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줄고 있다. 농부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데 이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농사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농지가 줄고 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땅을 파는 이득이 더 낫기 때문이다. 현 농지법에 한계가 있어 농지 전용으로 많은 농지가 없어지고 있다.
'농사지으려는 농부에게 농사지을 땅을!' 이 당연해 보이는 명제가 당연한 현실이 되기 위해서 어떤 시도들을 해야 할까? 현재 농부와 농지의 현실, 그리고 현 농지법의 한계, 외국의 사례, 생활협동조합의 움직임 등을 살펴본다.
농촌인구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경제활동인구를 조사할 때 16~64살을 생산가능인구로 분류하는데 2001년부터 2013년 12년 동안 생산가능인구가 8.5% 줄어들었다.
식량을 생산하는 경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1년 187만 6000ha에서 2013년 171만 1000ha로 12년 만에 무려 16만 5000ha(8.8%)나 줄었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약 574배 크기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놀랍게도 브라질과 영국은 2011년 기준 경지면적이 10년 전과 비교하여 각각 18.9%, 7.1%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경지면적 변화율이 –10.1%인데, 이는 칠레(-17.5%) 다음으로 감소폭이 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작지이지만 이용하지 않는 경작지, 즉 휴경지도 계속 증가할 추세다.
지금 농촌은!● 농부들의 이야기
충남 아산 송악면에서 울금·토란·양파 농사짓는 10년 차 농부 김태형 씨
10년 전에 귀농해서 유기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에 귀농하면 돈이 없어서 땅을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전부 3000평(9900㎡) 농사를 짓는데 그중 반을 임대했다. 농지 임대 계약을 매년 새로 하는데, 겨울마다 불안하다. 농사짓는 땅 중에 반을 날리면 어떻게 생활하나 싶다. 게다가 유기농사는 땅을 길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1년을 묵혀야 그제야 무농약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돌연 주인 이 내놓으라고 해서, 몇 년간 겨우 길들여서 무농약에서 유기농이 되기 바로 전 상태인 유기전환기에 있는 땅을 내놓았다. 안타깝고 착잡했다. 이 지역에 나이 많은 분들이 꽤 있는데 자식들이 농사를 이어서 짓지 않으면 많은 분들이 땅을 내놓는다. 임대해 놓은 상태에서 동시에 팔려고 도 내놓는다. 임대주들은 땅을 판 다음에는 그곳에 집을 짓든, 개발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충남 아산 송악면에는 60~70% 땅을 외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농사지으려는 사람이 농지를 저가에 장기 임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이나 공익재단에서 공개념을 가지고 땅을 사서 농부에게 장기 임대하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 유기농사를 지었던 땅은 꼭 유기농을 하는 사람에게 물려주면 좋겠다. 나이 들어 농사 못 짓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장기 임대하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생활협동조합 등에서 권고하고 교육하고, 또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강원 홍천 동막리에서 20년 농사지은 땅을 강제수용 당한 농부 백선희 씨
1995년부터 20년 동안 여기 강원 홍천 동막리에서 농사를 지었다. 3000평(9900㎡)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했다. 농사가 생업인 우리는 이사 비용도 못 받은 채 살던 집도, 농사짓던 땅도 강제수용 당했다. 집은 2013년 1월에, 땅은 2014년 8월에 빼앗겼다. 그 땅에 단풍나무나 나무들을 많이 심었다. 700~800그루나 되었는데 옮길 시간도 안 주고 한 달 만에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농사짓는 땅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니까 옮기고 싶지도 않고 옮길 데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왔다.
남편도 이제 70살이 넘었고 평생 농사만 지었는데, 이제 다른 걸 어떻게 하나? 먹고살기도 막막하다. 지금 월세방에 살고 있는데 전세로 갈 수도 없다. 보상금이 나오지만 시가 보상으로 되지도 않는다. 농지는 공시지가를 적용해서다. 그런데 인근에 동서고속도로가 생겨서 땅값이 다 올라서 보상금으로는 땅을 살 수도 없다. 평생 농사짓던 땅에서 계속 농사짓고 싶을 뿐이라 강제수용 당한 걸 돌리고 싶다. 보상금을 받으면 취하 소송을 하는데 법적으로 불리하다고 해서 그것도 못 받고 그냥 월세로 살고 있다.
우리는 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었었다. 만약에 그 땅이 공익을 위해 쓰인다면 가슴이 아파도 참을 것 같다. 그런데 골프장이 정말 꼭 필요한 사업인가? 돈 벌려는 영리사업자에게 생업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온 거다. 나이도 들었는데 지금 생계도 막막하고 할 일도 없고 너무 속상하고 답답하다.
● 소비자들의 이야기
자기 먹거리는 자기가 지어 먹고 살아야 할 것 같아, 소비자로 사는 게 마음이 가볍지 않은 김현 씨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게 현실적으로 없다. '한 평씩 땅 사기 운동'이 있다지만 성공적인 사례를 보지 못해서인지 농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무력감이 많이 든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뭘 할 수 있나? 하지만 요즘 다행히 귀농하는 젊은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라도 땅이 주어지면 좋겠다. 나는 서울에서 살지만 부모님은 제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아버지가 칠순이 넘었고 허리가 아파서 오래 농사짓기는 어렵다. 내가 이어받진 않더라도, 꼭 누군가 그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었으면 한다.
생산지를 두루 다니면서 농지가 없어지는 현실을 알게 되어, 농지 공부 모임을 꾸려 연구하고 고민했던 백영숙 씨
한살림성남용인 조합원으로 논살림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생산지를 자주 방문했다. 그런데 인삼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농지가 병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원 홍천의 유기농지가 농약 치는 인삼밭으로 변해가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우리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 농지 확보가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농지가 사라지는 것이 오늘내일 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선 쉽게 잊게 된다. 생산을 생산자의 몫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소비자도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아 공부 모임을 꾸렸다. 농지법을 공부하면서 농지의 공유화를 위해서는 지역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를 느꼈다. 귀농정책과 연결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겠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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