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여러분, 제 예쁜 모습을 기억해주세요." (숭실대 청소노동자 장보아 씨)
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여성 노동자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곧 설에 손자 손녀가 할머니 보러 올텐데, 할머리 머리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도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32일째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인 숭실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16일 용역업체 퇴출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이날 서울 동작구 숭실대 본관 앞에서 열린 삭발식엔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분회 조합원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종렬(65) 분회장과 장보아(60) 사무국장, 서울일반노조 김형수(52) 위원장이 머리를 깎았다. 이 분회장과 장 사무국장은 이 학교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명절 연휴를 이틀 앞두고 이들이 삭발에 나선 이유는 18년째 숭실대와 수의계약을 맺어온 청소용역업체 '미환개발'의 퇴출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은 이 업체가 노동법도 무시하며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대부분인 청소 노동자들을 남성 관리자가 화장실 앞까지 따라와 '감시'를 한다든가,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의 인격까지 깔아뭉개며 도 넘은 감시와 통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 역시 대학 최저 수준으로, 숭실대 청소 노동자들은 세전 112만8600원으로 "서울에서 임금으로는 꼴찌인" 월급을 받는다.
특히 이 업체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수당도 지급하지 않아,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는 미환개발이 연차 수당 등 약 2400만 원을 체불했다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엔 노동부가 발표한 '산재예방관리 불량사업장'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노동부조차 '불량 사업장'으로 꼽은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숭실대는 이 업체와 18년간 수의계약을 맺어왔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특혜 의혹'을 제기한다. 미환개발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사풍 씨가 숭실대 총동문회 이사까지 지낸 동문으로, 꾸준히 고액의 학교발전기금과 기부금 등을 내온 김 씨에게 학교 측이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미환개발 사태 해결을 위한 숭실대 파랑새 서포터즈'에서 활동하는 이 학교 학생 이주영(행정학과 4학년) 씨는 "도대체 60학번 김사풍 동문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길래 18년 수의계약이란 특혜를 주고 학교 이권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학생들이 학교를 보고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지난해 10월 대학평의회의 공개 입찰 요구도, 학생들의 용역계약서 등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도 '경영상의 비밀'이라며 묵살한 채 이번에도 재계약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미환개발은 2012년 3년간의 수의계약을 연장해 오는 28일 계약이 만료되는데, 학교는 이번에도 공개 입찰이 아닌 재계약을 하겠다는 기류다. 이 학교 청소노동자들이 32일간의 천막 농성도 모자라 삭발까지 하게 된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까지 나서는 등 '수상한 수의계약'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학교 측은 오히려 업무 방해 및 퇴거 불응 등을 이유로 숭실대분회 조합원 10여 명을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숭실대 측은 해당 용역업체에 특혜를 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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