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부활절 전야 사목서한…'4.3 흔들기'에 화해·상생 강조
자신을 창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한 숱한 이들을 용서하며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반목과 죽음을 뛰어넘는 예수의 사랑을 본받아,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4.3'도 이념의 대립을 극복하면서 화해와 상생 그리고 평화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제주섬에 울러 퍼졌다.
천주교제주교구(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3일 '2015년 부활대축일'을 기념해 강우일 주교의 사목서한을 발표했다.
천주교 사목서한은 교구장 주교가 교리·신앙·규정 등에 대해 교구 내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에게 전하는 담화 방식의 메시지다.
강 주교는 이 서한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매달아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왜 예수가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먼저 물었다.
강 주교는 "예수님은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모두 용서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며 "그들은 예수님을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적으로, 원수로 다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형제로, 혈육으로 거두어 줬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강 주교는 "지금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타인을 위해 기도한 예수의 행동이 무색할 만큼,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런 모습은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로 나아가는 예수의 길에 사람들이 동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은 곳곳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오로지 대적하고 응징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증강하는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을 보이고 있으며, 증오와 저주, 단죄와 대결로만 치닫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젊은이가 일자리에서 내몰리고 노인들은 외톨이로 몰아내는 등 능력 제일주의 속에 끝임 없는 경쟁을 통한 '탈락과 선발의 악순환'이 나타난다고 바라봤다.
강 주교는 이런 '죽음의 문화'로만 치닫고 있는 사회구조를 치유할 대안은 돈이나 권력 등이 아닌, 모든 인류가 민족과 계층, 종교와 문화가 초월해 형제자매임을 깨닫는 '화합'이라고 역설했다.
"예수님은 민족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우리 모두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임을 일깨워주셨다"며 "우리도 오늘 죽음의 문화를 치우고 생명의 잔치를 벌이려면, 예수님과 함께 모든 종류의 적의와 대결의 갑옷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도 서로를 포용하는 마음이어야 풀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보수에 가깝다면, 자신과 다른 진보 쪽 사람들도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이고 하느님이 사랑하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진보에 가깝다면 보수 쪽 사람들도 같은 민족이고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 매일 해를 비추고 비를 내려주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화합의 필요성을 설파한 강 주교의 부활절 메시지는 제주4.3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하려는 제주도민과 4.3유족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부 세력들, '4.3 흔들기'에 앞장선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며 4.3희생자유족회와 경우회가 상대의 손을 맞잡은 것처럼,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모습으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천주교 제주교구 관계자는 "강 주교가 부활절 사목서한에서 직접적으로 4.3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죽인 원수를 위해 기꺼이 기도한 예수님처럼 4.3주간을 맞아 우리 사회의 좌우이념 대립은 물론 보수와 진보세력의 갈등을 아우르는 통합의 메시지,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강우일 제주교구장의 2015 부활대축일 사목서한 전문.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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