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합의한 특검법안이 윤곽을 드러내자 청와대는 "발의된 특검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검찰 기능의 무력화 및 특검 남용으로 인해 국가 기본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쌍심지를 짚고 나섰다.
청와대는 전날만 해도 "삼성 비자금 문제에 대한 검찰 고위층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면 특별검사 수사도 한 방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면서 "뇌물공여 부분에 대해선 특검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검찰 떡값'에 국한된 특검이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삼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측은 '검찰 떡값은 지엽적 문제에 불과하고 본질은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사회 전체를 틀어쥐고 있는 구조를 밝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삼성이 아니라 특검 때문에 국법질서가 흔들린다?
천 대변인은 이날 "특검법안의 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면 수긍이 가는 바가 있다"면서도 먼저 청와대의 입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 대변인은 "이 법안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서 "수사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삼성의 불법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불법 상속 등에 대한 진정·고소·고발을 수사대상으로 삼아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1997년 이후 정치인 등에 대한 뇌물 제공 건'이 법안에 포함돼 있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 의혹도 특검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열어놓은 점도 부담스런 눈치다.
천 대변인은 "게다가 이 법안은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서 "삼성 SDS건은 검찰에서 수사 중이고, 에버랜드 건은 대법원에서 재판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특검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그리고 과거에는 최장 90일 이내에 이뤄졌던 특검 수사기간을 200일로 한 것도 유례가 없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천 대변인은 "특검은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한 후에 미진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라며 "현재 발의된 특검법이 그대로 (통과) 되면 검찰 기능의 무력화 및 특검 남용으로 인해 국가 기본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그는 "특검은 수사의 효율성에 있어서도 일반 검찰수사보다 떨어진다"면서 "기존 개별 특검은 공정성 및 효율성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었다. 성과 없이 끝난 특검도 많다"며 특검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표했다.
천 대변인은 '이 법안이 그대로 올라올 것이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 법안이 법사위 올라갈 것인데 이런 문제가 충분히 검토 논의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재검토를 요청한 것이다"고 답했다.
"공수처 설치가 시급"…공수처 감독할 사람도 떡값 검사?
사실상 특검을 반대하고 나선 청와대는 대신 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를 강조했다. 천 대변인은 "이래서 우리가 이미 공수처 법안을 제출했다"면서 "삼성특검법안과 고위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공수처 법안에 대해 논의를 시급히 재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부패의 요구도 높고 해외 언론으로부터 망신도 당하고 국회는 특검을 준비하는데 정부, 청와대 차원에서 반부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없냐'는 질문에도 천 대변인은 "공수처가 해결 방안"이라면서도 "국세청이나 삼성 건에 대해 특검이나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것인데 그 과정을 보면서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결과를 볼 것"이라고 답했다. 천 대변인은 "현재는 정부 차원의 확정된 개선대책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정부 법안의 골자는 국가청렴위 산하에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은 인천지검장으로 재직 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돈인 대상 임창욱 전 회장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미진하게 했다는 이유로 검찰 내부에서도 비판 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결국 이 위원장은 서울지검장으로 재직 중 천정배 법무부 장관으로 부터 '영전성 좌천'을 당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삼성 이종왕 전 법무실장, 정상명 검찰총장 등과 함께 자신의 사시 동기모임 '8인회'멤버인 그를 청렴위원장에 앉혔다. 뿐만 아니라 이 위원장은 정의구현 사제단이 폭로한 '떡값 검사 리스트'에도 포함된 인물이다.
"빨리 증거 내놓아라"
그는 '검찰 뿐 아니라 재경부, 국세청, 고위 관료 들에 대한 삼성 리스트 의혹이 있는데 이를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냐'는 질문에도 "의혹을 제기한 측이 빨리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수용할 수 있는 쪽에 방점이 찍혔던 어제 발언과 오늘 발언의 뉘앙스 차이가 상당한데, 대통령의 의지가 포함된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천 대변인은 "발표의 형식과 수준을 고려하는 것은 저희 자체적 판단"이라며 "청와대의 입장이라고 정리하겠다"고만 답했다.
천 대변인은 "다만 어제는 받아들였다가 오늘은 안 받아들인다는 식의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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