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테크놀로지'의 그리스어 어원 '테크네(τέχνη)'로부터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밀접한 연관성을 발견했다. '예술만이 진리를 가진다'는 하이데거의 낭만적 도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테크놀로지가 예술과 맺었던 관계야말로 '테크놀로지의 근본'이라는 주장에서 확장된 것이기도 했다. 반면에 예술과 대립하는 도구적 테크놀로지 개념으로 테크네가 오용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현상이었다. 하이데거는 이런 유의 근대적 테크놀로지를 배치하기, 조절하기, 은폐하기로 강조되는 일종의 '틀 지우기(Enframing〔Ge-stell])'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테크네는 세계를 비도구적 측면에서 풀어놓고, 탈은폐하며, 밖으로 내어놓는다고 옹호했다. 그리고 도구적 테크놀로지 개념이 (오늘날의 시대처럼) 열렬히 각광받는 시대일지라도, 테크놀로지 내부에 남아 지속하는 불안정한 예술적 본질은 더 공고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으며, 이전과는 상이한 테크놀로지 개념의 부상을 억제할 수도 없을 거라고 낙관했다. 하이데거는 진리가 발생하는 장소인 예술에 종말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시원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하이데거의 예술론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테크네가 맞이한 위기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 이를테면 어떠한 기술/기계/예술도 자신이 갖춘 능력 전부를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예외를 찾기 힘든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강제된 무능과 잠재된 역량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는 언제나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문제다. 철학과 미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학을 아우르는 총체적 분석이 요구되는 과제다. 그 방법들을 정치하게 해설한 조정환의 <예술인간의 탄생>(갈무리, 2015년 1월 펴냄)은 19세기 초의 헤겔로부터 지금 이 시대의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예술종말론과 예술진화론의 계보학적 탐구를 펼쳐 보인다. 이 주제에 관한 한 신뢰할 만한 교과서로 손꼽아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이 시대 인민이 맞닥뜨린 테크네의 위기를 인간의 위기에 등치하는 낯익은 틀에서 비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외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위기로부터 새로운 인간형, 다시 말해 '예술인간(homo artis)'의 탄생이 촉진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 책의 주장을 하이데거와 교차해 생각해보고 싶었던 까닭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 테크놀로지의 광포함이 모든 곳에서 강화되다 못해, 결국엔 모든 테크놀로지적인 것에서 테크네의 본질이 나타나고야 말 것이라고 지적한 이가 하이데거였다. 이러한 생각에 대칭될 만한 <예술인간의 탄생>의 핵심적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전 지구적으로 광포하게 증식하고 있는 '경제인간'의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예술인간'이 탄생하고 있다. '예술인간'은 경제인간 속에 잠재하고 있는 특성의 발현이며, 새로운 역사 조건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그리고 어떤 특권도 허용치 않는 보편인간으로서 실천적 문제다.
조정환이 정의하는 '예술인간'은 예술가(artist)와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예술가는 대중과 분리된 자격과 특권을 가진 전문적 직업집단을 의미하지만, 예술인간은 자격 특수적이기보다 보편적이며, 특권적이기보다 특이하고, 직업적이기보다 자기수행적인 인간 형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 형상은 산업자본주의가 인지자본주의로 이행함에 따라, 노동인간이 예술가가 되고 예술가가 노동인간이 되는 생성과 변형의 지평에서 발생했다.
오늘날 인지자본주의에선 영혼마저 노동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예술가 되기를 강요받는 노동인간이나 노동인간이 되어야 하는 예술가 모두 조증과 우울, 불안과 공황 속에 병들고 있다. 조정환은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조차 자기 배려를 통해 자신을 예술화하고 자기 해방을 수행할 '예술인간'의 잠재성이 생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잠재성이 현실화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촛불 시위였고, 평택 쌍용자동차 투쟁의 장면들과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보여준 각종 퍼포먼스, 그리고 2011년 아랍의 봄과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역시 '예술인간'의 증명이었다고 이 책은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무난히 동의할 만한 해석으로 읽힐 수 있지만, 각각의 사건이 지닌 다면성을 간편한 도식화로 뭉뚱그린 면도 없지 않다.
