돌을 차지하고 앉아 선정에 드는 독특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주춧돌 하나하나가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 되는 곳, 그 작은 선방에서 스스로를 꿰뚫어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얻는 길, 폐사지로 가는 길입니다. 아울러 폐사지 답사는 불교 인문학의 정수입니다. 미술사로 다다를 수 없고, 사상사로서 모두 헤아릴 수 없어 둘을 아울러야만 하는 곳입니다.













이지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5월 답사지에 대해 들어봅니다(아래는 교장선생님의 폐사지 답사기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진도 금골산 마애불 Ⓒ이지누
겨울이 코앞인 늦가을의 해는 지난 봄에 마주했던 해와는 달랐다. 봄에는 바다에서 솟구치더니 이번에는 산 능선 위로 뜨고 있다. 다른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봄의 해가 돈오(頓悟)라면 오늘 해는 점수(漸修)에 가깝다. 지난 봄에 마주친 해는 솟아오르는 것도 금세였지만 떠오르자마자 발끈하며 대지를 밝히고 뜨겁게 타 오르더니 오늘 해는 그렇지 않았다. 오래도록 산 능선을 달구는 것은 물론 점차 하늘을 물들인 후 차츰차츰 산하대지로 번져나가며 자연이 지닌 본연의 색을 되찾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능선 위로 완연히 해가 솟아오르고 나서야 불편하게 서 있던 발을 떼어 한 걸음 더 내려섰다. 장관이다. 부처님은 물론 모든 바위는 서기(瑞氣)가 드리운 양 붉게 물들어 환희로운 장면을 내 놓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소슬한 금풍(金風)에 제 모습 드러내기 시작한 숲과 함께 발아래에 넘실거리는 안개마저 붉었으니 순례자인들 붉게 물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온통 붉게 젖은 몸을 하고는 서둘러 바위틈에 향을 꽂아 사르고 붉은 부처님을 향해 절을 했다. 그리곤 대지를 물들이던 붉은 기운이 사라질 때 까지 바람을 피해 동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렇다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앉아서 부처님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갓 서른 즈음이었을 한 사내의 모습이다. 사실 이곳에 토굴과도 같은 암자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글 한 편을 읽고 난 후였다. <금골산록(金骨山錄)>이라는 글은 그의 문집인 <망헌유고(忘軒遺稿)>에 실려 있다. 그 글을 통해 금골산에 상굴(上窟)과 동굴(東窟) 그리고 서굴(西窟)이 있었으며, 그 굴 세 곳 모두에 불전(佛殿)이 버젓하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마애불이 새겨진 동굴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 상굴과 서굴은 짐작으로만 가늠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하지만 섬에서 찾을 수 있는 불교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마애불이 있음에랴. 따지고 보면 험한 뱃일과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기대기에는 불교보다는 전래되는 민간신앙이 제격일 수 있다. 그들의 삶터인 바다를 향해 제를 올리며 풍어를 기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섬에서 아직도 불교보다는 민간신앙인 굿과 같은 것들이 성행한다. 그러니 이곳 금골산은 섬에서 찾은 불교 유적의 보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기에 멀다 않고 찾아 든 것이며, 이곳까지 발길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의 호는 망헌(忘軒)이며, 이름은 이주(李胄, ?~1504)이다.

그가 유배를 온 시기는 연산군이 집권한 시절이었던 1498년 7월이다.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한 그는 산에 올라 23일 동안 머물렀다. 그때의 일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 <금골산록>이다. 글에 의하면 금골산 아래에는 이미 폐사가 된 해원사(海院寺)와 9층 석탑이 있었다. 그리고 산에는 모두 세 군데의 굴이 있는데 기슭에 있는 것이 서굴이다. 서굴에는 일행(一行)이라는 스님이 향나무로 16나한을 깎아 모셨으며, 굴 곁으로 따로 고찰(古刹) 67칸이 있어 다른 스님들이 머물렀다. 그곳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하기 짝이 없어 정상에 거의 다다라서는 돌을 포개어 만들어 놓은 계단 13칸을 올라야 한다고 했으니 지금의 등산로와는 다른 길이다. 요새는 산 정상까지 돌계단을 오르는 수고 없이 수월하게 다다를 수 있다.

더불어 67칸이나 되는 전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만한 공간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종잡을 수 없다. 웃자란 나무들이 뒤덮어버린 것인지 두어 차례 산 아래의 바위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 부분에 대한 묘사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정상 부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눈 둘 곳조차 없는 벼랑이어서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상굴은 정상에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 벼랑에 파놓은 계단 12칸을 내려가 다시 열 발자국쯤 가면 다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기를 “굴이 중봉 절정의 동쪽에 있어 기울어진 비탈과 동떨어진 벼랑이 몇 천 길인지 알 수 없으니, 원숭이같이 빠른 동물도 오히려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했으니 그 난감함은 지금도 매 한가지이다.

