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늦게 온 전화. 축구계 원로였다.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성균관대가 이래도 됩니까? 축구인들을 이렇게 농락합니까?"
이날 오후 보도된 설기현의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 대행 선임을 두고 원로 축구인은 '축구인들에 대한 농락'이라고 했다. 그는 성균관대가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꿈 많고 능력 있는 젊은 지도자들을 들러리로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설기현 소속 구단은 은퇴를 통보받았고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은 감독 임명장을 수여했다. 2015 K리그 클래식 개막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성균관대는 1월 30일 축구부 감독 모집 채용 공고를 냈다. 한 차례 접수시한을 연기했고 2월 26일 최종 후보에 오른 5명을 상대로 면접까지 실시했다. 최종 후보 5명엔 월드컵대표 출신으로 프로팀 코치를 지낸 K씨, 프로팀 코치 출신 L씨, S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했다. 감독 모집에 응시하지도 않은 설기현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된 것이다.
대학 감독에겐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이 요구된다. 1급 자격증 미소지자가 대학 감독직을 맡는 것은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규정 위반이다. 당연히 징계 사유다. 무기한 자격정지 및 제명까지 가능하다. 성균관대도 채용 공고에서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 소지자', '축구부 감독 유경험자'를 응시 자격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설기현은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도 없고 축구부 감독 유경험자도 아니다. 원로 축구인은 "규정조차 무시하면서 애초부터 설기현을 뽑으려고 했다면 왜 선수 시절부터 쟁쟁했던 유능한 지도자들을 들러리 세웠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성균관대는 설기현을 감독이 아닌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여러 말 할 것도 없다. 편법이다.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 취득을 전제로 감독 대행을 맡겼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 아닌가? 스타 출신 은퇴선수를 일단 감독 대행으로 임명한 뒤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감독으로 재임명한다면 지도자 자격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에서, 더욱이 명문 사학의 자부심을 가진 성균관대마저 경쟁에 매몰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라면 대학의 자성을 구하기보다 차라리 축구협회가 대학 감독 대행에게도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는 편이 편법의 횡행을 더 빨리 막을 수 있는 방안인 듯하다.
지도자 경험이 없는 은퇴 선수가 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는 학교 측에서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성균관대 축구부 동문회와 학부모측에선 설기현 감독 대행에 대해 부정적이다. 학부모 측은 스포츠단 단장과의 면담을 추진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띠고 있다.
대학도 경쟁한다. 스타가 필요한 것도 맞다. 그러나 무한경쟁이 무법천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2,3년만 해도 체육특기생 입시비리가 연달아 터졌다. 연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버젓이 대학 졸업장을 받는다. 대부분이 명문이라고 하는 대학에서 발생한 일이다. 대학의 명성과 기득권 쌓기, 욕망으로 가득 찬 바벨탑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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