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회학도였다. 대학원에서 '한국 성 소수자의 파트너링 유형 파악'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썼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뚱맞게도(?) 서울 신촌에 바를 차렸다. 주영준(31)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은 바 틸트(Bar TILT)의 사장이 됐다.
지난 20일 '불타는 금요일'에 바 틸트에서 만난 주영준 조합원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틸트'는 포커 용어다. 포커에서 운이 안 좋거나 크게 이기거나 질 때의 감정적 패닉 상태를 일컫는 말이란다. "한국에 정확한 의역어가 있는데, '멘붕'이에요." 바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런(멘붕에 빠진) 사람들이 술을 먹지 않을까 해서. 나도 그렇고."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 준비를 하다가 현실적 문제에 부닥쳐 '멘붕' 상태에서 차렸다는 바 틸트는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혼자 가도 '뻘쭘'하지 않을 것 같다. 바텐더와 손님들이 친숙하게 대화를 나눈다. 난생 처음 보는 손님들끼리도 자연스럽게 몇 마디 말을 섞기도 한다.
주 조합원에게 손님 얼굴을 다 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그렇단다.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손님을 다 기억하려 노력"해서인 듯했다. 처음 만나도 '뻘쭘하지 않은' 사장이 풍기는 묘한 매력이 그 집의 매력 아닐까 생각했다. 내친김에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물었더니 곽재훈 프레시안 기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곽재훈 기자가 휴가를 냈는데, 일정이 꼬여서 갈 데가 없다고 여기 왔거든요. 그러면서 신세 한탄했던 게 기억나요. (웃음)"
한국에서 자영업하기
주영준 조합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프레시안 독자였다. 다른 인터넷 언론보다 프레시안을 좋아한다고 했다. 2013년에는 프레시안에 기고를 한 적도 있다. "나는 어쩌다 '악덕 자본가'가 됐나"라는 제목의 글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물론 제목은 프레시안 데스크가 달았다). (☞ 바로 가기 : 나는 어쩌다 '악덕 자본가'가 됐나)
장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불안하단다. 신촌 상권이 최근에 많이 죽은 탓이다. "정말 장사가 잘되다가도 훅 넘어가는 가게를 많이 봤어요. 물론 우린 애초에 확 잘된 적도 없긴 하지만, 말 그대로 망하면 끝나요. 프레시안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고나 할까. (웃음)"
주 조합원은 한국에서 자영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일단 제대로 쉴 수 없다. 시설 유지 보수부터 장보기까지, 신경 쓸 일들이 많으니 정신도 없다. 술집의 특성상 낮과 밤이 뒤바뀌니 건강도 많이 상한다. 주 조합원은 틈틈이 번역도 하고, 글도 쓰면서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위스키 대백과-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데이비드 위셔트 지음, 금요일, 2014년 10월 펴냄)을 번역했다. 내친김에 직접 책도 쓰기로 했다. "술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개괄적인 술의 역사와 술에 붙은 이야기, 술을 맛있게 먹는 사소한 팁을 전하는" 책이라고 한다.
"부대찌개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 쪼가리를 끓여 찌개로 만들었다는 역사가 있잖아요. 술에도 그런 역사가 있어요. 미국에서 칵테일이 발달한 것도, 금주법 시대에 사람들이 밀수한 술을 마시려고 여러 방법을 고안하던 게 계기가 됐거든요."
'장인 정신.' 그를 보며 떠오른 단어다. 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좋은 술을 제공하는 것. 바 마스터로 일하는 것과 글쟁이로 일하는 것 모두 주영준 조합원은 나름대로 즐겁다고 했다.
"다층적인 언론이 되길"
하나둘씩 채워지는 테이블과 일하는 다른 바텐더의 눈치를 보며, '사장님'을 오래 붙들기가 미안해져 물어본 마지막 질문. 주 조합원에게 프레시안에 조언을 달라고 부탁했다.
"프레시안은 비교적 젊은 언론이니까 과학, 취미, 일상 같은 이야기도 좀 다층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술이라든가. 술에도 얼마든지 정치적이고 새로운 시선을 보낼 수 있거든요. 필자도 가벼우면서 전문적인 필자를 끌어들였으면 하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마티니 한 모금을 마셨다. 맛이 일품이었다. 바 틸트를 나서는 길, 새로운 필자로 주영준 조합원을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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