▲초의선사가 <동다송>을 집필한 대흥사 일지암 Ⓒ대흥사

2015년 5월 폐사지학교 제54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5월 16일(토요일)>
07:00 서울 출발(정시에 출발합니다.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폐사지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진도읍 도착
-점심식사(소갈비뜸북국백반)
-운림산방 도착 후 쌍계사 일대 산책
-금골산 주차장 도착
-동굴암터 마애여래좌상 도착
-금골산 해원사터 9층석탑 도착
-해남읍 도착
-저녁식사 겸 뒤풀이(생고기샤브샤브요리)
-숙소 도착(해남 대흥사 템플스테이, 다인실)

<5월 17일(일요일)>
06:00 아침공양(대흥사)
-출발
-북미륵암 도착
-만일암터 도착
-일지암 도착
-대흥사 도착
-점심식사(남도정식) 후 서울로 출발
(금골산은 편도 약 30∼40분, 두륜산 대흥사에서 북미륵암까지는 1시간 남짓, 북미륵암에서 만일암터까지는 30분쯤 걸리는, 만만치 않은 산행구간입니다. 참고하시고 채비하시기 바랍니다.)


▲폐사지학교 제15강 답사로 ⓒ폐사지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등산복·배낭·등산화, 모자, 선글라스,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초콜릿, 과일류 등), 자외선차단제, 세면도구, 세수수건,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폐사지학교 제15강 참가비는 23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템플스테이 1박과 5회 식사비, 강의비, 관람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전화 문의(050-5609-5609)는 월∼금요일 09:00∼18:00시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공휴일 제외).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울러 폐사지학교 카페(http://cafe.naver.com/pyesajischool)에도 많이 놀러 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폐사지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대흥사가 처음 시작된 곳 만일암터의 봄 Ⓒ대흥사


이지누 교장선생님은 1980년대 후반, 구산선문 답사를 시작으로 불교를 익혔으며 폐사지와 처음 만났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분단 상황과 사회 현실에 대하여, 중반부터는 민속과 휴전선 그리고 한강에 대하여 작업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초반까지는 계간지인 <디새집>을 창간하여 편집인으로 있었으며,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나라 안의 폐사지와 마애불에 대한 작업을,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한강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사 작업을 했습니다. 2009년부터는 동아시아의 불교문화와 일본의 마애불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2012년부터 폐사지 답사기를 출간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충청도의 폐사지 답사기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그리고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를 출간했으며, 다른 지역들도 바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지누 교장선생님은 <폐사지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전각은 무너지고 법등조차 꺼진 폐사지(廢寺址)는 쓸쓸하다. 그러나 쓸쓸함이 적요(寂寥)의 아름다움을 덮을 수 없다. 더러 푸른 기운 가시지 않은 새벽, 폐사지를 향해 걷곤 했다. 아직 바람조차 깨어나지 않은 시간, 고요한 골짜기의 계곡물은 미동도 없이 흘렀다. 홀로 말을 그친 채 걷다가 숨이라도 고르려 잠시 멈추면 적요의 무게가 엄습하듯 들이닥치곤 했다. 그때마다 아름다움에 몸을 떨었다. 엉겁결에 맞닥뜨린 그 순간마다 오히려 마음이 환하게 열려 황홀한 법열(法悅)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폐허일지언정 이른 새벽이면 뭇 새들의 지저귐이 독경소리를 대신하고, 철따라 피어나는 온갖 방초(芳草)와 들꽃들이 자연스레 헌화공양을 올리는 곳. 더러 거친 비바람이 부처가 앉았던 대좌에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곤두박질치던 눈보라는 석탑 추녀 끝에 고드름으로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곳에는 오직 자연의 섭리와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사(禪師)의 이야기,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석조유물 몇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또 아름답다. 텅 비어 있어 다른 무엇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화선지 같으니까 말이다.

꽃잎 한 장 떨어져 내리는 깊이가 끝이 없는 봄날, 주춧돌 위에 앉아 눈을 감으면 그곳이 곧 선방이다. 반드시 가부좌를 하지 않아도 좋다. 모든 것이 자유롭되 말을 그치고 눈을 감으면 그곳이 바로 열락(悅樂)의 선방(禪房)이다. 폐허로부터 받는 뜻밖의 힐링,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얻는 길, 폐사지로 가는 길은 파수공행(把手共行)으로 더욱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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