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6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의 주요 내용(원문보기)이다. '경제학과 선거(Economics and Elections)'라는 이 칼럼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5월 7일로 예정된 영국 총선을 앞두고, 집권 보수연정이 실제로는 경제를 엉망으로 이끌었는데도 경제정책을 잘했다는 유세가 먹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다른 나라 선거에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개탄하면서 그 이유를 분석했다.
영국의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충격적으로 나빠졌다. 2009년 잠시 회복세를 보였으나 이듬해에 멈췄다. 2013년에 성장세를 보였으나, 1인당 실질소득은 금융위기 직전 수준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대공황 때와 비교하면 2007년 이후 영국 경제의 회복세는 훨씬 성적이 나빴다.
그런데 2010년부터 집권한 영국의 보수연정 지도부는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이 '경제를 다룰 줄 아는 번영의 수호자'처럼 자부하고 있다. 그게 통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국뿐 아니라,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민주주의 사회가 유념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
어떻게 해서 영국 정부는 실제로는 경제적 성과가 형편없는데,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제대로 역할을 못한 야당 탓을 할 수도 있고, 언론의 무능력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거의 모든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유권자들은 상당히 기억력이 짧아 경제정책을 평가할 때 장기적인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성장으로 평가한다. 지난 5년간 영국의 보수연정의 성적은 나빴다. 하지만 지난 반년에 영국의 경제는 상당히 좋아보인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먹혀들어간 것이다.
이런 주장을 그냥 추측으로 하는 게 아니다. 미국의 대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에 근거한 것이고, 이 연구는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정치 논객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유권자들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선거 직전 소득 성장이다. 여기서 '직전'은 1년도 아니고, 반년도 못되는 정도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건 상당히 씁쓸한 결론이다. 좋은 정책에 대해 정치적 보상은 거의 없거나 아주 없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엉터리 정책으로 경제 망가뜨린 뒤 반짝 회복시키는 게 전략?
국가의 지도자가 4년이나 5년간 경제를 잘 이끌었다고 해도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반년의 성적이 좋지 못하면 쫓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투표하러가기 직전에 급속히 경제를 회복시킬 여지를 두기 위해, 재임기간 대부분을 엉터리 정책으로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영리한 전략이 된다.
영국정부가 한 짓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정말 고의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선거는 경제정책에 대해서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약점을 보완할 방법은 있는가?
한 가지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정책 결정 기능을 독립적인 전문가 기구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긴축정책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을 보면 '독립적인 전문가 기구'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기 어렵다.
결국 선거는 권력을 결정하는 것이지, 진실에 대한 심판 역할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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