예술인간의 잠재성을 현실에 격발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2008년 촛불 시위에서 폭발했던 다중의 창발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고 사회는 날로 보수화되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기발한 풍자와 해학으로 활기찼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진보성은 자기 검열과 일베 따위에 심각하게 오염됐다. 악화일로의 국면들마다 예술인간 되기의 극적인 장면이 점멸하곤 했으나, 인민들이 체감하는 사회의 전반적 흐름은 더욱 철저하게 경제인간답게 살 것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계속해서 실패하고 패배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정교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희망을 구하거나 절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마주해야 이해에 닿을 수 있다. 예술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이라기보다는,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는 실재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세련된 처신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예술인간론은 저자의 의도와 달리 비겁하게 오용될 여지마저 있다. 왜냐하면 예술인간이란 노동인간, 국가인간, 경제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속물적인 허세로 자기 지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힙스터(Hipster)들은 노동인간, 국가인간, 경제인간 등의 고루한 인간형과 차별화되기 위해, 더 심미적이고, 더 인지적인 방식으로 질적인 것, 측정 불가능한 것의 개량을 모색하는 자기 계발에 열정적으로 몰두한다. 이런 생활이 스스로 예술가임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의 발견과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 세련된 소비 패턴의 계열을 자기 삶에 촘촘히 얽매어 놓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허다하다. 현대 마케팅의 핵심 전략도 소비를 예술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던가.
<예술인간의 탄생>에 따르면, 노동인간처럼 노동하되 잉여가치 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더 적합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하며, 국가인간처럼 정치적이되 국가형태가 아니라 삶형태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이며, 경제인간처럼 살림살이를 하되 교환가치가 아니라 생명가치를 살림살이하는 것이 예술인간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인간의 탄생은 근대 인류 진화사가 이뤄내는 하나의 거대한 종합적 사건이라고 조정환은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대안적 삶의 실험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실험들의 실질적 성과와 가능성, 전망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미리부터 절망에 빠져 백기 투항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희망에 홀리는 것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능력은 극한으로 소모되고 과대평가 받지만, 그렇지 못한 능력은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결함으로 매도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 능력의 범위를 제약한 굴레는 사실상 금액 숫자로 가늠된다. 사람이나 기계나 돈을 버는 일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일상을 끝도 없이 좇아야 한다. 이 시대의 노동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창조적·예술적 능력을 쥐어짜야 한다.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착취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자기를 개발하는 '기술', 자본의 명령을 따르는 '창조적 기술'로 변모된다. 그리고 자본의 명령을 따를 뿐인 창조성은 영혼 없는 예술적 능력의 겉껍질로 전락한다.
오늘날 다중의 예술 의지는 자본주의의 돈벌이에 접합돼 끌려다니고 있다. 이 접합을 끊고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삶을 배려하는 기술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예술인간의 힘을 어떻게 하면 더 뚜렷이 드러내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2008년 촛불이나 아랍의 봄이 아니었다.
남해에서 유영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난 만화인간 정성용의 예술적 삶과 영혼을 향한 헌사를 아래에 옮긴다. 조정환은 후기에서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고 적었다. 최첨단의 정치 철학이 설명될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하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었다.
끝으로 내 기억 속에 남겨진 한 사람의 예술인간을 기리는 것으로 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는 학업성적이 뛰어났음에도 권위주의적인 학교교육에 회의를 느껴 18세인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만화로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그는 독학으로 만화이론을 공부하면서 직접 만화를 그리는 작업에 전념했다. 19세가 되었을 때 그는, 병역강제가 전쟁과 실인을 모든 사람들의 심신에 각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를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인터넷을 검색하여 <다중지성의 정원>을 찾아온 때는 2009년 1월이었다.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거부 선언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이후 그는, 스스로 깊이 있는 만화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갈무리 출판사 활동가로 일하면서 <다중지성의 정원> 세미나에 결합하고 방송통신대학에도 적을 두었다. (…) 그는 스피노자, 그람시, 푸코 등에로 점차 자신의 관심을 넓혀 나갔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해서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그는 어느덧 제 발로 선 독학자로 성장했다. 그는 거울처럼 투명하게 세상을 비추면서 부당한 권위와 권력을 거부했고 배움에 정직했다. 그는 자신이 애독하는 만화 <해수의 아이>의 루카·우미·소라처럼 인간이 어디서 왔고 무엇일 수 있는지를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의지로 느끼고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다. 그러던 그가 2011년 8월 14일 아침에 남해 바다에서 유형을 하다가 생명의 고향인 그 바다로 돌아갔다. 불쑥 찾아왔다가 갑작스레 떠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아갈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운신의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가슴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390∼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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