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들여온다는 무기 하나가 한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이름도 생소한 이 무기를 놓고 한국 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까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체 무기 하나 가지고 다들 왜 이렇게 난리인 걸까? 평화네트워크 대표이자 프레시안 편집위원인 정욱식 대표는 최근 출간한 <MD 본색 : 은밀하게 위험하게>(서해문집, 2015년 3월 펴냄)에서 사드를 포함한 이른바 미사일 방어 체계(MD, Missile Defense)는 단순한 무기 체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정 대표는 MD가 "좁게는 한반도, 넓게는 유라시아 전역의 지정학을 좌우할 중대 변수 중 하나"이며 "전 세계를 또다시 냉전과 열전 사이에 두게 될 '21세기 철의 장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MD를 둘러싸고 진행됐던 강대국 간 갈등과 힘겨루기의 역사를 보면 MD는 정 대표의 말대로 "강대국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MD는 미국과 소련의 핵 군비경쟁이 시작됐던 1950년대 후반에 본격화됐다. 양쪽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1961년 소련이 최초로 MD 실험을 성공했고 이후 미국도 방공 미사일을 잇달아 내놓았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양측의 '창과 방패 만들기' 경쟁은 1972년 체결된 탄도 미사일 방어(ABM, Anti-Ballistic Missile Treaty) 조약으로 다소 완화 국면을 맞았다. 미·소 양국이 무기 확충에 제한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상대의 미사일을 막는 방패를 만들면 상대는 그 방패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더 많이, 더 빠르고 더 다양한 미사일을 만들게 되고, 이렇게 가다간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불안함과 위기감이 이 같은 조약을 탄생시켰다.
정 대표는 "MD가 절대 안보를 실현시켜줄 것이라는 환상은 곧 '절대 안보를 추구하는 것이 더 큰 불안을 초래한다'는 이성의 밑거름이 됐다"면서 "상호 간의 군비 경쟁을 최소화하고 선제공격을 가하려는 동기를 제거할 때 '전략적 안정'이 달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조약 이후에도 MD를 확충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면서 우주에 MD를 설치한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고 급기야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 이후 미국 사회 내에 구축된 '국가 안보 지상주의' 흐름에 맞춰 ABM 조약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미국이 MD에 집착하는 이유
우선 세계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MD에 대한 맹신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세계 곳곳에 MD를 설치해 놓고 적의 미사일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이른바 '절대 안보'의 신화가 여전히 미국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MD가 미국 내 주요 군수업체들에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점이다. 정 대표는 "미국이 MD를 구축할수록 그 대상이 되는 국가들은 더 많은 미사일을 만들기 마련이고, 이는 곧 더 많은 MD로 이어진다"며 MD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중장기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정 대표는 "MD가 발전할수록 우주의 군사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우주는 군수산업체에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 무기를 개발·생산·배치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사업 시장 개척에도 MD가 이용된다고 설명한다.
이에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미국 군수업체들은 정치권에 막대한 자금을 대면서 강력한 로비를 실행했고 싱크탱크를 통해 여론전에 나서기 시작했다. 실제 부시 행정부 1기 때 국방장관을 지냈던 도널드 럼스펠드의 경우 군수산업체의 후원을 받은 싱크탱크인 '안보정책센터'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군수산업체들이 MD 확충을 위한 보수 성향의 정치인, 전직 관리, 민간 전문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북핵, MD 번식을 위한 좋은 먹잇감
하지만 아무리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치권에 로비를 한다고 해도 명분 없이 무작정 MD 구축을 밀어붙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군수업체들과 결탁한 부시 정권은 MD를 추진할 만한 설득력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9.11테러가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이듬해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테러를 지원하는 '악의 축'이라며 전례 없이 강하게 이들을 비난했다. 알 카에다와 크게 관련이 없는 북한을 굳이 '악의 축' 중 하나의 국가로 넣은 이유를 두고 정 대표는 "부시 행정부가 MD 구축의 명분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후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MD 구축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던 북핵 위협론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는 그해 8월 요격미사일 중 하나인 패트리엇(PAC-3) 미사일을 수원 비행장과 오산 공군기지, 평택 기지 등에 설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일 간 MD 공조 역시 공동으로 연구·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실전에 배치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정 대표는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불허가 미·일 동맹의 MD 협력 강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고 전했다. MD 구축을 위해서라면 전범 국가의 군대가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쯤은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2015년 현재, 한반도에는 새로운 MD 무기 체계인 '사드' 배치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고, 12년 전 그랬던 것처럼 북핵이 주요한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그 사이 3번의 핵실험을 진행했고 스스로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MD 구축론자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먹잇감으로 '진화'한 상태다.
정 대표는 "북핵이 해결된 이후에도 미국이 계속 MD를 추진한다면 미·중 관계는 정면충돌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히려 북핵은 역설적으로 미·중 관계에서 완충적인 역할마저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미국이 대놓고 중국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핵은 중국 견제와 사드 배치에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핵이 MD 구축에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처럼, MD 역시 북핵이 성장하는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실제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할 경우 북한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핵과 미사일 강화에 많은 자원을 쏟을 가능성이 높다. 정 대표는 이를 "북한의 위협과 MD가 '적대적인 동반 성장'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핵 해결할 생각 없는 미국, 한반도 평화 대안은 없나
북핵은 직접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외교용에 가깝다. 정 대표는 "미국 정보기관 역시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전투 수행보다는 억제와 강압 외교의 목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며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군사적 패배에 직면하거나 급변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한다"고 지적한다.
즉 북한 핵무기는 실제로 남한이나 일본, 미국 본토에 떨어뜨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냉전 체제가 와해되고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붕괴 위협을 느낀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만든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보호 장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을 없애는 가장 빠른 길은 북한 지도부가 '체제가 붕괴되지 않겠다'는 판단을 하게끔 만드는 데 있다. 여기에서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은 체제를 붕괴시킬 만한 외부 위협 대부분이 미국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봤듯이 미국은 북핵을 제거하거나 없애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동아시아에 MD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북핵이라는 구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 해결과 MD 구축의 악순환을 깨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이에 정 대표는 '탈냉전식 공동 안보'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이 안전해진다고 느낄 때 비로소 나도 안전해진다'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방적 사고는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할 뿐"이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탈냉전식 공동 안보'를 추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길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6자회담이 소용없다고 하는 것은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외교를 무시하는 발상"이라며 "6자회담의 문을 열면 북핵과 MD 동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북핵 동결에 성공하면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종적인 북핵 해결도 타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가능성의 예술'인 외교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냈던 역사가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10년 전과 지금의 북핵 위협은 많이 달라졌지만, 국제 정세 역시 그만큼 변화된 측면이 있다.
변화된 정세를 읽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요동칠 것이다. 분단 70년의 대결을 이어갈 것인지,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인지는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비전과 보유하고 있는 역량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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