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투항한 것인가, '진보의 금기'를 깨는 도전에 나선 것인가.
삼성그룹 사장단들이 종종 초청해 귀를 기울인다는 김상조 경제개현연대 소장(한성대 교수)가 '진보의 비겁한 침묵과 구태의연한 주장'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서 "대단히 이례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최근 보인 이례적인 행보는 여러 가지다. 첫째, 최근 KB금융 사외이사 후보에 LG그룹의 이병남 사장(인화원장)을 추천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진보진영에서 주장해온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다.
두번째,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학수 특별법'에 "비현실적"이라면서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 역시 삼성가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수조 원대의 증여세를 어떤 방식으로든 환수해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주장을 일축한 행위다.
세번째, 복지-증세 논란에 대해, 여당의 '증세 없는 복지' 주장과 마찬가지로, 야당이 '부자증세'나 '감세 철회'만으로 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역시 진보진영도 권력에만 눈이 멀어 헛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개탄한 행위다.
김 교수는 지난 9일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의 눈총을 받으면서 왜 이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심중을 털어놓았다.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진보의 모순은 기본적으로 정부를 불신하면서, 해법도 정부에게 요구하는 접근방식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관치금융 논란을 보자. 진보진영은 정부를 불신하기 때문에 관치금융을 비판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관치금융으로 산업자본을 지원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시장의 자유방임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방식도 곤란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KB금융 사태는 현 지배구조나 역량으로는 국민경제에 필요한 역할은커녕 자신의 문제도 해결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왜곡된 금융사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 금융산업의 근본문제는 관치지만, 그것을 빌미로 금융회사 경영진과 노조가 암묵적 담합을 통해 내부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도 경쟁력의 핵심인 인적자원을 키우는 데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다. 또한 금융회사 사외이사에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산업계의 전문가를 추천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퇴직관료와 교수들의 용돈벌이 수단으로 사외이사 자리를 계속 남겨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패배한 원인도 선명성 부족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탓이라고 주장해왔다. 정부에게 현실적으로 수행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며 요구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를 위한 증세 문제에서도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만으로 안되니, 부가가치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부터 먼저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학수 특별법'을 두고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공개 지면토론도 가졌지만 이후 진보진영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면서 진지한 토론도 이어지지 않는 '타성과 금기'에 발목 잡힌 진보진영의 무기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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