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 자주 쓰는 구성법 중 하나로 수미상관법(首尾相關法)이 있다. 머리와 꼬리, 처음과 끝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보면 이런 구성을 자주 사용한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논리와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김기종 사태'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민화협이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물리적 공격을 당했다. 민화협은 200여 정당, 종교, 시민단체가 함께 하는 민관협력기구이다. 구성을 보면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종교 및 시민단체가 남북화해와 협력 그리고 국민통합을 주요 활동목적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협의체 기구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관협력기구가 주최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한미국대사가 칼로 인한 물리적 공격행위를 당했으니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물리적 공격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범죄인지는 법적으로 드러나겠지만, 미국언론은 ‘테러(terror)'보다는 '공격(attack)'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번 사건을 김기종 개인의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수사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공식적인 언론발표를 통해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미국과는 다르게 이번 사태를 ‘테러행위’라고 정치적으로 이미 규정한 것이다.
아마 상식적인 많은 사람들은 김기종 씨의 행위와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범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고, 그에 따른 법적 처벌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이번 사태가 다시 한 번 보여준 우리 사회의 안전시스템이다.
주미대사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관협력기구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칼로 인한 물리적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우리 사회가 안전에 대한 무능, 불감증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주미대사’가 백주대낮에 물리적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안전시스템이 과연 정상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정부청사가 바로 옆에 있고, 경찰청이 지근거리에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일이 벌어졌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원인을 종북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안전문제가 아니라 이념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리가 무너졌는데 버스교통체계를 탓하는 꼴이다. 주미대사에 대한 보안미비와 안전에 대한 무능과 시스템 붕괴가 어떻게 종북으로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가 심각하게 여겨야 할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안전에 대한 무능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러한 무능과 미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체계적인 분석 없이 곧바로 종북몰이를 통한 선동정치로 넘어가버렸다.
이번 사태와 정부 그리고 새누리당의 대응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앞에서 말한 수미상관법의 국정인식이다. 모든 문제에 대한 국정대응 방향의 처음과 끝이 오직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종북이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달라지듯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일관되게 몰아가고 있다. 정권의 시작점을 종북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하더니 집권 3년차에 벌어진 이번 일에 대해서도 변함이 없다.
스페인의 화가인 고야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등장한다'라는 판화를 남겼다. 어느 시대나 그 사회가 지닌 문제와 불안 그리고 구조적 기득권을 시민의 이성과 성찰로 방어하지 않으면 광기가 지배한다. 정의와 균형보다는 권력을 추구하는 종교집단이 결국은 ‘종교재판소’로 광기를 드러냈듯이, 정의와 이성에 눈감은 국가권력은 정권의 기구가 되어 ‘현대판 종교재판소’로 등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낮은 목소리이지 고성방가의 선동이 필요할 때가 아니다. 국민에게 불안과 증오를 원료로 하는 이념정치, 증오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이번 사태처럼 물리적 공격 혹은 무차별적이고 반이성적인 행위를 대비해 어떻게 대응하고 예방할 수 있는 안전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국민통합적 방안이다. 그 방안을 통해 국익도 챙기고, 국민통합도 이루고, 한미동맹도 튼튼하게 하자.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수미상관법의 국정인식,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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