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우려한 것을 두고, 확장 정책 '올인(All-in)'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더는 디플레이션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1월·2월 연달아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을 상대로 금리 인하 압박 메시지를 던진 것이란 설명도 나온다.
최 부총리의 최저임금 인상 발언과 관련해서는 4월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의 '립서비스'가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 부총리의 최저임금 인상 발언을 '환영'하고 나섰지만, 정부·여당의 '진정성'은 말이 아닌 정책 시행으로 확인되어야 한단 지적이다.
"이제 중요한 건 인정이 아니라 대책 세우는 것"
그간 경제 상태를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이라고 줄곧 설명해오던 최 부총리는,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선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공식 행사 이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선 "아직 디플레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장기화할 경우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 유의해야 한단 취지로 말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발언 하루 만에 '디플레 공포'가 각종 언론 지면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최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경제 수장으로서 디플레이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5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물가상승률이 실제로는 마이너스를 찍고 있단 건 전문가들은 다 아는 얘기"라면서 "중요한 건 디플레를 정부 당국이 공식 인정하는 게 아니라, 관련 대책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획재정부는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하하는 통화 확장정책을 쓸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가계부채 구조조정 정책이 완성 및 시행될 때까지 기다릴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디플레 진입을 막을 수 있다면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신속히 결정해야 한단 설명이다.
경제통인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에서 "소비자 물가지수, 산업생산지수, 산업활동 동향 발표를 앞두고 더는 (디플레이션 상태를) 부정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다만 진단 면에선 "저희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있으니 빨리 중산층 서민의 소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이 가야 한다고 얘기를 해 왔다"며 "그러나 최 부총리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부동산 경기부양이나 기업 지원을 해야 한단'식으로 논란을 벌여왔다. 그런 경제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립서비스 아니라면 정책으로 보여야"
최 부총리가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다.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도 적지 않은 반응과 해석들을 낳고 있다.
일단 유승민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이란 정책방향에 대해 심각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한다면서 "그 동안 보수 정당으로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선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 이번 기회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여야 간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들에 노동계와 야당은 선거를 앞둔 정부·여당의 '립서비스'라는 시선을 거두지 못 하고 있다.
홍 의원은 "최저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단 얘기는 작년에도 했었다"면서 "그런데 실제로 그냥 그렇게 얘기하고 실질적인 정책은 취하지 않았다. 대중에게 립서비스에 그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최 부총리는 취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단계적 최저임금 인상'을 말해 왔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 연평균 7%대 최저임금 인상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임금 인상이 매년 노사정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줄다리기' 협상 끝에 결정되는 방식이 계속되고 있단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조정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것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된 상태는 아니다.
이와 관련, 이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는 "최저임금 결정에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도 반영하는 입법 발의가 이미 돼 있다"면서 "이에 더해 통상임금 평균의 50%를 최저임금의 하한선으로 두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최저임금이 더 내려가지 않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단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임금 정책이 '성과급제로의 개악'에 방점이 찍혀 있는 이상, 최저임금 소폭 인상으로 노동소득 증대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실장은 "연공제를 폐지하고 정규직 노동자 임금 비용은 줄이려는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활용하는 인상이 짙다"면서 "정규직 임금을 깎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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